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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약 한 거 아니야?

생명력 왕성한 예술가 같은 신앙인

by 지준호

"너 약 한 것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서 생명력을 느끼게." 광덕이 눈을 찡그리고 말했다.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거야?" 유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물었다.

"넌 엄마 뱃속에서 먼저 나가는 형의 발 뒤꿈치를 붙들고 나왔다는 이야기가 곧이곧대로 믿어져? 어떻게 인간 형태도 갖추어지지 않은 태아 둘이 엄마 뱃속에서 싸움을 하냐? 그래, 그것은 그렇다 치자,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이라 치고. 하지만 ‘야곱'(발 뒤꿈치를 붙들고 나온 자, 꾀로 사는 자)의 이름을 '이스라엘'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긴 자)로 바꾸라는 이야기가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두렵고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하고 황당한 일들 많은 세상에서 도움 좀 받으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데, 그 하나님을 이기라니! 그렇다면 하나님을 왜 믿냐? 약을 하지 않고야. 그런데 뭐, 그런 이야기에서 생명력을 느낀다고?" 응어리 진 답답함을 따발총처럼 쏟아내곤 광덕의 말투가 누그러졌다.

유천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난 '리브가' 뱃속에서 싸우는 두 아이들의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데, 넌 안 들려?"

"약을 진하게 맞았군! 그러니 지갑도 시간도 다 털리면서 행복해하지... 하지만 조금 더 지나 봐, 상당한 후유증을 앓게 될 거야." 광덕이 유천의 눈동자를 불쌍하게 주시하다 하늘을 원망하듯 바라보았다.

"난 네가 오히려 약 한 것처럼 보이는데. " 유천이 애처로운 눈길로 광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약을 하지 않고야 어떻게 당연히 보이고 들리는 것을 못 보고 못 듣냐?"

"너는 듣고 보는데 내가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이 무어냐?" 광덕이 따지듯 물었다.

"장자에게 주어지는 상속권과 권위를 차지하려 에서와 야곱이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리브가'의 뱃속에서 벌이는 다툼이 세상에 널브러진 불공평을 대변하고 있는데, 네에겐 그 소리가 안 들려? 여자와 남자가 겪는 젠더의 불평등, 가난하게 태어나는 사람들의 원망, 배우지 못한 이들의 억울함, 지도자와 조상을 잘못 만난 후진국 백성들이 쏟아내는 원성,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어 후회하고 실패하는 삶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어머니 뱃속 이전부터 있었는데 그 소리가 안 들려? 이것을 바라보다 안타까워 터져 나오는 하나님의 신음까지 들리는데, 난...." 유천이 차분하게 말했다.

꺼져 있던 와이파이가 작동하기 시작한 듯 부끄러움과 함께 광덕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유천이 꺼져가던 불씨를 살리 듯"세상에 널려 있는 운명처럼 찾아온 불공평과 힘겨움을 나의 가치를 높일 재료들이라 여겨 봐, 암탉이 둥지에 동그란 고운 알을 낳듯 아름다운 서사를 낳게 될 거야. 그리고 그 서사를 쌓고 또 쌓으며 살다 보면 사랑스러운 병아리가 태어나듯 하나님이 주는 지혜와 권위와 사랑이 너의 삶에 나타날 거야. 그러면 넌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기는 자 되는 것 아니야? 하나님과 사람들이 준 운명 같은 상황들을 이겼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귀다툼 속에서 불평하며 적당한 꾀로 살지만 실패를 거듭하며 인생을 힘겹게 무의미하게 보내게 될 거고. 영원한 남의 발뒤꿈치나 잡고 늘어지며 꾀로 사는 야곱처럼 말이야"라고 유천이 광덕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듯 말했다.

광덕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성경에선 수 없이 많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말하는 것일까?"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인간의 언어로 온전하게 전달할 수 없는 진리와 사랑을 상식을 넘은 예술로 묘사하는 지혜를. 그것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여 당당하게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며 생명력 왕성한 예술가처럼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사랑을 느껴 봐. 두렵고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하고 황당한 일들 많은 세상에서 도움 좀 받으려 노예와 거지 근성으로 하나님을 믿지만 말고." 유천이 활짝 웃는 얼굴로 하늘을 보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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