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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Apr 29. 2022

기역부터 히읗까지: ㅎ

홈런

1.

  야구에서 홈런과 파울홈런의 차이는 그야말로 '한 끗'입니다. 전자는 페어 존(Fair zone) 안, 후자는 그 바깥에서 담장을 넘어가는 공인데, 페어 존의 기준이 흰 선이니 과연 한 끗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다만 두 타구의 기여도 차이는 끗으론 설명할 수 없습니다. 파울홈런은 그저 스트라이크 하나를 더 늘리며 수 싸움을 복잡하게 하는 '쪽박'이지만, 홈런은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대박 중의 대박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타구의 비거리는 파울홈런이 더 나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담장이 아닌 야구장 자체를 넘기더라도 페어 존 밖이라면 그저 파울에 불과합니다. 타자에겐 패널티인 스트라이크가 하나 추가되는 것은 반갑지 않은 덤이지요.


이런 일종의 기대감과 이어지는 상실감 때문인지, 파울홈런을 친 타자들은 그 타석에서 삼진 아웃을 당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파울홈런 뒤에는 삼진'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공식과도 같은 상황입니다.


즉, 파울홈런은 파울지역 위로 높이 날아가 관중석에 떨어지는 공입니다. 이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

  이 홈런과 파울홈런의 비유는 우리네 삶에도 적용해 봄직한 이야기입니다. 살면서 쏘아 올렸을 나름의 '타구'들을 생각해 봅니다. 학업이나 업무에서 이뤄낸 퍼포먼스처럼 보편적인 개념의 성취나, 기타로 노래 한 곡을 온전히 연주해 내는 것과 같은 일종의 '능력 개발'이 포함될 수 있겠습니다. 혹은 목표한 수치만큼 꾸준히 운동을 한다거나, 짧은 글을 써보겠다는 작은 목표나 다짐을 지켜낸 것도 타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 무수한 포물선 중 홈런은 얼마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합격이나 등수 같은 보편적인 성취,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영역만 '점수'로 쳐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좁은 구장으로 상황을 너그럽게 가정해 보아도, 제가 성취한 것들 중 대부분은 아마 페어 존 바깥을 향한 듯합니다. 얼마나 높게, 또 멀리 날아갔든 그저 파울 중 하나인, 차곡차곡 쌓인 스트라이크 여러 개로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생 전체를 야구로 보자면 파울홈런도 꽤나 유의미한 결과물입니다. 어떻게든 공을 방망이에 맞췄으며, 나름대로 큰 타구를 만들어 경기에 긴장감을 심어주었다는 의미입니다.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거나 땅으로 힘없이 구르는 것보단 훨씬 나은 결과물이고, 심지어 그런 저질스러운 타구들도 상황에 따라 점수를 내는 일에 기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나와 당신이 살면서 쳐낸 수많은 공들 중 의미 없는 공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

  다시 시야를 좁혀서, 최근 제가 쓴 글들을 타구에 비유해 봅니다.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며 '이 중에 홈런은 몇 개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무리 봐도 홈런은커녕 죄다 파울처럼 보입니다. 그나마 타구의 질이 마음에 드는 몇 가지가 있지만, 모두 다시 읽기보다는 지우고 싶은 글들뿐입니다.


다만, 당신이 느끼기에 홈런이었던 글이 하나라도 있다면 모두 그대로 둘 요량입니다. 아니, 홈런이 아니라 파울홈런이나 안타 정도만 되어도 좋습니다. 야구에서는 10번 중 3번만 안타를 쳐도 '3할 타자'라는 타이틀을 주고 칭찬 세례를 퍼붓는데, 이번에 소화한 14번의 타석 중 유의미한 타구를 다섯 번만 만들었어도 타율 3할 5푼 7리를 기록한 MVP급 시즌인 셈입니다.


스포츠는 관중이 있어야 유지된다고들 하지요.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읽어준 불특정한 여러분 덕에 이탈없이 완주한 첫 시즌이었습니다. 저는 스토브리그와 스프링캠프를 잘 보낸 뒤, 더욱 조직력 있는 팀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다가올 시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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