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준호 Dec 11. 2022

9. 착각 속에 누린 짧은 행복

일자리를 찾고 존재가치의 행복을 짧게 누리다

유천은 어리어리 하지만 할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일 자리를 잃었다 찾은 즐거움과 봉사하는 존재감에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겨우 이틀이 지났는데 손님이 많아진다.

"나의 친절 때문일까?

손님을 몰고 오는 사람도 있다더니...."

  

주인에게 도움 되는 존재감으로 뿌듯하다.  

진실하게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이들이 들어올 때면 차별을 느끼지 않게 하려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를 짓는다.

손님들의 만족한 쇼핑이 읽힌다.  


유천은 좋은 직장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한다.

인간관계는 역시 상대적이라는 진리도 확인이 된다.

사업이 어려워질 때는 자기 탓인 것을 깨달아야 하는 지혜도 새롭다.  


열심히 일해도 진심을 이야기해도 뜻이 전달되지도 열매도 없던 인간관계가 떠 오른다.

성스러운 옷을 입고 거룩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머릿속은 이해 득실을 계산하며 상대하던 관계와 비교하니 천국에 있는 듯하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손님이 요구하는 담배를 찾기 위해 돌아서 진열대를 훑고 있을 때였다.


거슬리는 웃음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본능적으로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한 사내가 똥 싸 뭉갠 표정을 짓고는 얼어붙어 엉거주춤 서 있다.


유천의 몸과 머리의 세포들이 얼어붙는다.

잠바 속에 상품을 몰래 집어넣다 흘리는 것을 본 동료에게서 터져 나온 비명의 웃음소리였다.


사내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유천의 눈치를 살핀다.

웃음의 의미가 자신을 희롱하다 터진 것임을 안 유천은 분노와 두려움이 동시에 인다.


 담배를 찾아 달라는 요구가 물건을 잠바 속에 넣기 위한 공범들의 작전이었다.

"어떻게 할까?

주인이 코치해 준 대로 욕하며 몽둥이를 휘두를까?

시범케이스로 삼아 기선을 제압할까?

여기서 밀리면 계속 일하기가 힘들어지는데…."

  

수많은 계산에 뇌가 과열돼 몸이 촉촉하다.


계산된 결과를 기다릴 겨를 없이 엉거주춤 서있는 사내에게 걸어가 기죽은 눈동자를 째려본다.  

가게 안에 긴장감이 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든 시선이 유천에게 모인다.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도둑에게 뜻밖의 위엄스럽기도 바보스럽기도 한 유천의 한마디가 긴장했던 모두의 다리 힘을 풀리게 한다.  

"Please Don’t do that. It is not good for you."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몽둥이를 들고 설치다 경찰에 신고할 것을 예상했던 도둑이 뜻하지 않은 반응에

"OK" 대답을 엉겁결에 하곤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잠시 엉거주춤  서 있다 어깨를 으쓱 펴고 팔자걸음으로 가계를 나간다.


도둑질하다 걸려 본 중 이렇게 점잖은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어안이 벙벙해진 사내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켓 안은 평상시 느껴보지 못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파킹 낫에서는 서로를 바라보며 너도 나도 주문을 외우듯 주절거리며 즐거워한다.   

"Please Don’t do that. It is not good for you."


유행어가 파킹 낫을 날아 온 동네에 퍼진다.  


몇일이 지났다. 

마켓에 손님 몇이 들어와 들어보지 못한 담배를 찾는다.


유천은 진열장으로 돌아서 진열장을 훑고 또 훑는다.

작전에 성공한 사내는 순간을 놓칠 새라 잠바 속에 상품을 집어넣느라 바쁘다.


직감으로 상황을 알아챈 유천이 아무 말이 없이 사내에게 다가가 물건을 빼앗아 제 자리에 돌려놓는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Please don’t do that it is not good for you" 한다.  


바보가 마켓을 지키는 상황을 사내들은  신기하여 즐기고 또 즐긴다.

하루 밤이 지난 후 마켓은 더 활기에 차다.

평상시 보이지 않던 얼굴들도 보인다.

옆 동네에서 원정을 왔다.   


유천은 삶이 고달프다.

"공포를 한 방 쏠까?

몽둥이를 들고 설쳐 댈까?"


고민을 해 보지만 용기가 없다.

주인의 실망한 얼굴이 떠 오른다.

바보 취급당하는 분노도 인다.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손님이 없을 때에도 귓전에서 끊임없이 들린다.


"알량한 신앙심 때문일까?

뒤 처리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서 일까?

연극 소질이 없어서 일까?"


오후 가게로 돌아온 주인이 유천에게 묻는다.

 "할만하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 8. 캐쉬어가 권총도 필요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