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후, 다시 쓰는 인생의 문장들

-제9화. 가면을 벗는 용기: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

by 방랑자 연필


제9화. 가면을 벗는 용기: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명함이 사라진 자리, 벌거벗은 나를 마주하다

서랍 정리를 하다가 예전 사업가 시절의 명함을 발견했습니다. '대표이사'라는 굵은 글씨가 박힌 종이 한 장. 그 당시에는 이 작은 종이 한 장이 저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이 명함이 없으면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지요. 명함은 곧 저의 갑옷이자 가면이었습니다.


하지만 퇴사 후 그 가면을 벗었을 때, 거울 속에 비친 저는 낯설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직함도, 회사 이름도 없는 '그냥 나'. 그 고독한 순간에 저는 비로소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했습니다. '나는 명함 없이도 여전히 빛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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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실직과 새로운 발견 (지식 참조: '귀인의 필적')

사실 저는 이미 명함을 잃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40대 초반 IMF로 인한 갑작스러운 실직, 그리고 건강의 위기. 그때 저는 '창업 공신'이라는 안일함이 얼마나 무서운 독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저는 경영지도사라는 국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석사 학위를 따며 스스로를 재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53년 전,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던 시절의 기억이 저를 다시 일으켰습니다. 아버지는 악양골의 유지로서 많은 기부를 하셨지만 , 동시에 시대의 굴곡을 안고 고뇌하셨던 평범한 한 인간이기도 하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저는 '가장의 책임감'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나약함'을 동시에 배웠습니다.


8년 전 어머니를 보내드린 후, 저는 이제 누군가의 아들도, 누군가의 대표도 아닌 오롯이 '작가 방랑자 연필'로서 서기로 했습니다. 12년간 운영한 사업을 미련 없이 대리점주에게 넘겨준 것은 , 가짜 가면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는 대신 '진짜 나'를 찾는 지적 확장에 투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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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라는 최고의 브랜드

중년의 자기 브랜딩은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깎아내는 작업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 지보다, 내가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제 컨설턴트로서 중소기업의 성과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며 살아온 경험을 , 후배들에게 지혜로 나누어주는 삶을 꿈꿉니다. 이것은 명함 속 직함이 아니라 제 삶의 '필적(筆蹟)'에서 나오는 권위입니다. 가식 없는 진심은 언어의 부족함도 메울 수 있다는 것을 영국계 기업 면접 당시 박 전무님의 배려를 통해 이미 배웠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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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으면 처음에는 춥고 부끄럽지만, 그 자리에 햇살이 비치면 비로소 진짜 살결이 단단해집니다. 명함이 사라진 그 텅 빈 여백이야말로 내 삶의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갈 가장 깨끗한 도화지입니다.

'명함을 버리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 이름 석 자의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회 '마흔 이후, 다시 쓰는 인생의 문장들' 연재 에세이는 매주 수요일에 이어집니다.



다시 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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