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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교회

잔디와 잡초밭에서 일어나는 일

by 지준호

K 리쿼스토어 파킹낫 건너편에 작은 잔디밭 하나가 있다. 말이 '잔디밭'이지 고들빼기, 질경이, 민들레, 크로바 등에게 점령된 '잡초밭'이다. 그 위로 란모어가 지나갈 때만 깔끔하게 다듬어진 모습으로 변한다. 하지만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들쑥날쑥 제멋대로 자란 들풀들이 노랑 하양 퍼플 꽃을 피운다. 그리고 서둘러 갈색 씨앗을 만들고 하얀 깃털에 실어 이곳저곳으로 후여후여 날려 보낸다. 잔디밭 서편엔 뜨거운 사막에서 생존하느라 까칠하고 비틀어지고 검푸러진 자잘한 잎으로 덮인 도토리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다. 이를 쉼터 삼아 동네 백수들, 건달들, 홈리스들이 옹기종기 모여 더러는 히죽거리며 수다를 떨고, 더러는 일광욕을 즐기고, 더러는 철학자나 된 듯 사색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바라본다.

한 주전까지만 해도 유천은 리쿼스토어 출입문 벨이 "딩동"하고 울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잔디밭에서 노닥이던 이들이 손님으로 가장하고 들어와 도둑질을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유천을 그들은 창문 옆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자라는 귀한 난초처럼 편안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된 데는 사시사철 긴 코트를 입고 다니는 대섭과, 기름때 반질반질한 야전점퍼를 걸치고 다니는 덕천의 공이 컸다. 도둑질을 하다 들켰는데도 유천은 쌍스럽고 거친 욕을 해대지 않고, 오히려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었고, 그럼에도 그를 바보로 여기고 일자리를 잃고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안 그들은 유천을 주인에게 데리고 가 다시 일하도록 애걸해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미안함과, 감사함으로 유천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이면 가게 주위를 말끔하게 청소하고 유천의 출근을 기다리다 즐거운 인사로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게 했다. 빛을 향해 달려드는 벌레들처럼 리쿼스토어에 모이는 불량배들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었다. 유천은 시시때때로 가게 주인이 준 음료와 군것질거리를 잔디밭으로 가지고 나와 고마움을 나누며 스스럼없이 그들과 수다를 떨었다. 유천은 천국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질투일까? 성숙하게 만들려는 사랑의 움직임일까? 덕천의 머릿속에 "왜"라는 궁금증이 싹텄다. 덕천이 대섭의 귀에 대고 소곤거려 의심을 부채질했다.

"전도사님은 왜 교회에서 일하지 않고 하필 리쿼스토어에서 일하는 것일까?"

대섭의 뇌리 속에 빛이 반짝했다. 아리송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금증이 이스트 섞인 밀가루 부풀어 오르듯 커졌다. 의문은 봄바람 타고 날리는 민들레 씨앗처럼 잔비밭을 넘어 온 동네로 퍼졌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디나 수군거렸다.

"착한 사람이 교회에서 바보 취급받은 것일까?"

"술을 마시지 못하는 전도사가 왜 하필 리쿼스토어에서 일하는 것일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이 무얼까?"

사람들의 의심과 상상에 쉘터가 시끌벅적 해졌다.


대섭과 덕천은 수시로 목을 빼고 리쿼스토어 출입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이 그곳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붉게 물든 태양이 코발트색의 서쪽 하늘에 높이 솟은 야자수 잎에 걸렸다. 덕천과 대섭은 조바심이 났다. 이때 덕천이 소리쳤다.

"온다."

유천이 리쿼스토어에서 나오고 있었다. 덕천이 벌떡 일어나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는 유천에게로 갔다. 평상시와 다르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전도사님은 왜 교회에서 일하지 않고 리쿼스토어에서 일해요?"

