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를 잊은 듯 새벽부터 밭으로 나가 골병드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곡식을 가꾼다. 하지만 빚은 늘어가고 또 땅을 팔고 취하여 술주정 한바탕 하며 위로받는 일을 다람쥐 채 바퀴 돌 듯하고 또 한다.
지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양육해야 한다는 책임감일까? 열심히 일하면 하나님이 열매를 주신다는 믿음이 아직도 있어서일까? 배운 것이 일하는 것밖에 없으니 그냥 하는 것일까?
유천은 아버지처럼 힘들게 살지 않기 위해 공무원이 될 작정을 한다. 그러나 만만치 않다. 일찍 공무원 된 선배가 늘 푸념을 한다.
"더러워서 못해 먹어. 위에 있는 놈들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킬 때가 얼마나 많은지…. 내가 종인 줄 아는 모양이야! 처자식 먹여 살릴 방법만 있으면 벌써 때려치웠어.
이 친구가 청탁하고 저 친지가 부탁할 때 들어주지 않으면 의리 없는 놈이라 비난받다 원수가 되고. 그러다 무언가 꼬투리를 잡히면 고발한다 협박하고. 윗 놈들이 봐주라 하지 않아도 눈치로 봐줘야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이런 것 잘 못하면 좌천은 내가 당하게 되고.....
공무원 하려면 최소한 백성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리고 정의로운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런데 그러한 마음 가지고 있으면 더 피곤해지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가 힘들어.
선거철만 되면 이놈 저놈 찾아와 별의별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공정한 사회를 만들 듯 큰소리치고는 선거가 끝나면 그 놈들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버리지.....
출세하면 나을 줄 알고 열심히 공부하며 일해도 헛 일이야. 백 있는 놈들이 먼저 알고 손을 쓰거든. 올라갈수록 순수성을 망각하지 않으면 안 되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해 먹을 것이 없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유천은 보이는 길이 하나밖에 없다. 공무원. 그중에 법 공부를 하면 출세에 접근하기 쉬워진다 판단이 된다. 그러나 집중이 안된다. "하나님은 살아계실까? 계시다면 왜?" 질문이 끊임없이 인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다. 할머니를 뵈러 갈 겨를도 없다. 잠재의식 중앙에 자리하고 계시면서 문득문득 그리워 가슴 찡하게 하시는 할머니, 하나님에 관해 질문이 떠 오르게 하시는 할머니. 언젠가 하시던 말씀이 돼 살아난다. "외 손자를 섬기느니 방아공이를 섬기는 것이 낫다는 …."
머릿속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불편해 쫓아 버리려 하니 가슴으로 옮겨가 아련한 추억으로 인도를 한다. 이렇게 세월을 까먹고 있는 동안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연락이 평창 이모부로부터 왔다. 의리가 발동되었는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인지, 친구가 운전하는 택시를 대절하여 할머니에게 서둘러 갔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니 아랫목에 반듯하게 누워 계신다. 정신이 멀쩡하지만 여윌 대로 여윈 할머니가 손자를 보고는 반가워 환한 웃음을 웃으며 말씀하신다.
"바쁜데 뭐 하러 왔어!"
유천은 할머니를 보는 순간 울음이 왈칵 터져 나오는 것을 참느라 고개를 돌리고 설음을 꿀꺽 삼킨다. 옆집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녁 할머니 집 앞마당을 지나는데 쓰러져 계시더구나. 서둘러 방으로 모시고 들어갔지. 얼마 동안 땅바닥에 누워 계셨는지 모르겠어. 할머니도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를 모르시고. 지나가는 길에 못 보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날씨도 찬데."
할머니께서 가냘픈 음성으로
"정신이 핑 도는 것을 느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깨어 보니 방이야. 가끔 이럴 때가 있어. 이러다 괜찮아 지곤 해. 공부해야 하는데 왜 왔어!"
