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글을 읽고 쓰게 된 시점부터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게 했다. 난 그게 정말 어려웠다. 다른 집 아이들은 할머니할아버지에게 보고 싶다고 전화하기도 하고, 엄마아빠한테 혼난 것을 이른다거나, 뭘 사달라고 떼도 부리고 그렇다는데, 아쉽게도 난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난 그저 무뚝뚝한 손녀딸이었다.
할머니가 해준 밥? 그거 다 엄마가 한 거잖아.
할아버지가 준 용돈? 그거 다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드린 거잖아.
어린 손녀딸의 머리는 이런 냉소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 편지 쓰기가 정말 어려웠다.
덧붙여 핑계를 대자면, 한 달에 세 번씩은 주말마다 편도 약 두 시간 거리의 할머니할아버지 집을 다녀오고 있었고, 매 저녁식사 시간에는 할아버지의 전화가 왔었다.
"오야, 선화냐?"
"네, 할아버지."
"오야, 밥 묵었냐?"
"아니요, 아직이요.."
"엄마가 왜 아직도 밥을 안 준다냐. 엄마한테 고기해달라고 해라, 고기."
"네."
"그래, 밥 마이 묵어라잉~ 공부도 열심히 하그라잉~ "
"네."
통화내용은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늘 저녁식사의 여부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당부 2가지의 내용을 전화에 담았다. 이렇게 매 저녁, 매 주말을 내어 양적으로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통해 따로 전할 말이란 더더욱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부쳐야 했고, 그러지 않으면 뒤지게 맞았다.
(혼났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뒤지게 맞았다.)
이윽고 그 '숙제'가 싫어졌다.
어느 순간 나는 자랐고, 초등학생에게 걸맞은 프로젝트는 자연스레 끝이 났다.
나에게 그런 일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무뚝뚝했던 손녀딸은 그때, 생각보다 많이 울었다.
눈뜨자마자 병원에 가던 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장례기간 밤마다 할아버지의 방에서 잘 때에도.
장례 후에 고된 몸을 이끌고 집에 혼자 잠들 때도.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시골집에 남아있던 아빠는 할아버지의 책상에서 꽤나 귀중한 걸 찾아냈다.
나에게 왔는지 안 왔는지 모를 편지의 미완성 초고이자 그리운 추억 한 편이었다.
사랑스러운 손녀 선화 보아라!
요즈음 날씨는 겨울인데도 겨울답지 않게 한낮에는 따뜻한 봄처럼 기온이 몹시 누그러뜨리고 있구나.
노인들은 더없이 따뜻해 참 좋은 날씨구나.
그리고 또한 따뜻한 날씨만큼, 사랑스러운 귀여운 우리 손녀 선화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던 작은 손으로 꼬박꼬박 깨끗하게 쓴 한 편의 편지를 받게 되니 더욱 감개가 무량하구나.
할아버지는 속마음으로 "참 반가운 새로운 소식이 아닐 수 없구나"하고 생각했단다.
더욱이 작은 속 마음 구석에 할아버지에 대한 건강걱정을 하게 되리만큼 속이 환히 트이게 됐으니, '이제 그만 커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 할아비는...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말이다. 하기야 세상살이 잘 살아가려면 공부도 열심해야 하고 '시렁'위에 떡도 내려 먹으려면 키도 더 커야겠지, 그래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