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5화. 지하철 창밖의 풍경: 내가 속도를 늦추었을 때 보이는 것
제15화. 지하철 창밖의 풍경: 내가 속도를 늦추었을 때 보이는 것
[장면: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 안,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과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의 불빛]
지하철이 지상 구간으로 올라와 한강을 가로지릅니다. 창밖으로 퇴근길의 차량 행렬이 붉은 강물처럼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유리창에는 피로에 지친 나의 얼굴이 희미하게 겹쳐 보입니다. 열차는 굉음을 내며 다음 역을 향해 질주하지만, 정작 그 안에 탄 사람들은 모두 스마트폰 속에 고개를 묻은 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실려 가고 있습니다. 나 또한 오랫동안 저 속도감에 중독되어 살아왔습니다.
작가에게도 '속도'는 삶의 지상 과제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동 소년이 서울 강남의 IT 기업가로 성장하기까지, 그의 시계는 남들보다 두 배는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매출 달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렸고, 업계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새벽잠을 설쳤습니다. 하지만 《귀인의 필적 : 작가의 저서명 》은 그 질주의 끝에서 마주한 '멈춤'의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역주행을 감지했던 그 새벽의 서늘한 공기는, 무조건적인 속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워준 귀한 경고였습니다.
우리는 멈추면 뒤처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사업의 정점에서 용기 있게 속도를 늦췄습니다. 12년의 경영을 뒤로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배움을 시작했을 때, 세상은 그를 '실패한 방랑자'라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속도를 늦추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가족의 따뜻한 시선, 잊고 지냈던 하동 악양천의 물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지하철이 잠시 신호 대기를 위해 한강 다리 위에서 멈춰 섭니다. 순간적인 정막 속에 강물 위로 부서지는 달빛이 눈에 들어옵니다. 달리고 있을 때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풍경입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의도적인 멈춤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전진이 되기도 합니다. 작가가 60대에 AI를 배우고 글을 쓰는 것은 속도를 내기 위함이 아니라, 삶의 밀도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이제 그는 남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제 내 마음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도착지는 정해져 있고, 나는 그 과정을 온전히 누리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창밖의 풍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바라볼 마음의 여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적지는 속도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의 깊이다."
'커피 한 잔의 철학' 연재 에세이는 다음 주 월요일에 이어집니다.
모닝브루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