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일도 없으니 그저 책이나 읽을 뿐
언니네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조카가 외출하고 돌아오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이모는 왜 만날 책만 읽어?”
책을 읽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조카 왈,
“하긴, 우리집이 원래 좀 따분해.”
따분하거나 지루할 때, 심심할 때, 딱히 할 일이 없으면 책을 펴들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렇다 할 취미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특별히 뭔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문득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독서란 따분한 사람들이 별 볼일 없는 모임에서 입에 올리는 화제거리라는 것. 백 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고 보니 늘 화젯거리가 궁하기 마련인 별 볼일 없는 사람들 간의 별 볼일 없는 모임에서는 으레 독서가 대화를 이어주는 주제의 지위로 격상되곤 한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 -
나는 잘 하는 게 없다. 재주가 없어 무엇을 배워도 잘 해내지 못해 대부분 흐지부지 된다. 더군다나 타고난 비실이라 밖으로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바쁘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활기찬 도전 따위 애시당초 거리가 멀다.
여행이라도 가면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에너지가 바닥난다. 혼자 하는 여행은 그렇게 혼자서 비실비실대다가 여기 찔끔 저기 찔끔 다니다가 돌아오고 타인과 함께 하는 여행은 여러 면에서 남들에게 신세를 지거나 피해를 줘서 선뜻 함께 하기를 권유하지 못한다.
또 체력만 약한 게 아니라 간도 콩알 만해 여행을 가도 용기 있게 무언가를 시도하지도 못하고 쭈뼛거리다가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온 곳도 많다. 길을 잃으면 몸짓 발짓을 다 써서라도 길을물어야 할 텐데 그럴 용기가 없어서 어물쩍 포기하고 만다. 관광지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도 묻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내릴 곳을 지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비실거리는 내가 운동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언감생심이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운동을 하기에 너무 둔하고 민첩하지 못하니 함께 하는 운동이든 혼자 하는 운동이든 우스꽝스러운 몸동작만 선보일 뿐이다. 무엇보다 시작 전 준비 과정에서 체력 고갈이 드러난다는 점이 맹점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간이 콩알 만한 겁쟁이인 내가 놀이 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를 탄다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놀이 기구 돌아가는 것을 쳐다만 봐도 어지럽고 오금이 저리니 요즘처럼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 타기는 엄두도 못 낸다. 어린이들을 위한 회전목마나 커피잔도 이제는 눈 앞이 핑핑 돌아 탈동말동인 지경이니.
그렇다고 손재주가 좋아서 방에서 조용히 뜨개질이나 종이접기와 같이 곰시락곰시락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인물도 못 된다. 손이 두꺼워서 엉성하고 투박한 완성품을 만들어내고 나면 의욕은 금세 시들해진다. 남들은 요렇게 뚝딱 조렇게 뚝딱 잘도 만들어내는데 말이다.
성격이 털털하고 활달해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북적이는 장소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기에는 말수가 별로 없다. 또 사람들과 부대끼면 매우 예민해져서 쉬이 피로해진다. 술을 잘 마셔서 술자리에 초대를 받는 사람도 아니고 대식가나 미식가라서 식도락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아니다.
여자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쇼핑에도 나는 심드렁하다. 살 것도 아닌 물건들을 왜 둘러보며 가격을 물어보고 입어보며 몇 시간씩 시간을 허비하는지 나는 도무지 납득하지 못한다. 물론 쇼핑을 나간 지 몇 분이면 힘이 들어서 앉을 곳 찾기에 바쁘다.
내가 가장 선망하는 분야라면 음악을 꼽을 수 있는데 선망 이유가 바로 나의 절대적 무음감 때문이다. 음감 제로, 음치, 박치, 몸치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울 때는 선생님한테 혼나기 일쑤였건만 혼이 났던 보람도 없이 그때 배운 피아노 실력은 온데간데 없다. 남들 몇 번 들으면 따라서 부르는 노래를 나는 수십 번을 반복해 들어도 그저 생소한 노래로 그칠 뿐.
요즘 한창 요리가 화두로 떠올랐는데, 나의 요리 솜씨로 말할 것 같으면 가스레인지와 냄비가 알아서 해준다는 팝콘 튀기기도 냄비째 태워먹는 솜씨이며 계란으로 떡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급의 요리 솜씨를 가졌다. 어릴 적 내동생은 어느 날 하루, 내가 싸준 도시락을 보더니 그것도 단지 엄마가 해 두신 반찬을 도시락 통에 담았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락을 먹느니 차라리 굶기를 택하겠다며 도시락 가방을 두고 나가버렸다.
또 현대인들의 일상인 컴퓨터 게임이나 전자오락은 시작과 함께 게임 오버 글자가 번쩍거린다. 눈치 코치 보면서 머리를 팽팽 돌려야 하는데 우지직우지직 천천히 돌아가는 내 머리로는 전자 오락 한 판도 깨지 못한다. 어릴 적에 필수 오락이었던 버블버블을 난 단 일분도 버티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나는 책이나 뒤적거릴 수 밖에. 다행스럽게도 초등학생 때 글자는 깨쳐 책은 읽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다독을 한 것도 아니고 지적 수준이 높지 못해 독서 모임에 나가서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를 면치 못한다. 학제적인 분위기를 감당할 만큼 지적 수준도 되지 못하고 무엇보다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없는 말솜씨로 토론에 끼어들 처지도 아니다.
한 마디로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인간형.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글쎄요”하며 머리를 긁적일 뿐 늘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된다.
사람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뉴욕에 가서도 방에서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내니 서울로 돌아와서 여행이 어땠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무슨 책, 무슨 책 읽었다고 대답하려고 하면 상대는 내 이야기가 지루한 독서 이야기로 이어질 것을 감지하고 사전에 대화를 차단한다.
독서라는 주제가 따분한 주제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내가 한두 마디 떠들 수 잇는 유일한 주제니 어쩔 수 없이 화제는 자꾸만 책 이야기로 귀결된다. 독서란 참으로 화제거리가 궁한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거리임을 새삼 확인한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유일하게 한두 마디 훈수를 둘 수 있는 화제거리조차 누리지 못할 상황이다. 노안으로 글자가 잘 안 보여 돋보기를 들이대야 보일락 말락이니. 그래서 요즘은 책을 좀 멀리하는데 그나마 화제거리를 제공했던 책 읽기마저 뜸해지니 그야말로 꿀 먹은 벙어리로 살아가야 할 판이다. 나는 참으로 따분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