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지기 시작을 하자 유천과 유상이 마당에 멍석을 핀다. 할아버지는 그 옆으로 화로를 옮기고 숯불 위에 마른 솔잎과 나뭇가지를 놓고 그 위에 싱싱한 쑥을 한 다발을 올려놓는다. 숯불이 탁탁 거리며 불꽃을 튀겨 솔잎과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곤 살아 있는 쑥을 태우려 한다. 하지만 쑥은 불은커녕 반항하는 독한 냄새의 연기를 요란스레 피운다. 연기에 놀란 모두가 몸을 기울여 피하며 손으로 휘휘 저어 흩는다.
신기하게도 모기들의 공격에서 자유 해 진 가족이 차려진 상 주위에 둘러앉았다. 식탁을 축복하는 듯 밤하늘의 별들은 별똥별을 여기저기 흩뿌리며 은은하게 식탁을 비추고 가족 모두가 고개 숙여 기도를 한다. 이때다 “종교 전쟁을 알리는 것인지 사랑싸움인지” 숟가락과 그릇의 부딪히는 소리가 거슬리게 들란다.
식탁에 둘러앉아 머리 숙이고 있던 모두가 말하진 않아도 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공감하며 할머니가 손으로 밀어 만든 감자 칼국수를 훌훌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께 "기도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도 기다려 주지 못하니!" 할머니의 불평이 터져 나온다.
할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잡음 좀 있다고 하나님이 들을 소리를 못 듣겠어?" 하시곤 "그렇지 않니?" 손주들에게 응원을 구한다.
순순히 백기 들 할머니가 아니다.
"할아버지는 모내기하고 김매는 날을 꼭 주일로 정하시더라. 왜 그러셨지 몰라." 공격이 쌍방 간에 이루어졌다.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시던 할아버지가 전세가 기울었다고 여기셨는지
"하나님이 모를 심어 줘, 김을 매 줘.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교회에 꼬박꼬박 가져다주는 것을 눈감아 주고 있는데,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불평을 해? 하나님이 있는데 왜 열심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망하고 병들어? 방언한다 입신한다 예언한다는 사람들, 교회에서 장로다 권사다 하는 사람들 싸움질만 잘하고…..
바쁜 농사철에 머리에 반지르르하게 기름 바른 목사를, 짙게 화장하고 궁둥이를 살랑거리며 따라다니는 수 명의 여자들이, 동네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것을 보며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이 얼마 많은지 알아?
예수를 믿으면 존경받게 살아야 그들을 보고 교회를 나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오히려 눈꼴사나운 모습들만 보이니 원."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둘러보며 같은 편 되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너희들도 하나님이 믿어지니?" 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하고, 사람이 대답을 하고. 그런데 지금은 왜 안 해? 말도 안 되는 기적은 왜 그렇게 많은지….. 성경에서만 할 것이 아니고 지금 그런 기적을 보여 주면 안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에게 그런 기적을 보여 주면 내 재산 다 팔아서 교회에 바치고 믿지. 유천아 안 그래? 넌 학교에서 공부하니 더 잘 알겠지!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지 않는지 몰라! 세상에 도둑놈들과 사기꾼이 이렇게 많은데."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그만해요. 입으로 죄짓고 있는 것을 몰라서 그래요? 하나님의 일을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다 알아요."
유천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벌이는 다툼을 재미나게 바라보는 듯 한 별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한다. "저들은 질문의 답을 모두 알고 있을까? 사랑하는 자녀들과 이별의 통증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도? 질문의 답을 듣는 순간이 행복이 시작되는 순간일 텐데..." 한숨이 나온다.
주일이 되었다. 손주들과 함께 고운 옷을 차려입고 교회를 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가볍다. 성도들이 유천과 유상이 그리고 유승이와 유희 유미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으며
"손주들이 모두 잘 생겼어요. 총명하기도 하고. 한몫 단단하게 할 것 같아요."
할머니의 어깨가 으쓱해지지만 겸손한 웃음을 웃으며
"감사합니다." 한다.
유천은 예배 시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게 된 걸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는데 보여주시지를 않을까? 그것이 어렵다면 꿈에라도 나타나 주셔도 믿을 수 있는데…. 목사님은 수많은 질문의 대답을 모두 아셔서 목사가 되었을까?"
유천은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설교를 들으며 손들고 질문할 수 없는 답답함에 눈을 감는다.
