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라치면 냄비 하나씩을 들고 할머니 유천 유상 유승 유희 유미 이모가 평창 강으로 간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에 빗방울이 작은 물 둘레를 만들면 다슬기들이 강바닥에 거무스레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떼거지 된 가족이 각기 흩어져 물속의 다슬기를 더듬거려 줍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하나 둘 다슬기를 건저 냄비에 담다 한쪽 허리를 손으로 받쳐 펴 일어서곤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자연이 준 선물을 얻는 즐거움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즐거움일까? 헤어져 외로움을 맛보다 떼거지 된 즐거움일까?
사랑이 자신을 지키는 보호 본능까지 잃어버리게 하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는 깊은 곳으로 이동을 한다. 탐스럽게 큰 다슬기를 손주들에게 먹이고 싶은가 보다. 깊은 곳일수록 많지만 힘들고 위험해지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춥고 배 고픔을 느껴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본다. 땅거미가 내린다. 할머니께서 "이제 그만 돌아가자"는 말씀에 강가로 나와 건진 다슬기를 큰 냄비에 모은다. 부자나 된 듯 서로의 얼굴과 다슬기를 번갈아 보고 또 보며 행복해한다. 일한 대가에 만족한 것일까? 사랑이 함께하는 즐거움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도 가볍다.
집으로 돌아온 모두가 마루에 걸터앉고 더러는 팔자로 누워 휴식을 취한다. 할머니만 혼자 다슬기들을 벅벅 문질러 씻는다. 지침도 피곤함도 없는 듯 깨끗이 씻은 다슬기를 다라에 담아 두곤 부엌과 텃밭 장독대를 바쁘게 다니며 양념 준비에 여념이 없다. 지켜보던 녀석들이 미안함 때문일까? 안쓰러움 때문일까? 일어나 할머니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수다를 떤다.
유상이가 다슬기를 담아 둔 그릇을 보고 소리를 친다.
"이것 좀 봐. 유승아 유희야 유미야 이리들 와 봐"
다슬기들 모두가 더듬이로 더듬거리며 속 살들까지 나와 꼼지락거린다. 단단한 집을 등에 지고 서로 엉겨 꼼틀거리는 생명의 신비함에 얼을 잃고 머리를 맞대어 원형 지붕을 만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할머니가
“잠깐 물러서라” 하시곤 원형 지붕이 해체된 공간 밑에서 고물거리는 다슬기들에게 펄펄 끓는 물을 좌-악 붓는다.
무거운 정막이 흐른다. 잔인함에 놀란 것일까? 죄책감 때문일까? 불쌍한 마음이 일어서 일까? 생명의 연결고리의 잔인한 현실 앞에서 생의 덧없음을 느껴서일까? 먹거리를 찾으려 나왔는지, 낯선 곳 구경을 하러 나왔는지, 사랑하며 즐기려 나왔는지, 단단한 껍질 밖으로 나와 생명의 경이를 보여 주던 속 살들이 움직임을 모두 멈추어 버렸다.
할머니는 속 살을 드러낸 채 고요해진 다슬기들을 솥에 붓고 된장과 마늘 그리고 듬성듬성 썬 양파를 넣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숙연 함으로 조용해진 부엌을 구수한 된장 냄새가 구석구석을 채운다. 적당한 시간이 흘렀는가 보다. 솥뚜껑 여는 할머니의 얼굴에 다슬기의 구수한 냄새가 뜨거운 김 되어 세차게 달려든다.
숨을 멈추고 얼굴을 돌려 피한 할머니는 전쟁에서 승전하고 돌아온 장수나 된 듯 힘차게 국자로 다슬기들을 휘휘 젓고는 건져 내어 냄비에 담아 손주들 앞에 놓는다. 유천과 유상 유승이와 유희 유미가 냄비 주위에 둘러앉아 살포시 내민 속살을 바늘로 콕콕 찔러 단단한 껍질 속의 살들을 끄집어 내 먹는다.
잔인하게 생명을 살상한 미안한 마음들은 어디로 갔는지…. 인간은 양심을 망각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속 살을 끄집어 내 먹다 구수한 국물까지 훌훌 마시며 행복해하는 손주들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5명의 아들을 잃으며 생긴 상처와 여자여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상처들이 깨끗이 사라진 듯하다.
사랑은 때로는 잔인하게, 때로는 뻔뻔스럽게, 때로는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도 즐겁게, 때로는 끝까지 무모한 도전을 하게 하는 힘을 주고, 때로는 한없이 넓은 마음이 되게 하는 신비한 능력으로 세상을 이끌고 있음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