유천은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지은 죄는 상대가 하는 말과 표정과 행동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일까? '나의 불륜을 어떻게 알았지?' 유천은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순간 정직하고 간단명료한 답으로 의심을 해결해 주는 것이 은혜를 베푼 자들에 대한 예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먹고살려고요"라는 말이 먼저 툭 튀어나왔다. 숨길 수 있는 한 숨겨야 한다는 보호 본능이 서둘러 말을 내보낸 것일까? 하지만 궁금증은 논리에 맞는 명확한 답을 얻을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있는 가보다. 덕천이 상처를 후벼 파듯 "교회에서 일하면 먹고살기가 더 쉬울 텐데 하필..." 하고는 유천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쫓겨났어요" 유천이 답하고 고개를 떨궜다.

"교회에서요?" 철학자나 된 듯 수염을 지저분하게 기른 흥수가 어느새 옆에 와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 대꾸를 했다.

유천이 담담하게 "네" 했다.

흥수가 "내 말이 맞지?" 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눈맞춤 했다.

어느새 잔디밭에 있던 모두가 유천 주위에 둥글게 모였다. 궁금증이 더 커진 대섭이 쭈뼛거리며 물었다.

"성직자들이 가끔 불륜이나 돈 문제로 쫓겨났다는 소문을 듣는데, 전도사님은 어느 쪽이에요?"

유천은 내면의 머뭇거림을 이기고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불륜이에요."

유천은 '그동안 누리던 호사도 오늘로 끝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모두는 '도둑놈에게 큰소리 한 번 치지 못하던 위인이, 어떻게 불륜을, 이렇게 자신의 치부를 거침없이 내뱉는 거지?' 하는 어리둥절함으로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덕천이 고요를 깨고 선한 판사가 죄인을 심문하듯 물었다.

"성직자는 최소한 불륜의 죄는 짓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네 맞아요." 유천이 고개를 끄떡이며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들은 답답했던 가슴이 해소되는 듯했다. 누군가는 실망 섞인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야릇한 궁금증이 또 일었다.

"어떻게 그런 불륜을 저질렀어요?" 대섭이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유천이 한숨을 푹 쉬고 답했다.

"인간이기 이전에 성직자잖아요." 대섭이 질책하듯 말했다.

"아니요, 성직자이기 전에 인간이에요." 유천이 반항하듯 대꾸를 했다.

서쪽 야자수 잎에 걸쳐 있던 붉은 태양이 미끄러지듯 먼산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하늘에는 거위들이 하루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듯 끼륵끼륵 무리 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유천은 외로움에 떨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 생각이 났다.

혼돈 속에 빠진 이들이 하늘을 날아가는 검은 새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못다 한 이야기는 내일 해요" 하고 유천이 손을 흔들며 자동차로 가 시동을 걸었다. "퉁퉁 퉁퉁" 녹 쓴 폭스바겐에서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소음을 뚫고 유천이 외쳤다.

"내일 봐요."


운전하며 바라본 검붉은 서쪽 하늘이 유천을 우울하게 했다. 만나는 신호등의 빨간 불빛들마다 '불륜, 불륜 '하며 소리치는 것 같았다.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듯 했던 교회 생활이 영화필름 돌아가 듯 뇌리 속을 스쳤다. 후회가 가슴을 더 아리게 했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지옥처럼 힘든 시간을 참고 견디며 쌓은 신뢰였는데...' 또다시 허망하게 잃어버린 신뢰에 허탈감과 생존의 힘겨움으로 흐느낌이 일었다. 목구멍으로 "끙---" 하는 신음 소리를 토했다.

닭 쫓던 개 하늘 쳐다보듯 한 이들이 어두운 잔디밭에서 배신감을 토하느라 시끌벅적했다.

"믿을 놈이 없다니까. 그를 도와준 것은 미친 짓이었어." 덕천이 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전도사가 리커스토어에서 일할 때 알아보았어야 했는데..." 흥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제비족이 성직자 탈을 쓴 것을 모르고 하나님 섬기듯 했으니..." 수염 긴 이가 억울함을 토했다.

