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준호 Dec 26. 2022

미켈란젤로와 공감하는 즐거움

예술 작품 감상은 작가의 마음 이해가 우선 되어야  

"미켈란젤로와 공감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어요.

가슴이 쿵쾅거리고 눈뜨는 환희와 함께 존재가치를 높일 용기가 솟는 거예요."


덕천 :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봐.


"전에는 미술관에 가 그림 앞에만 서면 군침만 삼키며 건성으로 감상하는 척하다 돌아서곤 했어요. 

보기 좋으면 '잘 그린 그림이구나' 별로이면 '이런 그림이 왜 여기에 있지?' 혼자 중얼거리며.....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감상하는 법을 터득했거든요."

만 섭이 이야기한다


덕천: 어떻게 무엇을 터득했는데?


만섭: 그림을 감상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확신이 드는 거예요.

하나는 작가가 표현하는 기술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가 묘사하려는 진실을 보는.....


이들 중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에요? 

그림이 소통의 도구라면.... 


그리고 표현하려는 진실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이 크게 되면 될수록, 

그 공감이 절절하면 절절할수록 큰 작품 될 소지가 있는 것이고.


그다음이 묘사하는 기술 아니에요?

그러나 표현방법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계속 발전하고 있어요.

나는 그 표현 기법과 변화를 모르니 자연스레 그림 감상을 포기했어요.


결국 그림 감상은 점점 소수의 특권이 되어 버리고 

돈 많은 놈들은 그림 감상을 할 줄도 모르며 그림을 재산 증식용으로, 

자기 과신용으로 만족의 도구로 소장하고 있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감정사라는 직업까지 등장하고.....

자신은 그림 볼 줄 모르니 감정사의 말만 믿고 그림을 사고팔고 하는 것이 웃기는 일 아니에요?

 

오래된 그림은 희귀성이 높아지니 가치가 높아져 비싸지고.

화가의 명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그래서 명성을 얻으려 발버둥 치고.


사실 기법만 알고 작가의 마음을 모르면 작품을 통한 예술성은 무시되는 것 아니에요?


만수: 앙꼬 없는 찐빵이네요.

그래서 전시회는 대중은 들러리를 서고 예술가들과 돈 많은 사람들만의 잔치가 되는 것이고....


만섭 : 이런 현실을 생각하며 천지창조를 감상을 하는데 미캘란제로의 진심이 담긴 절절한 신앙 고백이 공감이 되는 거예요.


그때 상황을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아요.

성전의 건물은 거룩하고 위엄 있게 지어졌어요.

성직자들은 화려하고 위엄 있는 롭을 입고 하나님의 권위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온갖 혜택을 누리고 있었고. 


그들은 백성들이 진리에 눈 뜨도록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하나님과 소통되도록 하여야 하고, 

그래서 어린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지헤롭게 되어 풍성한 삶을 누려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러나 그때의 실제는 어땠어요?

백성들은 장님이 되었잖아요.

그리고 무시당하고 이용당하고.


교회 지도자라는 이들은 백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신학 용어로 하나님을 설명하고,

자기들이 만든 설로 '이래야 천국 간다. 저래야 축복받는다' 구라 치며 

자기들 배만 채우는 거예요.


그러며 자기들이 특별한 은총을 받은 선택받은 사람인양 거들먹거리고 있었잖아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논리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목마름을 느꼈을 거예요.


미켈란젤로는 이런 세상에 살며 어뗐을까요?

처음엔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려 했을 거예요. 

그러다 믿어지지 않고 따를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질문했을 거예요. 그리고 찾고 구했겠지요. 울부짖으며.


그러다 결론을 얻었을 거예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벌거벗어야 한다고

아니면 벌거벗은 초라하고 연약한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성전과 성직자들을 보고 화났을 거예요.  

인간들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애처로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은총을 갈구하는 목마른 어린 백성들의 마음이 보이는 거예요.

 

이런 미캘란제로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거예요.

처음엔 거절을 했을 거예요.

신앙 고백을 묘사하려니 너무도 환경과 역행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도 느꼈을 거예요.

그러나 결국 교황과 단판 짓고 성전 천장을 바라보고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생명을 걸고. 

 

하나님에 관해 궁금한 것은 많은데 질문조차 할 수는 없는 목마른 백성들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백성들이 혹 질문하면 믿음 없다 정죄를 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말로 설명하며 자기들의 권위는 높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간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고발하고 벌주는 듯. 


