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나는 고추잠자리 되다
태수는 일요일이면 교회에 갔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예수를 믿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인격 수련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교인들과 관계를 깊게 맺고 싶은 계산 또한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투자한 시간 이상의 유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배운 가장 쉬운 말로 신나게 떠들 수 있고, 선조로부터 길들여진 입맛을 충족시키는 김치와 된장국을 먹을 수 있고, 없는 것이 더 많은 유학생활이기에 현지인들에게서 필요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교회 생활에서 구석기시대로 돌아간 듯한 지루하고 짜증스럽고 따분한 설교 시간이었지만 때로는 평안함과 새 힘, 때로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지혜를 얻고 마음을 순결하게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곤충의 유충을 보는 것처럼 징그러운 눈 흘김을 느꼈다. 태수는 이를 만회하려 부엌에 들어가 팔을 걷어붙이고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를 했다. 그런데 아뿔싸, 얌체 같은 마음을 씻고 얻는 것에 대한 보상을 하려는 속셈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성도들이 신앙 좋은 청년으로 거듭났다고 오해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일하였다"며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이 사람 저 사람 이 일 저 일, 별의별 부탁을 해, 태수는 해야 할 일거리가 차고 넘쳐나게 되었다. 이후로 태수는 "난 점심 얻어먹으러 교회에 다닌다"라고 떠벌이며 다녔다.
무거운 짐을 벗었지만 지질한 기분으로 교회에 들어서고 있었다. 파란 가을 하늘에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나풀거리며 단풍나무 가지 끝에서 무궁화나무 가지 끝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예쁘고 신기해 물끄러미 바라보다 '유충에서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신비를 진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일하신 것일까?' 궁금해졌다.
예배를 마친 성도들이 식당에 끼리끼리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와 다르게 태수는 홀로 식사를 했다. 함께 했던 친구들 모두가 Fall Break을 맞아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잡곡밥과 된장찌개만 쳐다보며 서둘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때 음식이 가득 담긴 양은 식판을 들고 두리번거리던 목사가 태수의 오른편으로 와 앉았다. 입에 넣은 음식을 꿀꺽 삼킨 태수는 엉거주춤 일어나 목사를 맞이하였다. 김 장로도 따라와 "잘 있었어요"라며 태수의 왼쪽에 앉았다. 그리고 이 집사와 평신도인 장 씨가 식탁 맞은편에 마치 목사의 보좌관들처럼 자리를 잡았다.
"Fall break인데 어떻게 학교에 머무르고 있어요?"라고 목사가 말을 걸었다.
"아직 끝내지 못한 논문이 있어서...." 그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유학생활이 쉽지 않지요?"
"그렇긴 한데, 힘들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핀잔을 주네요."
"그럴 거예요. 언어와 문화의 갭이 큰 곳에서 현재와 미래의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니까...." 고개를 끄떡이며 목사가 공감한다는 듯 말했다.
오고 가는 말들이 태수에게 용기를 주는 묘약이 되었나 보다.
"목사님이야 말로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요." 태수의 입에서 아부 섞인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래요?"
"목사님의 삶을 하나님이 보호하시며 인도해 주시니 걱정이 있을 리 없고,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온전히 선한 일을 위한 삶이니 그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에 있어요. 거기에 모든 사람들이 신뢰하고 존경하며 따르기까지 하니...." 태수가 부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성도들 인도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요? 모든 성도들이 겉으론 천국을 향한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각기 나름의 다른 목적 또한 있어요. 이 두 개의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해 돈 내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 거든요. 호불호, 가치관, 생각 모두가 다른 사람들의 모임이에요. 당연히 갈등과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충족시키며 선하게 인도하는 일은 하나님도 혀를 내두를 만큼 고단한 일일 거예요." 김 장로가 목사를 경외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고, 선한 목적을 가지고 사는 신앙인들이잖아요." 태수가 따지듯 대꾸했다.
"이상과 현실이 갈등을 일으킬 때 어느 쪽 힘이 셀까요?" 김 장로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신앙생활을 왜 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목사를 향해 "목회하며 가장 힘든 일이 뭐예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목사는 깊은 생각에 잠시 잠겼다. " 그러곤 질문 없는 곳에 사는 것이요.” 쓴웃음을 웃으며 답했다.
동그란 눈동자가 된 태수가 "신앙은 교리를 믿는 것 아니에요?" 했다.
"네, 맞아요. 그러나 질문 없는 믿음은 '펑'하고 터진 폭탄의 파편 같아지기 쉽지요." 목사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식탁에 둘러앉은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눈을 맞췄다.
"어떻게 믿음이 폭탄 같아지는 거예요?”
“소화되지 않은 믿음이 최선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지요.”
“질문하는 것이 믿음을 소화시키는 일인 거예요?" 장 씨가 물었다.
"네"라며 목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면 무슨 질문이든 해도 되는 거예요?" 반짝 눈동자를 빛내며 태수가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요" 목사가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왜 쇠하는 거예요?"
"믿음은 단순한 것처럼 보여요. 그러나 내용을 현미경으로 보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궁무진하게 다양하고 깊고 넓고 높은 세계가 펼쳐지지요. 샤론의 꽃이신, 빛이신, 하나님이신, 사랑이신, 천국의 주인이신, 종이신, 구원의 주체이신, 교회의 주인이신, 목자이신, 상담자이신, 진리이신, 예배의 대상이신 예수에 대한 이해, 그리고 육체와 감정과 이성의 어울림으로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고 높고 넓을수록 신앙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요. 그래서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하며 토론이 왕성한 공동체가 공감대를 형성하며 아름답고 생명력 있는 교회로 성숙하게 되는데, 오직 믿음만을 외치며 그를 위해 감정을 뜨겁게 하여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그 믿음의 대가로 받으려다 오히려 불신과 오해를 크게 하지요. 같은 믿음인 것 같으나 서로 다른 이해관계까지 얽히고설킨 오염된 믿음으로 폭탄의 파편이 되어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되지요. 여기에 남용된 사랑과 은총이 거들어 불법이 난무하는 혼돈스러운 공동체가 되기도 하지요." 목사가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수는 유충의 머리에게 씌워졌던 허물을 벗고 커다란 볼록랜즈 같은 겹눈을 가진 고추잠자리가 연상되었다. "아, 그래서 교인이라면 말조차 섞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봐요.”
목사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아!... 대형 교회들은 질문이 넘쳐나 그렇게 부흥하게 되는 것이로군요." 이 집사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아니에요. 은혜가 충만해서 그래요." 김 장로가 말했다..
태수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물었다. "낚시군들이 던져 놓은 밥을 보고 몰려든 고기들, 어부들이 밝힌 밤바다에 환한 불빛을 보고 몰려든 수많은 고기들을 부흥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잡아먹을 계략에 넘어가 떼로 모인 집단. 잡아먹을 계략으로 뿌린 떡밥에 홀려 모인 집단." 장 씨가 되뇌고 또 되뇌었다. 김 장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인자하고 사랑이 가득한 표정으로 헛웃음만 웃고 있었다.
태수는 유충의 꼬리까지 벗겨지고 젖은 날개가 말라 뽀송뽀송하여 가뿐함과 시원함을 느끼는 빨간 고추잠자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겹눈을 굴리며 파란 가을 하늘을 이 나뭇가지 끝에서 저 나무 가지 끝으로 나르는.... 유충의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려 몸부림치는 듯한 장 씨가 동료라도 된 듯했다. 지그시 눈감고 "주여, 불쌍한 이들에게 믿음을 허락해 주세요"라고 숨이 막힐 듯한 표정으로 김 장로가 기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