"끝까지 얘기를 들어봐야지." 신뢰의 정을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대섭이 한숨을 푹 쉬고 차분하게 말했다.

생존을 위하는 일이라면 체면이나 윤리 도덕은 옷에 묻은 먼지처럼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스스로를 잔디밭에서 뽑혀버려 진 '잡초'라 여기는 이들이었다. 말초 신경을 자극할 기회가 있으면 거침없이 즐기는 이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넓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고 자위하며 그나마 생존을 유지하는 이들이었다. 돈 많고 권력을 가진 자는 운이 좋거나 뛰어난 연기력이 있거나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깔았기 때문이라고 믿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남의 물건을 훔치다 들키면 백 없고, 돈 없고, 운이 나빠 당하는 억울한 일이라 여겼다.

그런 이들에게 세상에는 진실하고 선한 인간도 있다고 믿게 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두레박에 올라타고 정상신분을 회복할 기대를 가지게 한 전도사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유천이 불륜으로 교회에서 쫓겨났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걸 듣고 한편으론 시원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들은 비록 잡초이지만 귀한 난초를 가꾸며 선한 일에 참여할 희망을 품었는데, 그도 그저 그렇고 그런 인간이었다니... 허망하여 뺨이라도 후려갈기고 싶었다.

검게 변한 밤, 희망이 모두 사라진 밤, 이들은 화를 삭이고 누울 곳을 찾아 소리 없이 흩어졌다. 각기 자신의 쉼터에서 내일이 기다려지는 것은 왜일까?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실오라기 같은 어떤 말이라도 듣고 싶기 때문이었을까?


지난밤의 절망은 어둠이 삼켜버린 듯 평소와 똑같은 아침이 밝았다.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이 파킹낫으로 나와 청소를 했다. 호기심과 회의로 무거워진 마음으로 모두가 비질을 했다. 하지만 '이런 인간을 위해 왜 우리가 수고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불륜을 했을까? 정말 제비족이고 사기꾼일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궁금증이 문득문득 일어 화가 치밀어 올라도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다.

퉁퉁 퉁퉁 소리를 내다 조용해진 폭스바겐에서 유천이 내렸다. 잔디밭으로 와 말없이 손만 흔들어 인사를 하고 가게로 갔다. 유천이 일하는 동안 이들은 이웃 동네의 불량배들이나 홈리스들의 도둑질을 막아주고, 시비 거는 손님이 있을 때면 도와주었다. 하루 온종일 모두가 머리가 무겁고, 우울한 채 말없이 지냈다.

서쪽 코발트색 하늘에 높이 솟은 야자수 잎에 다시 붉은 태양이 걸쳤다. 유천이 일을 마치고 나왔다. 잔디밭과 도토리나무 밑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이들이 유천을 맞았다. 주위를 배회하던 이들도 모였다. '사기꾼일까? 제비족일까?' 의심의 눈초리로 유천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섭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불륜을 했어요?"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리에 유천의 음성을 빼앗기지 않으려 모두가 귀를 쫑긋하고 유천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교회에서 힘든 일이 많았어요." 유천이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교회에서 힘든 일이요?" 덕천이 대꾸를 했다.

