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와 글

백수 체질

놀고 먹는 게으름뱅이의 선비 생활

by Magic Finger


일요일 아침이면 교회를 갔다가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오는 것은 거의 정해진 일과다. 도서관과 교회가 붙어 있어 순회 코스가 됐다. 편하게 책을 빌려볼 수 있다는 점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가면 도서관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댄다. 고3 수험생,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는 늙수그레 학생들, 공무원 시험을 비롯해 갖가지 취업 준비생들, 그리고 중고등학생들이 열람실에서 뜨겁게 공부를 한다. 그 사람들을 보면 나는 저렇게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집에서 나와 학교 도서관으로 공부를 하러 가야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면서.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던 날 더 이상 시험과 공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 어느덧 백수 20년차가 되었는데 그 어떤 시절보다 지금의 내 생활이 편하고 백수 생활이 나의 적성에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시기를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 내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유치원 때부터 조직 생활을 시작해 매일 아침 등교 혹은 출근을 해야 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한다. 규칙적인 생활은 나에게 엄청난 압박을 주고 몇 시부터 반드시 어느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나를 짓눌러 가슴이 답답하다.


대학 때 어느 날, 초등학교 담장 너머로 뛰어노는 초등학생들을 보며 친구들이 “저 때 참 좋았어” “초등학생 시절은 즐거웠는데”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다른 이들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내 눈에는 학교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이 동물원 우리에 갇힌 것처럼 보여 불쌍하게만 보였는데.


대학 때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느 아저씨와 나눈 대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당시 그 아저씨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사무실에 와서 직접 일해보니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생각했던 것만큼 답답하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하루 종일 의무적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며 보내야 한다는 것이 숨이 막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막상 일을 해보니 직장 생활이 생각보다는 덜 고통스러웠다. 마냥 좋았다는 것은 아니라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한 달 뒤면 끝난다는 희망의 끈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일류 직장에 대한 동경이 있어 아마도 부러워하리라고 예상하고 물었던 것 같은데 내가 핵심을 간파하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한 셈이다.

이 경험은 졸업 후 짧은 기간이지만 직장 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물론 나는 아침에 매일 같이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고 한 공간에 아홉 시간 이상 있어야 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지만. 오늘도 도서관에 들러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역시나 집에서 멍하게 살아가는 생활이 딱 맞는 태생적 백수임을 확인한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모순적 존재가 아니던가. 나 역시 모순 투성이의 인간인지라 규칙적 생활이 싫어서 백수 생활을 하면서 아주 규칙적인 하루를 보낸다. 친구들은 이런 내 생활을 보며 웃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 어떻게 혼자 방에 처박혀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또 한 가지 모순은 학교를 졸업하며 더 이상 도서관에 박혀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으면서도 꽤 오랫동안 도서관에 박혀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는 일을 즐겼다. 애먼 대학원까지 들어가 돈과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다.


이런 나를 보면 많은 이들이 오해를 해 공부 체질 같으니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라고 권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싫증 잘 내고 십 분 책상에 앉았다가 오십 분 침대에 누워 멍하게 지내는 나의 실체를 모르니 하는 소리다.

나는 오늘도 역시 백수 체질이야, 하며 침대에 누워 중얼거린다. 조만간 백수 30년차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먹여주고 재워 주시는 하나님과 부모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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