유천은 외로움 가운데 사시는 할머니의 어려운 상황들이 그려져 가슴이 아리다.
"아픈 데는 없어요?"
손자의 돌봄을 느끼는 할머니는 행복한 눈으로 유천을 바라보며 대답을 한다.
"아픈 데는 없어 기운만 없지."
유천이
"식사하셔야지요." 하니
배가 고프지를 않아. 그냥 자고 싶어." 대답을 하시곤
할머니는 사랑하는 손자 앞에서 평안을 느꼈는지 깊은 잠에 빠진다.
유천은 밖으로 나와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을 듯한 별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한다.
"저 별들을 지으신 당신은 할머니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왜 인간을 외롭게 살게 하셨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구경만 하게 지어 놓았습니까? 우리의 삶에 당신은 무엇입니까? 불공평한 세상인데 왜 잠잠하게만 계십니까?
순수하고 정직하게 살라고요? 그렇게 살면 생존하기 조차 힘겨워지는 세상이에요. 당신처럼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몰라도."
하고 싶은 말이 그칠 줄 모르고 터져 나오지만 허공에 하는 이야기임을 깨닫고 밤하늘을 공허하게 바라본다. 이때 평창 강의 흐르는 물소리가
“인생은 본래 허무한 것이고 고뇌와 고통과 기쁨이 정처 없이 왔다 흘러가는 가운데 사는 것이야.”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듯하다.
이튿날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갔다.
진찰을 마친 의사가 이야기한다.
"늑막염입니다."
유천이 별거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하며 묻는다.
"괜찮겠어요?"
의사는 긴 한 숨을 쉬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한다.
"너무 늦었네요. 집에 모시고 가세요. 편안히 계시다 가게 하세요."
유천은 황당하고 화가 나 싸움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애원을 한다.
"어떻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수술은 할 수 없나요?"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냉정하게 "미안합니다." 하고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자리를 떠난다.
유천은 닭 쫓던 개처럼 의사 뒤를 멍하니 바라보다 병원 천장을 바라보고 무능을 실감하며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나선다. 집에 돌아와 영문을 모르고 주무시는 할머니를 본 유천은 교회로 가 예배당에 홀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엉엉 울며 기도를 한다.
"살려 주세요. 이대로 가시면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평생을 외롭게 고생만 하며 살던 당신의 딸입니다.
아들 다섯을 잃으며 가슴에 피 멍든 당신의 딸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드리며 헌신하던 종입니다.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세요. 짧은 기간이라도 좋으니 외롭지 않게 손자의 돌봄을 받게 하고 당신의 품으로 데려가 주세요."
유천은
“쓸데없는 짓이야” 하는 소리가 귓전에서 냉정하게 들리는 듯하여 말없이 눈을 감고 있다 일어나 교회를 나선다.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바라본다. 수 없이 많은 별들은 모든 것을 알 듯하여 마음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다 차디참을 느끼곤 양 볼로 뜨거운 눈물만 주르륵 흐른다.
할머니가 예전엔 보이지 않던 거친 행동을 보이신다. 재떨이를 집어던지며 화를 내시는데 내용은 알 수가 없다.
"무엇에 대한 화일까? 믿음 없는 가족들에 대한 화일까? 하나님에 대한 반항일까?"
그러시기를 한 달이나 하셨을까? 다시 온유 해 지신다.
"삶을 포기하신 것일까? 무능한 피조물인 현실을 받아 드리 신 것일까? 삶의 동력과 죄의 원천인 욕망을 품고 살다 포기하여 순한 양처럼 되신 것일까? 하나님 만날 꿈을 꾸며 새 신부처럼 다소곳해지신 것일까?"
평안한 가운데 딸을 불러 장례에 관한 유언을 꼼꼼하게 하신다.
"내가 죽거든 평창에 계시는 김호중 목사님을 모시고 장례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 관은 십자가가 그려진 하얀 천으로 싸고 그 위에 힌 국화꽃을 놓아줘."