"모든 모임이 그렇듯 교회도 신앙과 삶과 도덕과 문화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지요. 모두가 서로 자기 원하는 대로 교회를 운영하기를 원하지요. 자기가 원하는 설교를 목회자가 해 주기를 원하고, 그러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싫어지지요. 그러면 이런저런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뜻이 같고 신앙의 색깔이 비슷한 사람과는 가까워지고 정이 들게 되지요. 서로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나누며 신뢰하는 사이가 되면서... 하지만 적대하는 관계는 점점 오해가 쌓이고 무엇을 하든 의심이 커지게 되지요.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욱 관계가 나빠지면서... 결국 목회자를 좋아하는 편, 싫어하는 편으로 갈리게 됩니다. 그리고 한편에선 목회자를 지키려 하고, 한편에선 쫓아내려 싸움을 합니다. 나는 이 틈바구니 속에 있었던 거예요. 싫어하는 이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 무진 애를 썼어요. 아부도 해 봤어요. 이해하고 사랑하려고도 했어요. 품으려고도 했어요. 그러나 이러한 일이 그들에게 오히려 비루하게 비쳤던 모양이에요. 결국 가까운 사람과는 더욱 가까워지고, 먼 사람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됐어요.

그러던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어요. 가장 신뢰하며 소통이 잘 돼 가깝게 지내던 여자 집사님과 함께 산으로 나들이를 갔어요. 위로받고 싶었던 거지요."

"그래서요?" 흥수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우리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게 됐어요." 유천이 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섭이 말했다.

"가깝게 지내며 신뢰와 사랑이 싹텄던 거지요. 그러며 둘 사이에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경계가 무너져 버렸던 거예요. 봄의 기운이 하나 되도록 부추긴 거지요. 내 몸과 마음, 그녀의 몸과 마음속에서 동시에...

인간이 무엇인지를 몰랐던 거예요. 신뢰하고 있던 관계를 깨는 것이 두려웠었는지도 몰라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하나 되려는 몸과 마음을 거절할 힘을 완전히 빼앗겼던 거예요. 아니, 야생화의 암수가 서로 꽃가루 받이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몰라요. 죄에 대한 저항을 전혀, 할 수가 없었어요. 오히려 내면에선 불륜을 뛰어넘는 자유인이 되게 했어요. 아니, 죄를 정당화시키고 있었던 거예요. '괜찮아, 괜찮아. 죄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어, 한낱 문화의 굴레일 뿐인데, 그것에 노예 될 필요가 없는 것이야, 그것 때문에 행복을 빼앗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 하면서..."

유천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요?" 덕천이 물었다.

"그러나 그 일 후 우리는 서로의 신앙을 의심하게 됐어요. 신뢰가 깨져버린 거예요. 함께 죄를 짓고는 상대가 나를 유혹했다고 오해를 하게 된 거지요. 여 집사님은 나를 사탄을 가장한 목회자라 여기고, 나는 여 집사님을 하와를 유혹한 뱀이라 여기고... 난 설교를 할 수가 없었어요. 죄의식에 짓눌려. 결국 난 교회를 떠나게 된 거예요."

대섭이 혀를 차고 물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있어요?"

"난 그렇게 믿어요."

"그런데 왜 전도사님을 죄짓게 만들었어요?"

"난 동물과 같은 육체와 본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걸 몰랐던 거예요. 마음과 생각이 내 몸을 언제나 지배할 수 있다고 착각했어요. 마음과 생각이 온전히 지배할 수 없는 나인 것을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됐어요. 차라리 마음과 생각이 몸에 지배를 받는 나를 그때 이후에 안 거예요."

"하나님이 육신의 본성을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흥수가 물었다.

"그래야 한다고 나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러면 나는 로봇이 되더라고요, 자유 의지가 없는..." 유천이 말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도대체 무얼 하는 거예요?" 흥수가 물었다.

"하나님이 존재하고 사랑하며 일한다는 것을 믿었지만 언제, 어떻게, 일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질문 한번 해보지 않았던 거예요." 유천이 말했다.

"어떻게, 언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해요?" 덕천이 물었다.

"인간은 관계로 존재하지요. 공기와의 관계, 음식과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 문명과의 관계,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이 모든 관계가 좋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일도, 해야 할 일도 있어요. 그것을 알고 하게 하는 거예요." 유천이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이 알게 하고, 하게 해요." 대섭이 물었다.

"나 자신과 하나님과 이웃과 정직한 대화를 하는 거예요." 유천이 말했다.

