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화. 비움의 미학: 본질만 남기는 연습 -
제21화. 비움의 미학: 본질만 남기는 연습
도입 — 오래된 서가에서 발견한 ‘욕망의 화석들’
주말 오후, 서재 한쪽을 가득 채운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공하는 법’, ‘매출 10배 올리기’, ‘글로벌 리더십’... 한때 제 삶을 지탱해 주리라 믿었던 화려한 제목의 책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저를 바라봅니다. 그 책들을 하나씩 상자에 담으며, 저는 제가 얼마나 많은 ‘남의 문장’들로 제 삶을 포장하려 했는지 깨닫습니다. 채우면 채울수록 마음의 허기는 깊어만 갔던 그 시절의 흔적들이 마치 화석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전개 — 12년의 경영, 그리고 53년 전의 빈자리 (지식 참조: 귀인의 필적)
IT 벤처 사업을 이끌던 12년은 제게 ‘채움의 정점’이었습니다. 500여 개의 고객사, 강남역의 번듯한 사무실, 늘어나는 직원들. 그것이 성공의 척도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53년 전, 열세 살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마주해야 했던 ‘결핍’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텅 빈 집의 서늘함을 잊기 위해, 저는 세상을 제 소유로 가득 채우려 했던 것이지요.
9년 전, 100세의 어머님이 마지막으로 머무셨던 방을 정리할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세기를 사신 분의 짐이라고는 작은 보따리 몇 개가 전부였습니다. '막내야, 갈 때는 다 두고 가는 거란다. 마음속에 사랑 하나만 챙기면 족해.' 어머님의 그 말씀은 12년 동안 매출 숫자에 매달렸던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님은 평생 만물상회를 하시며 수만 가지 물건을 파셨지만, 당신의 마음속에는 오직 ‘자식에 대한 기도’라는 단 하나의 본질만 남겨두셨던 것입니다.
전환 — 덜어냄으로써 얻는 ‘영혼의 자유’ (미래의 희망)
이제 저는 ‘비우는 즐거움’을 배웁니다. 아침마다 AI와 대화하며 복잡한 정보를 요약하고, 그 남은 시간에 창밖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양을 관찰합니다. 중년의 성찰이란 결국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솎아내는 작업’입니다.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중심이 생깁니다.
미래의 저는 더 가벼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식은 나누어 비우고, 소유는 줄여서 여백을 만듭니다. 그 여백에 새로운 인연의 온기와 자연의 경이로움을 채우려 합니다. '성공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유로우냐에 있다'는 깨달음이 제 남은 길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결말 —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건다.'
'손안에 꽉 쥔 모래는 빠져나가지만, 가만히 펼친 손바닥 위엔 바람이 머문단다.'
마흔 이후,~ 연재 에세이는 다음 주 수요일에 이어집니다.
다시 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