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화. 빗물에 젖은 창문: 세상과 나 사이의 흐릿한 경계 -
제7화. 빗물에 젖은 창문: 세상과 나 사이의 흐릿한 경계
창밖에는 이른 아침부터 여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카페 통창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는 세상의 풍경을 불투명한 수채화처럼 뭉개뜨립니다. 달리는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번진 물감처럼 길게 늘어지고, 사람들은 우산 속으로 자신을 숨긴 채 서둘러 발걸음을 옮깁니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그 흐릿한 경계를 가만히 응시합니다.
이 젖은 유리창은 마치 내가 평생을 두고 걸어온 '방랑'의 길과 닮아 있습니다.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센 빗줄기가 쏟아졌고, 때로는 안개처럼 자욱한 불안이 앞길을 가로막곤 했습니다. 저서 《귀인의 필적》에서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방랑자의 여정'이라 고백합니다. 하동의 평화로운 정서마을에서 태어난 소년이 부산의 공단, 서울의 용답동 방 한 칸, 그리고 강남의 빌딩 숲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더 나은 곳'을 찾아 헤매야 했던 그 시간들. 유리창 너머의 세상이 흐릿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내 안의 풍경은 선명해집니다.
우리는 늘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길 꿈꾸며 경계 밖으로 자신을 밀어냅니다. 하지만 40대에 찾아온 '감원의 칼날'이나 '역주행을 감지한 새벽'의 차가운 기억은, 우리가 얼마나 위태롭게 물질적 성공만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지를 뼈아프게 깨닫게 합니다. 빗물이 유리창을 씻어내듯, 고난은 우리 삶의 불필요한 장식들을 걷어내고 가장 본질적인 질문만을 남깁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질주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유리창 안쪽의 고요를 마주하는 용기입니다. 작가가 작은 개척교회의 새벽 찬송 소리 속에서 진정한 위로와 평안을 발견했듯이, 우리에게도 세상과의 경계를 닫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이 필요합니다.
비 오는 창가는 단절의 공간이 아니라, 성찰의 공간입니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들이 서로 몸을 섞어 아래로 흐르듯, 우리의 고통과 방황도 결국 지혜라는 하나의 물줄기로 모여듭니다. 작가가 말했듯, 모든 방랑에는 돌아올 지혜의 집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앞날이 빗물에 젖어 흐릿해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을 넘어뜨리기 위한 시련이 아니라 영혼을 새롭게 하기 위한 부르심일지도 모릅니다.
커피가 한 모금 남았을 때,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집니다. 흐릿했던 풍경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상은 변한 것이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조금 더 맑아져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창이 흐려질 때, 비로소 내 안의 집이 선명하게 보인다.'
모닝브루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