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훤하게 동트기 전 일어나 일터로 나간다. 공부 못해서 겪는 설움을 3 아들과 3 딸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면 하늘이 도와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가 저 어두워 일할 수 없을 때까지 죽을힘을 다한다.
아들들과 딸들이 동시에 학교를 가기 위해 책가방을 매고 손을 내밀기 일쑤다.
"학교에 낼 돈이 만원이에요. 책을 사야 해요."
손 벌리는 아들 딸들에게 어머니가 짜증을 내며
"미리 얘기를 해야지. 지금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 너희는 내가 돈을 항상 쌓아 놓고 있는 줄 아니?"
어머니는 잔소리를 하면서 핑계는 듣지도 않고 종종걸음으로 옆집으로 향한다.
아침부터 돈 빌리러 가는 일이 죽기보다 싫지만 자식들만은 무식을 면하게 하려는 일념으로 상춘 네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선다.
"상춘 엄마 있어?"
문을 반만 연 상춘 엄마가 고개를 내밀고
"무슨 일이야 일찍부터!" 한다
"돈 좀 있어? 이 놈의 새끼들이 책가방 들고서 돈 달라고 그러네."
부끄럼도 자존심 상함도 숨기고 태연한 척 이야기한다.
뒤통수가 화끈 거림을 느끼며 기다리다 돈을 받아 들고는 쏜살같이 상춘 내 집을 나선다. 가을에 추수하고 나면 갚고 내년에는 돈 꾸러 다니지 않을 다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가을이 되었다. 추수 한 곡식을 모두 팔았다.
어머니가 장사꾼에게 받은 돈을 세는 아버지 옆으로 다가가 침을 꿀꺽 삼키며 본다.
돈을 다 세고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상념에 잠긴 남편에게 돈을 받아 손가락에 침을 바르며 세고 또 센다.
봄 여름 가을에 진 빚 장부를 가지고 계산을 하고 또 하다 둘은 풀 죽어 허탈한 모습이 된다.
빚을 갚기는커녕 내년 농사 지을 빚을 또 얻어야 한다.
아버지는 입맛을 다시며 유천을 부른다.
"건너 음지 마을에 가서 막걸리 한 되만 사와라."
유천은 주전자를 들고 달려가 외상 술을 사 온다.
아버지는 아들이 사 온 술을 꿀꺽꿀꺽 단숨에 마시고 진정이 되는가 보다.
"내년에는 어떻게 해서든 빚을 다 정리해야지."
봄을 맞이 한 아버지는 남들이 잠자고 있는 이른 새벽부터 어두워 보이지 않아 일할 수 없을 때까지 뼈 빠지게 일을 하고 또 한다. 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추수를 마치고 정산을 하지만 지난 해 보다 빚은 더 늘어나 있다.
밤에 잠자야 하는 농부는 쉬는 시간 없이 불어 나는 빚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아버지에게는 일 할 수 없는 겨울이 원망스럽다.
빚을 따라잡을 수 없는 초조함을 술로 달래려 몇 날을 취해 보지만 헛일 인 줄을 알고 결단을 내린다.
철 뚝 건너 산 자락에 있는 밭을 팔기로….
복덕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젊은이들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곤 아부기 있는 인사를 건넨다.
"어르신네는 좋겠어요. 아들 딸들 모두가 공부를 잘하니. 대학을 졸업하면 몇 배의 땅을 사서 아버님께 드릴 거예요."
아버지는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땅 흥정을 쉽게 해 버린다.
계약금을 받아 든 아버지는 먼저 술집으로 간다.
잔금을 받고 땅문서를 내주는 일만 남았다.
농사꾼이 땅문서를 내주는 일은 생명의 일부를 내주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다. 미래에 자식들이 돈 벌어 땅을 다시 사는 기대로 위로를 삼으려 하지만, 먼 훗 날의 일이라.....
현재의 아픈 마음을 달래 주는 것은 술이 최고다.
마시고 또 마셔도 술 술 술 하며 잘 넘어간다.
상한 마음으로 타는 목마름이 해갈되며 세상이 손바닥 안에 있는 듯 하지만 홀로 몸 가누기 힘겹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하며 아버지는 길거리에서 우주의 재판관이나 된 듯 세상과 하나님을 향해 꾸짖다 때로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나쁜 놈들. 이자를 그렇게 비싸게 받아 처먹어!
하나님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존재야?
정직하게 근면하게 최선을 다해 일하는데 왜 빚만 늘어나게 해?
빚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일할 시간은 주어야 할 것 아니야.
밤과 겨울에 쉬게 해서 빚을 감당 할 수 없게 만들면 어떻게 하란 말이야!
더러운 세상."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유천과 유상이와 유승이를 안고서
“내 새끼들” 하며 포옹하고 볼을 비빈다.
술 냄새 역겨워 품을 빠져나간 아들들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부인에게
"그래도 팔아먹을 땅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이것마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너털웃음을 웃다 중얼거리다 화냈다 호령하기를 반복하고 또 한다.
아버지에게 유천이 제안을 한다.
"우리 농사짓지 말고 땅 다 팔아서 시내로 나가서 장사해요."
아버지가
"하하하하 이놈아. 장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아니?
너의 삼촌이 장사하는 것을 나는 늘 본다.
물건을 살 때도 팔 때도 저울에 속지 않으려 눈에 불을 켜고,
농부들에게는 농산물을 사려고 간과 쓸개 다 빼놓고, 팔 때는 사는 놈에게 얼마나 또 아부를 해야 하는지 알아?
