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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Dec 01. 2022

되치기 당하는 행복

손녀를 놀려먹다 되치기 당하는 행복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다

2살 된 손녀에게 팔을 가리키면서 “이것이 무엇이야?” 하니 “팔” 그런다.


난 “아니야, 다리야”했다.

손녀가 “아니야, 팔이야”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진리를 지키려고 하는 결연 함을 느낀다.


다시 단호하게 “아니야, 다리야”라고 하니 찡그린 얼굴로 내 눈을 조심스럽게 본다.

신뢰할 수 있는 할아버지인가? 하는 눈초리로.


손녀의 얼굴을 잠시 살피고 다리를 만지며 “이것이 무엇이야?” 했다.

강한 어조로 “다리” 한다.

반사적으로 나오는 쌘 소리로 “아니야, 팔이야” 했다.

손녀는 앙칼지게 “아니야, 다리야” 한다.

난 부드럽지만 굵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아니야, 팔이야” 했다.


손녀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한다.


난 손녀를 꼭 안고 팔을 만지며 “이것은 팔이지”

그리고 다리를 가리키며 “이것은 다리지” 했다.

손녀가 안심하는 표정이다.


손녀를 골려먹는 재미가 크다.


잠시 후 평안해진 손녀의 다리를 가리키면서 “이것이 무엇이야?” 했다.

“팔” 그런다.

팔을 가리키면서 “이것이 무엇이야?” 했더니” 다리” 하면서 깔깔거리고 웃는다.


손녀가 감을 잡았다.

할아버지가 놀림 놀이하는 것을.


손녀가 내 팔을 가리키면서 “할아버지 이것이 뭐야?” 한다.

“팔” 했더니 “아니야, 다리야” 하면서 좋아 죽는다.


또 다리를 가리키면서 “이것이 무엇이야” 하여 “다리” 했더니

“아니야, 팔이야” 하면서 뒤로 자빠지며 웃는다.


왜 할아버지가 팔을 다리라 하고 다리를 팔이라고 할까? 갈등하며 고민하던 손녀가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놀림 놀이한 것을 알고 거꾸로 할아버지를 놀려먹는다.


난 손녀를 놀려먹다 되치기를 당했다.


되치기를 당한 난 천국을 소유한 듯 행복하다.

아닌 것을 아니라 하고 바른 것을 고수하려는 당참을 보고,

할아버지의 진심을 읽고 놀림 놀이를 즐기는 손녀를 보며.

 

하나님도 우리를 놀려먹다 되치기 당하며 소통의 행복, 놀이의 행복을 누리고 싶으신가 보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를 않았다.

드린 제사를 거절당한 가인이 화가 나 버렸다.


가인을 하나님이 부르시면서 말씀을 한다.

“네가 화를 냄이 어쩜 이뇨?”


그래도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다.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아벨이 대답을 한다.

“내가 동생을 돌보는 자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가인을 못된 이들에게서 보호까지 하신다.


난 능력으로 아벨을 살리시든지

가인을 벌하시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이런 불공정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이러는 나에게 부드러운 음성이 들린다.  


“제사를 받는 자가 제사를 받지 않았으면 당연히 제사를 드린 자는

왜 내가 드린 제사를 받지 않았을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화내고 있는 가인에게 만국의 공통 언어인 양심의 문을 두드리시며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여 사랑 안에서 행복하기를 원하시는데….


가인은 하나님의 애처로운 문 두드림을 무시하고 아벨을 죽였다.


그래도 또다시 가인에게 죄를 고백하게 하여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문을 두드리시는데.

가인은 거짓에서 온 말로 사랑의 음성을 외면해 버린다.


양심을 통하여 들리는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생각지 않아서였는지,

제사를 받지 않아서 난 화에 갇혀서였는지,

자신보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아벨을 향한 질투에 매여서였는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로 놀려먹으며 소통하며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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