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후, 다시 쓰는 인생의 문장들

- 제7화. 내면의 작은 목소리 청취: 소음과 고요 사이 -

by 방랑자 연필


제7화. 내면의 작은 목소리 청취: 소음과 고요 사이


텅 빈 거실에서 마주한 낯선 정적

새벽 5시, 알람 소리 없이 눈을 떴습니다. 예전 같으면 머릿속은 이미 오늘 처리해야 할 수십 개의 메일과 회의 안건으로 전쟁터였을 시간입니다. 하지만 퇴사 이후의 아침은 지독하리만큼 고요합니다. 주방으로 걸어가 커피를 내립니다. 원두가 갈리는 거친 소리, 그리고 뒤이어 퍼지는 고소한 향기. 이 평범한 감각들이 이토록 선명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여명이 밝아옵니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려 기지개를 켜는데, 나는 그 흐름에서 잠시 비켜나 있습니다. 이 고요함이 처음에는 견딜 수 없이 불안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도태된 것은 아닐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이 정적이 나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곤 했지요.

20251209_180458.jpg 동탄 S아파트 야경

12년의 질주, 그리고 멈춰 선 자리 (작가 저서 참조: 귀인의 필적)

그 정적 속에서 문득 12년간 운영했던 IT 벤처 사업 시절을 떠올립니다. 강남역 5번 출구 앞, 번듯한 자사 사무실을 갖게 되었을 때 저는 제가 인생의 정점에 서 있다고 믿었습니다. 500여 개의 고객사를 관리하며 매월 본사의 매출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그 바쁨이 저의 존재 증명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저는 가장 시끄러운 소음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숫자와 실적,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소음은 내 안에서 들려오는 진짜 목소리를 철저히 가로막았습니다. 40대 초반, IMF 여파로 실직했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함조차 '바쁨'이라는 방패로 가리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13세), 어머니마저 떠나보낸 후(58세) 홀로 남겨진 삶의 무게는 저를 늘 채찍질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53년 전,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 느꼈던 그 근원적인 불안함은 성인이 된 저를 '영원한 현역'이라는 강박으로 몰아넣었습니다. 8년 전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저는 그 무거운 책임감의 옷을 조금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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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가 주는 선물: '충분하다'는 위로

이제야 깨닫습니다. 중년의 퇴사와 멈춤은 도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케스트라의 악보에 그려진 '쉼표'와 같습니다. 쉼표가 있어야 그다음 선율이 더욱 웅장하고 아름답게 울려 퍼질 수 있듯, 지금의 정적은 내면의 작은 목소리를 듣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통찰을 얻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위기(危機)'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라고 하지요. 하지만 저는 이 시간을 '위로와 기회'의 시간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그 치열한 전장이 사실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 훈련소였음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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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희망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60대에도 AI를 배우고 글쓰기에 도전하며 '지혜의 나눔'이라는 새로운 숲을 가꾸고 있는 지금의 제가 그 증거입니다. 이제는 타인의 박수 소리가 아닌, 내 안의 고요가 들려주는 "지금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맷음말

세상의 소음이 잦아든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났습니다.



다시 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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