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후, 다시 쓰는 인생의 문장들

제3화. 늦게 배운 감사의 기술 - 부족함이 가르쳐준 가장 큰 선물

by 방랑자 연필

게 제3화. 늦게 배운 감사의 기술

기술 — 부족함이 가르쳐준 가장 큰 선물

장 큰 선물

텅 빈 지갑과 냇물 소리

요즘 나는 매일 아침 간단한 식사 후, 아내와 함께 동네 야산을 산책한다. 산책길에 만나는 잔잔한 햇살과, 이름 모를 풀꽃에서 피어나는 작고 소박한 향기에도 문득 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런 작은 일상 속 '소확행'이 주는 만족감은, 젊은 날 치열하게 좇던 거대한 성취의 기억보다 더 오래 마음을 머물게 한다.


그러나 우리 가족의 역사에서 이토록 잔잔한 평온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이 일본에서 힘들게 모은 귀국 자금으로 마련했던 논과 집이, 아버지의 하룻밤 실수(노름)로 모두 사라진 그해 겨울 온 가족이 한겨울 냇가에서 찬물로 몸을 씻으며 회한에 잠긴 아버지, 그래서 어머니는 큰 누님을 데리고 셋방살이를 하셔야 했다.


그때의 아버지는 그저 모든 것이 '없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타향살이에서 돌아온 기쁨도 잠시, 평화는 짧았고, 삶의 터전은 일순간에 무너졌다. 그 시절 가족의 결핍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상처이자, 절망의 기호였다.



가장 아픈 결핍이 준 '충격적인 경고'

나 역시 성인이 된 후 바로 40대 초반, IMF 여파와 함께 닥쳐온 갑작스러운 실직의 고통이었다. 분당의 쾌적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지만, 그때 나는 깨달았다. 지난날의 그 '바쁨'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방패였으며, 나의 인생이 물질적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얼마나 위태롭게 달리고 있었는지 실직은 나를 넘어뜨리기 위한 저주가 아니라, 위태로운 질주를 멈추게 한 '충격적인 경고'였다.


직장을 잃은 고통의 한가운데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작은 개척교회의 새벽 찬송 소리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위로와 평안을 발견했다. 그때의 나는 늘 생존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그 멈춤의 순간, 공동체의 헌신적인 사랑과 도움은 나에게 '나 홀로 존재하지 않음'을 가르쳐주었다.


삶이 절망의 한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고통은 나를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하기 위한 부르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귀인의 필적/작가의 저서 중》



감사는 의식적인 훈련이다

성숙한 나이가 되고 나서야 나는 '감사'라는 것이 거창한 결과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의식적으로 발견하는 기술'임을 알게 되었다. 젊은 날에는 '모든 것을 가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명함이 사라진 텅 빈자리에서, 잔잔하게 퍼지는 커피 향 하나에도 감사하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발견한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굽이진 길을 지나며 얻은 '느리게 사는 기술'이자 '성찰'의 시간이었다.


어머니의 삶은 나에게 가장 훌륭한 '극복의 교과서'였다. 아버지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었을 때도, 어머니는 좌절 대신 '다시 시작하기 위한 섬세한 준비'를 선택하셨다. 어머니처럼, 나 역시 가장 아팠던 실패와 부족함이야말로, 나를 다시 단단하게 만든 '영혼의 양분'이었음을 인정한다. 부족함은 나에게 채워야 할 목표가 아니라, '나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다. 《귀인의 필적/작가의 저서 중 》


나는 지금도 '영원한 현역'을 목표로 AI를 배우고, 글쓰기에 정진하며 끊임없이 배움의 방랑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정진의 동력은 욕심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충분하다'는 감사에서 온다.



지혜의 모자이크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과거의 조각들, 실직의 충격, 궁핍했던 기억. 그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의 나를 구성한다. 그것들은 이제 흠집이 아니라, 빛을 반사하는 지혜의 거울이 되었다.


'가장 아팠던 실패의 조각들이, 가장 빛나는 지혜의 모자이크를 만든다.'




다시 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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