모르면서 가르치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할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모른다고 고백하고 함께 질문하고 답하다 보면 저절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데,

교회의 관습과 권위와 먹고살아야 하는 현실에 짓눌려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이런 줄도 모르고 순수하고 겸손한 백성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 같은 것이 어떻게 다 알겠느냐’ 생각하고 그저 빌고, 위로받고, 기대하며 장님이 되어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그렸을 거예요. 


이 미켈란젤로의 마음과 하나님의 애처로운 마음의 표현이 천지창조의 두 손끝이 닿을 듯 말듯한 그림 아니에요? 


덕천 : 그래도 성전에서 용기 잃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외로운 자들에게 위안을 주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만섭: 물론 많았겠지요. 

그러나 용기를 주고 위안을 주었지만 그 용기와 위안이 시간이 흐른 후 더 큰 실망이 된 경우도 많았을 거예요.


세상의 일에는 용기 주고 위로하며 밀어붙여서 되는 일도 있지만 

더 손해가 되는 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미래가 밝은 길로 사실을 정확하게 보고 지혜롭게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인도해야 하는데 

그저 믿어라 도와주실 것이다 만 하면 안 되는 거지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결국 더러는 교회를 떠나고, 

더러는 뜨거운 믿음이 있어지려 더 열심을 내었을 것이고

더러는 능력 있다는 목회자를 찾아다니게 되었겠지요. 

이때 사이비들은 입에 발린 거짓으로 이들의 감정을 신비스러운 말로 뜨겁게 하여 자기들에게 맹종하는 종으로 삼기도 하였고.

 

그 덕으로 더 큰 성전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신비스럽게 짓고 꾸미고, 

찬양을 열정적으로 뜨겁게, 혹은 경건하고 부르고,

더욱 위엄 있고 고상하게 성직자들만 입는 가운을 꾸미게 되었겠지요.  


이러는 사이 불쌍한 백성들은 이중 인격자가 되기도, 

맹목적인 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에요? 


그리고 욕심 가득한 성직자들은 권력과 부를 동시에 가지게 되고…. 

양심의 소리를 듣는 성직자들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결국 성전은 위선과 허구의 탈을 쓴 도둑놈들 소굴이 되고 말았던 것 아니에요?

율법과 교리로 인간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노예로 바보로 만들어 버리면서. 


이럴 때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지만 그 욕망을 포기하고 나름대로의 철학과 삶의 지혜로 살아가려 외롭게 발버둥 치게 되었을 거예요.


이것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이 하나님의 마음과 공감이 된 미켈란젤로는 성전 천장과 벽에 인간의 적나라한 나체를 그려 넣으며 타는 목마름으로 생명을 건 질문과 고발을 동시에 하고 있음을 느꼈어요. 


이 뜨거운 신앙고백이 천장 만을 바라보며 4년 동안의 붓놀림을 하게 한 것 아닐까요?

몸이 상함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신비한 생수가 흘러나오게 되는 거예요. 

틀을 벗고 붓놀림을 하는 동안 하나님 영이 그림 안에 녹아들어 갔던 것 아닐까요?

신앙의 신비라고 할까? 

정직한 신앙 고백을 할 때 나타나는 신비라고 할까?”


만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예수님이 성전에서 상을 뒤엎으며 장사꾼들을 내어 좇는 영상이 떠올라요. 

미켈란젤로가 이때 예수님 마음과 하나 되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 하나님의 능력이 그 그림에 나타나게 된 것이고…..


유천 :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작품 활동이 결국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불씨가 된 것 아닐까요?


만수: 어둠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잘 못 된 것들과 바른 것을 드러내는 진리를 보는 듯해요.


만섭: 몸의 상함 가운데 교회와 인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작품으로 번역하여 전하는 미켈란젤로의 메시지가 시대가 많이 지났는데도 내 영에게도 전하는 것 같아요.


유천: 진리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미켈란젤로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미켈란젤로와 공감이 되는 것이고….

   

만수 : 결국 우리 안에 있는 분이 하시는 말씀에 따른 생각과 주어진 탤런트를 삶에 옮겨 놓으며 작품을 만들어 나가면 저절로 공감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신앙의 열매가 되는 것 같아요.


덕천 : 하나님과 진리는 변하지를 않으니 세대와 문화의 차이를 초월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만섭: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줄 모르고, 그림 감상하는 것조차 기죽어 포기했던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며 작가와 공감을 이루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용기가 솟아요. 


대섭 : 세상에서 어떤 역경을 만나도 헤쳐 나갈 용기가 솟아요

어떤 역할을 하며 살 것인지 사명감도 가지게 되고…..


작가의 이전글 또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