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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카고 라디오 Jan 04. 2022

벌써 희미해지는 새해 다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나이를 먹어가는 탓인지 한 해가 바뀔 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특히 감사하다.


12월 중순, 

1학기를 좋은 성적으로 잘 마무리하고 보람찬 겨울방학을 보내기 위해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9월 한 달은 공부가 너무나 힘들어서 책상 앞에서 한숨을 쉬다 울음이 터져 나오곤 했다.

일전에 썼듯이 공부를 시작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11월 말의 나는 누적 평가 결과 과목 A는 99.2 점, 과목 B는 98점을 받고 있었다.

이것이 학점 인플레이션의 결과일까 의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된 다른 학생들의 점수를 보니 그렇지 않아서 조금이나마 자존감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A 과목의 가장 어려웠던 과제에 대해 현업에 종사하는 파트타임 학생이 96점 받았는데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 과정을 시작한 학생 한 명은 나에게 65점을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A 과목은 점수를 퍼주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 과제에 대해 90점을 받았다. 점수에 연연하는 한국인 학생으로서 나는 최대한 보너스 점수를 챙기려 했다.


여세를 몰아 겨울 방학 동안 무언가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매일 삼시세끼 어촌 편 혹은 산촌 편처럼 (사실 나는 삼시 세 끼라는 프로그램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음식을 차리는데 여념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연말연시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가 계획했던 일들이 벌써 희미해져 간다.


이 글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는 자축이다.

돌아보면 나는 이공계 전공자로서 아이들 영어 글쓰기의 기초를 가르쳤고 그 일에 열심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 가족에게 좋은 기억이 많다. 하지만 '온전한 나만의 것'에 대한 갈망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나만의 것을 시작했을 때 나의 굳어버린 지적 역량에 대해 실망하고 나 자신이 한심했으며 그 좌절이 너무나 쓰디썼다. 결국 하루도 일찍 잠든 날 없이 늘 공부에 대한 걱정을 안고 근근히 버티며 얻은 것이 성적표 한 장이다.

유치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 나이며 이 나이에 이만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로서 자축하며 쓴다.


또 다른 하나는 선물이다.

다른 아무 것도 없이 그저 학업이 끝났다는 증표로 성적표 한 장만 손에 쥐고 있을 미래의 나에게 선물하는 詩.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게 된 그 詩 를 선물하기 위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기억해라, 미래의 나여.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법이란다.

너는 실망하고 슬퍼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작은 것 하나라도 미래에 대한 꿈을 꾸겠지.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그 현재를 아련히 그리워 하는, 더 먼 미래의 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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