곧 만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우유 빛을 한 맑고 고운 국화송이처럼 보이고 싶으신 것일까? 만날 주님께 국화 꽃송이를 드리고 싶으신 것일까? 하고 싶으신 말들 모두를 이미 주님께 하신 듯하다.
그날 할머니는 당신의 딸에 의하여 목욕을 하시고 3일을 고요히 지내신 후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크고 길게 내 쉬신 뒤 평안한 모습으로 고요히 계신다.
유천이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함을 느끼고 아직 온기 있어 보들보들 한 할머니 손을 잡는다. 손을 놓으면 영원한 이별이 사실이 될 것 같아 잡은 손을 놓을 수 없다. 부인의 임종을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시던 할아버지가 손자를 감싸 안으시고 소리쳐 실컷 울고 싶은 울음을 힘겹게 참으며 말씀하신다.
"이제 그만해라. 이제 그만하자. 이제 그만 편히 가시게 하자."
차분히 말씀하시던 할아버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러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결단이라도 하신 듯
“이제 이별할 시간이야.” 말씀하시곤 손자를 뒤에서 안고 할머니 손을 놓지 못하는 유천의 손을 힘주어 떼어 낸다.
유천은 할머니 손을 놓으며 터져 나오기 시작한 울음이 멈추어지지를 않는다. 이웃의 누군가가 죽었을 때면 ‘누구든 한 번 겪는 일이니까’ 했는데….. 영원한 이별이 현실로 다가옴을 실감하고는 하나님을 향한 증오가 생긴다.
유천은 할머니와의 이별이 꿈 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현실인 것이 증거가 되어 절망감에서 오는 통증을 배로 느끼며 하나님께 항의를 한다.
"왜 인간을 이토록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이별 가운데 살도록 지으셨나요?"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유천은 할머니의 손길이 담긴 유품들을 볼 때마다 설움이 울컥 올라와 울다 잠시 멈췄다 다시 울기를 반복을 한다.
이별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술 밖에 없는 듯하여 마시고 또 마시지만 깨고 난 후 할머니가 계시지 않은 현실이 공허함을 더 커지게 하여 괴로워 반항성 질문을 한다.
"스스로 사랑이라 이름하신 당신은 이 아픔을 알고 계십니까?"
어설픈 침묵은 분을 끓어오르게 하지만 온전한 침묵은 마음을 가라앉히는가 보다. 때로는 애절하고 간절하게, 때로는 싸움을 걸려고 항의성 질문을 아무리 퍼부어도 완벽한 침묵 앞에서 유천은 오히려 평온 해진다.
장래를 마치고 죽은 자는 죽은 자고 산 자는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책상에 앉는다. 그러나 가슴속에 숨어 있는 비참함이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들며 별의별 오만 가지 생각들이 주인 없는 공원을 나그네들 들락 거리 듯한다.
"자존심과 양심을 버리고 치사하고 비굴하게 아부하며 공무원 생활을 할 수가 있을까? 불의를 보고서도 생존을 위하여 눈감고 살아야 한다면 인간으로 의미 있는 삶일까? 인간의 존재는 본래 적당히 악과 타협하며 살도록 지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일 수가 있을까? 왜 나의 처절한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만 하실까? 기적을 한번 만이라도 보여 주시면 이해되지 않아도 믿을 수 있을 텐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하시고 악과 거짓 많은 나의 현실에서는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달과 구름 그리고 산과 들의 생명들, 하늘을 나는 새들과 동물들 그리고 곤충들, 각기 다르게 짝짓기 하며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고 기르는 생명의 신비, 이러한 신비를 떠 올리면 하나님을 부인할 수가 없는데,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다고 인정할 수가 없다. 오만 가지 생각들의 들락거림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어 괴로워하는 유천에게 옛적 한 날의 추억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머릿속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