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철학

- 제10화. 무작위 재생된 낡은 음악: 기억의 소환 장치 -

by 방랑자 연필


제10화. 무작위 재생된 낡은 음악: 기억의 소환 장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낡은 음악 한 곡이 순식간에 나를 수십 년 전의 시간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멜로디의 결을 따라 그 시절의 공기, 냄새, 그리고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기억은 기록된 데이터가 아니라, 이처럼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를 찾아와 말을 거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20251215_103040.jpg


음악 소리에 실려 나를 찾아온 것은 악양천의 물소리입니다. 작가에게 악양천은 현대 사회의 어떤 경영학 서적보다 더 귀한 '필승 전략'을 가르쳐준 생존 학교였습니다. 친구들과 협력하여 둑을 쌓고 물을 퍼내며 고기를 잡던 기억, 참게 낚시를 통해 배운 인내와 타이밍의 미덕. 그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훗날 서울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작가를 지탱해 준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귀인의 필적' 작가의 자서전 중에서]


20251215_103327.jpg


기억은 때로 아픈 흔적으로 남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잃고 부적에 의지하며 살아야 했던 슬픈 사연이나, 노름으로 집을 잃었던 아버지의 회한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상처의 흔적들을 지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땅의 단단함을 깨닫고,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너희의 뿌리가 얼마나 강인했는지'를 자녀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처럼,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가장 소중한 조각입니다.['귀인의 필적' 작가의 자서전 중에서]


20251215_103051.jpg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앞을 보기보다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흩어진 삶의 지혜들을 모으는 작업입니다. 분당 탄천을 산책하며 악양천 소년의 순수한 마음을 되찾고, 새벽 산행에서 얻은 약수로 영혼을 씻어내던 작가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아름답게 조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20251215_103345.jpg


무작위로 재생된 음악은 이제 끝나가지만, 그 여운은 가슴속에 길게 남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한 편의 음악과 같습니다. 높은음과 낮은음, 빠른 템포와 느린 쉼표가 어우러져 하나의 곡을 완성하듯, 우리의 모든 순간은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작가가 자신의 치부와 자랑스러운 순간을 숨김없이 담아낸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삶이라는 곡을 온전히 사랑해야 합니다.


20251215_103216.jpg


식어버린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마음속에 조용히 흐르는 나만의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모든 방랑에는 돌아올 지혜의 집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안심하고 기억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낡은 음악이 말을 걸어올 때, 잊고 있던 내 안의 뿌리가 대답한다.'



다음 회 '커피 한 잔의 철학' 연재 에세이는 매주 월요일에 이어집니다.



모닝브루 작가

작가의 이전글동탄 3번 출구에서 만난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