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3번 출구에서 만난 미래

- 제33화. 재훈의 망설임: 노병은 사라지는 것인가 -

by 방랑자 연필


제33화. 재훈의 망설임: 노병은 사라지는 것인가


회사가 커질수록 재훈의 내면에는 기묘한 소외감이 찾아왔다. 젊은 직원들이 수백 명으로 늘어나고, 회사 안에서 오가는 대화의 90%는 그가 여전히 돋보기를 써야 이해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적 논의들이었다. 재훈은 자신이 만든 이 거대한 파도 위에서, 과연 자신이 여전히 필요한 존재인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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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흐름을 버틸 수 있을까? 혹시 내가 아이들의 속도를 늦추고 있는 건 아닐까?”

재훈은 아내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내는 조용히 사과를 깎아 건네며 말했다. “당신은 배의 엔진이 아니라 닻이잖아요. 배가 아무리 빨라도 닻이 없으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떠내려가요. 아이들은 엔진을 돌리느라 바빠서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볼 시간이 없대요. 당신이 그걸 봐줘야죠.”


재훈은 아내의 말에 위안을 얻었지만, 현장은 냉정했다. 글로벌 진출을 앞두고 영입된 외국인 임원들은 재훈의 ‘현장 중심 철학’을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데이터는 숫자로 말합니다. 한국의 유별난 '정' 문화를 글로벌 표준에 억지로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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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은 사무실 구석에서 낡은 수첩을 만지작거렸다. 그 안에는 여전히 박 씨 아저씨의 허리 통증 주기와 대길이네 공장의 기계 소음 기록이 적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 수첩을 버려야 할지, 아니면 더 소중히 간직해야 할지 갈등했다.


그는 며칠간 회사를 비우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그가 향한 곳은 그가 처음 일을 배웠던 거제의 낡은 조선소였다. 녹슨 철판과 거친 바닷바람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묻기로 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인가, 아니면 새로운 전설이 될 것인가.


— 33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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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담 (Elias Th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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