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
편지는 한자로 나타내면 便紙입니다. 편할 편(便)과 종이 지(紙)를 사용하는데, 흔히 말하는 '직독직해'를 하자면 편하게 종이에 옮긴 글입니다. 그런데 왜 편지에 편할 편자를 쓰는지, 그 시작을 찾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다방면으로 찾아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아, 이럴 때는 나만의 해석을 도출하는 재미라도 느껴보고자 합니다.
아마 그 시기ㅡ채륜의 제지법은 105년에 세상으로 나왔다니 그 언저리겠지요ㅡ의 '종이'라 함은, 주로 나라를 다스릴 지엄한 법전이나 교육을 위한 경전, 정통성을 담은 족보나 나라의 뿌리를 새긴 역사서의 편찬 등에 쓰였겠습니다. 앞의 예시들은 결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종이가 아닙니다. 담아야할 주제가 무겁고 공적이다 보니 그것을 채워나가는 과정 또한 편치 않았겠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가정한다면, 안부를 묻고 생각을 나누는 내용을 담는 종이는 꽤 편안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런 이유로 '편지(便紙)'가 되었다면 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 탄생설화를 납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 때보다 종이의 쓰임이 흔해진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편지를 나타내는 또 다른 한자인 片紙를 더 좋아합니다.
2.
片紙는 편안할 편이 아닌 조각 편(片)을 사용합니다. 한글 합성어로 해석하자면 '쪽지'에 더 가까운 말입니다. 제가 이 해석을 더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논리보단 감정의 영역입니다.
먼저, 편지를 쓰는 행위란 무릇 내 마음에서 한 조각을 떼어 글로 옮기는 과정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볼 수 있도록 비유한다면 연필심의 재료인 흑연 한 조각이 좋겠습니다. 그 조각의 크기는 편지를 받을 사람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곤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클수록 쓸 수 있는 글의 길이가 길어지고, 더욱 선명합니다. 반대의 경우라면 흐릿하게 짧은 인사를 건네는 것이 고작이겠지요.
나아가, 그에 대한 답장을 받는 일에도 조각이란 메타포는 꼭 들어맞습니다. 편지를 쓰고 보냄으로 인해 생긴 내 마음 속 빈공간을, 상대의 마음이 담긴 답장이 그대로 메워주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편지란 그런 의미입니다.
남은 한 가지는, 저는 편지를 적을 때 결코 편(便)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주 불편하고 수고스러운 일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편지는 제 마음 한 조각을 캐내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그것부터가 자못 고단한 일입니다. 글씨의 크기나 모양부터 그것을 담을 종이는 물론, 무엇보다도 담을 내용에 대한 고민 또한 사람을 아주 괴롭히고는 합니다. 단어나 표현을 고르는 것에 열을 내는 습관이 편지를 쓸 때도 공평하게 작용하는 탓입니다.
3.
그래서 저는, 그러한 고민과 감정이 녹은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 일을 세상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그 사람이 이마를 짚어가며 선택한 단어나 표현, 글의 물꼬를 트는 멋쩍은 첫 문장을 기대합니다.
그 속에 담긴 수신자에 대한 발신자의 감정을 짐작하는 일 또한 저의 행복입니다. 비단 길이뿐만이 아니라 글씨체나 글의 구조, 표현에서 나오는 미묘한 차이가 만든 애정의 차이를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편지(便紙)가 아닌 편지(片紙)를 받고 싶습니다. 동시에 편안하게 쓴 글이 아닌 제 고민을 거름 삼아 보기 좋게 피어난 한 조각을 주고 싶습니다.
결국 이 글은 여러분께 쓰는 저의 편지입니다. 서로 주고받을 일은 아마 없을 것 같지만,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하고 한 자씩 눌러 썼습니다.
또,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지가 꽤 지난지라 여기에 써본 연유도 있습니다. 제 기억에 편지(便紙)는 올해, 편지(片紙)는 작년이 마지막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쓴 이 글은 당연히 후자입니다. 혹은 여러분께 보여드리는 모든 글이 일종의 편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저는 누군가 보내준 편지는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편지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타임머신과 같아서, 언제고 다시 꺼내보더라도 편지를 처음 받았던 그날 그곳으로 데려다주곤 합니다.
비단 이런 마법이 없더라도, 남의 마음 조각을 매몰차게 버리는 일 자체도 가볍게 할 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나와 당신의 집 어딘가에 발신자를 불문하고 편지가 가득 모아져 있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ㅡ혹은 그렇기에ㅡ, 보낸 편지가 버려지거나 답장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저는 그 이유를 헤아려 보는 나름의 시도에서 이 장황한 편지를 쓰게 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름 큼지막하게 꺼낸 조각을 다 써버렸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그날까지 무사하고 평안한 나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