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3번 출구에서 만난 미래

- 제25화. 재훈의 현장 감각: 노병의 귀환과 새로운 적 -

by 방랑자 연필


제25화. 재훈의 현장 감각: 노병의 귀환과 새로운 적


“방금 보신 것이 우리 '오라클' 시스템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재훈은 당황해 굳어버린 대기업 관계자들을 향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K-제조의 시스템은 완벽한 항온항습실에서는 잘 돌아가겠죠. 하지만 대한민국의 8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공장은 비가 오면 물이 새고, 여름엔 찌고, 겨울엔 업니다. 우리 AI는 그런 '현장의 비바람'을 견뎌온 데이터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기술은 화려할 수 있지만, 현장은 늘 투박합니다. 그 투박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은 죽은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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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 노련한 투자자가 무대 앞으로 다가왔다. “멋진 설명이었습니다. 기술 뒤에 숨은 사람의 냄새를 본 것 같군요.”


성공적인 시연이었다. 무대 뒤로 내려온 서진과 민혁은 재훈을 껴안으며 환호했다. 민혁은 눈물을 닦으며 재훈에게 말했다. “대표님… 아까 진짜 멋있었어요. 코딩은 제가 더 잘하지만, 세상 읽는 법은 대표님한테 다시 배워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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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순간, 군중 사이로 낯익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25년 전, 재훈의 아이디어를 훔치고 그를 구조조정 명단에 올렸던 장본인, K-제조의 권 상무였다.

“오랜만이군, 김재훈 부장. 아니, 이제 김 대표라고 불러야 하나?”

권 상무의 입가에는 비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늘 퍼포먼스는 좋았어. 하지만 조심해. 세상에는 비바람보다 더 무서운 게 많거든. 예를 들면… 법적 소송이나, 대규모 자본의 압박 같은 거 말이야. 자네가 가진 그 ‘현장의 지혜’, 우리 K-제조가 정식으로 특허 침해 소송을 걸면 어떻게 될 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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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의 눈빛이 다시 차갑게 식었다. 이제 겨우 한 걸음 내디뎠는데, 과거의 망령이 다시 발목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훈은 예전처럼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서진과 민혁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권 상무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갔다.


“해볼 테면 해봐, 권 상무. 당신은 여전히 숫자로 사람을 이기려 하는군. 하지만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야. 내 옆엔 미래를 만드는 아이들이 있고, 내 몸속엔 당신이 절대 훔치지 못할 25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까.”

동탄 3번 출구를 나서는 그들의 등 뒤로, 다시 한번 뜨거운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 25화 끝 —


목요일 연재 웹소설 26회가 이어집니다.



이해담 (Elias Th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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