"할머니와 함께 살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는데..... 눈 감고 있을 때 환상이라도 보여 주시면 믿을 수 있을 텐데…"
유천은 할아버지의 말에 더 공감이 된다. 할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하나님을 믿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엔 예수님도 하나님도 믿어졌는데, 지금은 의심 투성 이이다.
"믿다 믿어지지 않으면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이성을 통해 가르치는 학교 공부가 믿음을 방해하는 것일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신앙을 방해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바보가 되어야 좋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할머니가 원하는 목사도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이 계시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데,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사는 것을 포기하고 거룩한 모습으로만 사는 것은 억울해서 싫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성직자로 흩으러 짐 없이 살 자신도 없지만. 성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하고, 의문스러운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그것에 인생을 걸 가치가 없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신비한 세상과 할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목사 되고 싶은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유천은 목사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 많은 질문이 인다.
"왜 사랑의 하나님이 믿는 자들만 구원시켜 주고 믿지 않는다고 지옥을 보낼까? 태어난 시대와 환경이 예수의 이름을 모르고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지옥을 보내?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모세 야곱 에스겔 다 지옥을 가야 하는데.... 왜 하나님은 믿기지 않도록 만들어 놓고 믿으라 하실까?"
그러나 믿지 않으려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신비한 것이 주위에 너무도 많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 강물 속에서 각기 다르게 생존하며 종을 번식시키는 오만 가지 생물들, 머리도 없는 식물들이 봄이 되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싹을 틔우고 자라 꽃을 피우곤 하는지…. 후세를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아름다운 꽃을 가장 잘 보이는 높은 곳에 피게 하고 벌과 나비들을 모으는 지혜가 우연한 진화에 의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일까?
우연을 의지하기에는 너무 치밀한 과학과 예술의 조화에서 나온 세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다운 꽃들을 피우고 열매 맺고 그 열매를 먹고사는 동물들, 이렇게 생존의 고리로 연결된 자연, 각종 새들이 서로 각기 다른 방법으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신비, 먹은 음식들이 피로 살로 머리털로 에너지로 변하는 모든 현상들을 우연이 진화하였다고 믿을 자신이 없다. 여기에 사랑하는 할머니가 믿는 것을 바라니 믿고는 싶은데…..
유천은 교회에서 같은 기도만 반복을 한다.
"하나님 한 번만 보여 주세요."
스스로 세뇌를 시키려 “믿습니다”를 반복하고 또 반복을 해 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를 않는다.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 출세를 해야겠다는 소망과 함께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유천을 방황케 한다. 한 번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확인되면 갈등 없이 목사가 될 수가 있을 텐데…..
사랑받고 갈등하는 사이 한 달이 지났다. 내일은 헤어져야 할 시간. 할머니와 손주들은 헤어지기 며칠 전부터 말 수가 줄어들다 마지막 날이면 아예 입을 닫아 버린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마지막 밤은 없는 듯 시간이 흐르고 아침이 온다. 아침을 먹는지 마는지…. 모두가 울적한 마음으로 한 달 전에 푼 짐을 다시 꾸린다.
유천은 신작로에 나가 버스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가운데 질문을 한다.
"하나님은 왜 세상에 이별을 만들어 놓았을까?"
외롭게 사시는 꼬부랑 할머니를 두고 떠나는 이별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죽기까지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아픈 이별 가운데 살게 하는 것일까?"
오지 않기를 바라던 버스가 얄밉게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모두의 앞에 와 멈춘다. 유상과 유승 유미 유희가 할머니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유천은 모두가 버스에 오른 뒤 할머니를 뒤돌아 보며 이별을 싣고 갈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뽀얀 먼지 속에 할머니를 팽개치고 냉정하게 떠나 버린다. 멀어지는 버스를 허무 해 멍하니 쳐다보는 먼지 속의 할머니를 유천은 아린 마음으로 본다.
그러다 산 모퉁이를 돌아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덜컹거리는 자동차 안에서 질문을 한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살지를 못할까? 왜 인간은 이별의 아픔 속에 살아야 할까?"
외롭게 남은 할머니를 생각하는 유천은 가슴이 아리다.
4살이 되었을까. 유천은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자신을 느끼며 외로움에 떤 기억이 돼 살아난다. 하지만 이 분리와 외로움, 그리고 별들만이 알 듯한 질문들이 풀리는 날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행복도 누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