진리와 경우를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하여 신뢰하는 친구가 된 사이인데도 농산물을 사 가지고 와 달아 보면 고추 근수가 터무니없이 모자랄 때가 많데.
사온 고추를 쏟아 보면 겉과 속이 다른 경우도 허다하고.
웃기는 세상이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는 선한 일을 위해 사는 듯하다 돈이 개입된 후 돌아서면 도둑놈도 사기꾼도 쉽게 되어 버리는 것이 인간이야.
그런데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장사를 해?
이문 남겨 먹는 것으로 장사꾼들이 먹고사는 것은 알지만 자기 주머니에 있는 돈이 나가 상대의 이익이 되면 배 아파하는 것이 사람들의 심보야.
양심 적인 사람들도 더러는 있겠지….
그러나 그들을 상대해서 번 돈을 아침저녁이 다르게 필요에 따라 말 바꾸며 살아가는 놈들에게 꼬라박아야 하는 장사 판에서 너 살아남을 자신 있어?
서울에서 내려온 장사꾼들에게 물건을 팔아먹으려면 얼마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줄 알아?
술 사 주며 별의별 아부를 다 떨어 마음을 산 듯해도 이해타산에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다른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 가지고 간데. 뒤도 안 돌아보고.
그러다 어떤 놈들은 외상으로 물건을 가지고 가서는 돈을 안 보내 준다는 거야.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물건 값 받으려 몇 번씩 서울을 올라갔다 와야 한데.
돈 받으러 가는데 차비와 여관비 들지, 밥 사 먹어야지.
혼자 지내는 밤이 지루하여 술 한잔하고 나면 물건 값 받은 것이 다 사라져 버린데.
그래도 그것은 괜찮다는 거야. 찾아가 보면 없어진 놈들도 있다는 거야.
그래서 삼촌이 늘 술에 절어 있는 거 너 알아?
이 놈 비위 맞추고 저놈 비위 맞추느라 술사 주며 마시고, 손해 봐서 마시고 그러다 이문이 남으면 남았다고 마시고…..
농산물 값이 오를 때는 물건을 사 쌓아 놓기도 해야 하는데 그럴 돈이 어디 있어.
그러다 혹 여유가 생겨 물건을 사 사재기라도 하면 값이 떨어진다는구나.
느긋하게 버텨줘야 하는데. 뒷돈이 없으니 밑지고 팔 수밖에…
그래서 값이 떨어질 때 팔고 값이 올라 비쌀 때 사게 되는 세상 너 알아?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인데 너 그런 돈 있어?
그런 세상에서 땅을 팔아 장사를 하다 말아먹으면 우리는 쪽박을 차야 해.
너는 잘 기억 못 할 거야. 삼촌이 어렵게 장사를 하면서 점점 빚이 많아졌어.
이것을 만회해 보려 할아버지 땅을 담보로 해서 빚을 내 장사 밑천에 보탰지.
그래도 모자라 힘들어하고 있는데 중동의 건설 현장에 나가 돈 벌어온 사람이 있었지. 승철 아저씨 너도 알잖아.
삼촌의 사정을 속속 드리 모르고 투자를 하겠다고 한 거야.
착한 삼촌만 믿은 거지. 삼촌은 얼씨구나 하고.
‘투자금을 다 날릴 수도 있어요.' 그래야 되는데 그렇게 이야기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서로 신뢰하고 열심히 하면 안 될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한 거지. 정직하지 않은 말이지만 믿을 만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지.
삼촌도 처음에는 자본이 넉넉해지니 잘 될 것이라 믿었겠지…. 인간 사는 것이 다 그런 거야.
동업을 시작하고 물건을 사는데 값이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거야.
그래도 하늘이 도울 것을 기대하며 열심히 했지. 정직하면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는 기대도 했고.
그러나 세상은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알아주지를 않아. 본래 그런 사람은 없기 때문 일거야.
자기 이익에 어떤 유익이 있느냐를 가지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세상이니까.
착한 사람들은 이용할 상대로 생각하면서.
그러다 여유 있을 때 동정의 마음이 발동하면 선한 일을 조금 하고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겠지 기대를 하고….
결국 삼촌은 다시 늘어 나는 빚을 감당 못하고 빚쟁이들에게 곤욕을 당하다 도망을 쳤지. 그러나 그렇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니. 좁디좁은 세상에서.
결국 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된 거야. 이렇게 되니 할아버지는 가까운 친척들에게 빚 갚지 않는다고 큰 수모를 당하고 감옥에 간 아들 때문에 속 상해 술로 사시다 술병으로 돌아가셨어.
그 후유증으로 우리와 고모들도 고생을 하고 있는 거 너 알아?
외국까지 가서 돈 벌어와 투자하고 모든 것을 날린 승철 아저씨는 더 비참하게 되었고….
이 아픔을 감수하며 죄인처럼 살아야 하는 삼촌을 볼 때마다 불쌍해 죽겠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 아니야. 아차 하는 사이 패가망신해.
아버지는 혼자 중얼거린다.
"정직하고 근면하게 일하면 하늘이 도와야 하는 것 아니야?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속으로 궁 시렁 거리다 쯧쯧쯧쯧 혀를 차고서 코를 곤다.
유천은 아버지의 넋두리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본다.
"저렇게 신비한 별들을 만드신 하나님은 왜 우리들의 삶에 개입하지를 않는 것일까?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더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것을 보고도 왜 잠잠히 계시기만 하는 것일까? 목이 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