"어떻게 나 자신과 하나님과 정직한 대화를 해요?" 대섭이 물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과 사건들 속에는 언어가 있어요. 진리를 말하는... 그 음성을 듣는 거예요. 또 내 안에는 오만가지 감정과 감각과 생각들이 있어요. 이것들을 보는 거예요. 그러면 진실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혜가 보이고 들려요. 그렇게 보고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에요. 이렇게 나 자신과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 기도이고...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활할 때 이웃과 정직한 대화를 하게 되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깊은 관계로 발전하며 진리에 인도를 받게 되지요."

"그러면 교회는 필요가 없네요." 덕천이 말했다.

"나를 이해하고, 감정과 생각을 보게 하고, 주어진 상황을 보게 하고, 진리에 인도받게 하는 것을 스스로는 하기 힘들지 않아요? 그 일을 교회가 하도록 돕는 거예요. 행복한 인생이 되도록 알아야 할 일을 알려 주고,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것이 교회이지요. 이를 신앙 용어로 어둠에 있는 사람을 빛으로 인도하고, 사랑을 모르는 이들을 사랑 안으로 인도하고, 진리를 모르는 이들에게 진리를 알려주고 그 안에서 살게 하고, 생명이 없는 이들에게 생명이 있게 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난 교회에서 착하게 살라고, 사랑하며 살라고, 봉사하며 살라고, 정직하게 살라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기만 했어요. 결국 인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행복이 어떻게 오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러며 나 자신이 먼저 허망하게 무너진 거예요. 논리에 맞는 명확한 답을 얻을 때까지 물고 늘어지며 허물없는 친밀한 관계로, 지혜로운 사람으로, 고귀한 인격으로 성숙돼야 했는데 그것을 몰랐던 거예요." 유천이 말했다.


"우리 함께 사람들에게 알아야 할 일을 알려주고,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고, 인간이 무엇인지까지 이해하게 해 주는 교회를 세워요." 덕천이 흥분하여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교회도 돈이 있어야 하고, 건물이 있어야 하는 거야. 피아노도 사야 하고, 강대상도 필요한 것이고..." 흥수가 핀잔하듯 말했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어요. 건물이 없어도, 피아노가 없어도, 돈을 거두지 않아도 돼요.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되는 거예요. 함께 모여 서로 깨달은 것을 이야기하고 듣고 사랑을 나누고 감사하면 되는 거예요. 그것이 예배이고요." 유천이 말했다.

"잡초교회"라고 이름을 지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전도사님도 버림받은 잡초고, 우리 모두가 뽑혀 버려진 잡초잖아요." 덕천이 말했다.

"우리는 뽑혀 내던져진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살고 있을 뿐이에요. 저들이 차라리 온실 속에 가두어져 생존본능이 약해진 기형아들인 거지요. 비싼 가격에 잘 팔리는 상품이 되도록 사랑을 받으며 양육된..." 유천이 말했다.

"아, 그래서 교회에서와 가정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기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로군요." 하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면 '야생교회'라고 하면 되겠어요. 몽실몽실한 하얀 꽃을 피우는 싱그런 크로바 같은, 노란 꽃을 피우고 하얀 깃털에 수 없이 많은 씨를 달아 세상 곳곳에 흩뿌리는 민들레 같은, 밟고 또 밟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이가 되는 질경이와 고들빼기 같은... 그런 생명체를 낳고 키워내는 교회를 만드는 거예요. 하늘을 지붕 삼아 잔디밭에서 모이다, 때로는 산에서, 때로는 들에서, 때로는 바닷가에서 어우러지면서... 지구의 옷이 되고 이불이 되고 예술작품이 되는 야생식물 같은 사람을 만드는 교회... 돈 없는 자도 오라, 백 없는 자도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이리로 오라 ' 외치며." 대섭이 흥에 겨워 춤추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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