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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카고 라디오 Mar 20. 2021

잔챙이가 본 미국 입시 스캔들

<작전명 발시티 블루스>를 보고 | 미국교육이야기

어제 넷플릭스에 접속하니 <작전명 발시티 블루스>라는 제목의 다큐가 추천작으로 떴어요. 



2019년 3월에 미국 전역에 알려진 Varsity Blues로 알려진 이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어요. 사회 전체가 분노하는 것을 '공분한다'라고 말하죠. 이 사건이 그러했어요. 사회가 공분했어요. 미국도 한국처럼 대입 경쟁이 갈 수 록 치열해지고, 대학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아요. 그래서 한국으로 치면 고3 학생을 둔 가정은 걱정이 많지요. 속 깊은 아이들은 알아서 가정 형편을 미리 살펴보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따로 알아보기도 하죠.


상황이 이런데 일부 부유층은 돈을 들이고 조작해서 없는 경력을 있는 것으로 만들었어요. 대학교의 스포츠 코치에게 불법적인 커넥션을 만들어서 합격을 거래했어요. 이에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했어요. 이 사건을 재연배우와 인터뷰를 통해 제작한 다큐예요.




이 다큐의 제목이 된 '작전명 발시티 블루스(Operation Varsity Blues)'는 FBI의 사건 코드명이에요.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한 작전명이 Varsity Blues 인 이유는 대학교를 대표하는  스포츠 팀(이 팀이 varsity)에 거짓 자료를 제출하고 코치에게 뒷 돈을 주어 대학 입학 자격을 얻는 불법 커넥션이었기 때문이죠. 2019년 3월에 보도된 이 사건은 유명 기업인과 배우 등 부유층이 적게는 20만 달러에서 많게는 650만 달러의 돈을 써서 불법으로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킨 대입 스캔들이에요.




다큐가 이 사건을 얼마나 깊이 있게 파헤치든 그 이야기의 흐름이 어디에 가서 닿을지 처음부터 짐작할 수 있었어요. 특히 다큐에 퓰리쳐 상을 수상한 언론인 다니엘 골든의 얼굴이 나왔을 때 전체적인 다큐의 시각을 알 수 있었어요.

다니엘 골든. 이미 2004년, 미국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명문대의 입학 시스템에 대해 조사해서 월스트리스 저널에 기사를 낸 인물이며 이 취재를 바탕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했어요. 그는 자신의 취재 내용을 엮어서 The Price of Admission (한국어판: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를 쓴 언론인이죠. 보통 저는 한국어로 글을 쓸 때 번역판의 한국어 제목을 쓰는데, 이 책은 Price와 Admission 이 만나서 책에서 전달하는 핵심적인 문제를 제목 자체로 전달했어요.


성적이나 그 무엇으로도 중산층의 학생에게 뒤쳐지는 부유층의 자녀가 막판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고 아이비리그에 합격을 차지했을 때, 패배감을 느끼는 이는 가진 거라곤 성취감밖에 없는 중산층 학생들이라는 현실을 고발했어요. 이 취재를 했던 2004년에도 기부금 입학은 뒷문으로 불렸어요.





5천만 달러는 없어요

미국은 돈이 있으면 명문대에 기부금을 내고 합격하는 제도가 있죠. 이건 뒷문으로 입학하는 것이지만 합법이에요. 이 사건이 불법인 이유는 대학의 스포츠 코치들에게 뒷돈 거래를 하고 남들은 모르는 문- 즉 옆문으로 입학 자격을 얻었기 때문에 처벌 대상인 것이죠. 그러나, 합법이면 불공정성이 사라지는가?라는 질문이 생겨요.


인터뷰에 응한 한 입시 컨설턴트는 하버드 같은 대학에 1천만 달러, 3천만 달러를 기부하고도 자녀가 입학하지 못한 사례를 알기 때문에 어쨌든 그 보다 더 많은 돈인 5천만 달러를 내면 입학하지 않겠냐며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해요.


바로 윌리엄 싱어의 고객은 3천만 달러 이상의 거액의 기부금을 명문대에 낼만큼의 능력이나 의향은 없지만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하길 바라던 사람들이죠. "싼 값에" 명문대 입학 티켓을 쥘 수 있으니 얼마나 가격 대비 성능이 합리적인가요.



이  사건은 마이클 샌델의 2020년 새 책 <공정하다는 착각>의 서문에 나올 만큼 현시대의 공정성 이슈를 대표하는 사건이 되었어요. 뒷문이든 옆문이든 앞문이든 - 정말 본질적으로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내가 어떻게 하지 않았어도 얻어진 것이 나를 지금의 이 자리에 있게 한 것 아닌가? 이를테면 적어도 내가 공부를 할 수 있게끔 이끌어준 능력 있는 부모 밑에 태어나거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거나 좋은 머리를 타고나는 것처럼.


만일 그렇다면 내가 잘 된 것은 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죠. 성공하지 못하거나 최소한 평균의 삶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을 무능력하다고 손가락질하는 게 아니라 말에요.




무지한 85% 의 부모들

윌리엄 싱어의 비즈니스가 꽤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커갈 수 있었던 이유는 대단히 복잡한 미국의 각 대학별 입시요강과 학교마다 수백 명, 많게는 천명까지 있는 대입 수험생들의 입시지도를 공립학교 카운슬러 선생님 몇 분이 나눠 맡아서 아이 한 명 한 명 신경 써 줄 수 없기 때문이에요.


다큐에서 한 개인 컨설턴트가 말하죠. 시간당 비용이 정말 비싼데 이런 서비스를 이용해서라도 정보를 얻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약 85%의 부모들은 이런 복잡한 내용을 모른다고 말해요.


저는 개인 컨설팅 서비스를 이용할 계획이 없어요. 무지한 85%에서 제 힘으로 어떻게 벗어날지 아직 모르지만 평범한 대학을 가든 인생이 어떻게 풀리든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헤쳐갈 거예요. 그렇지만 제가 대략적으로 알기엔 주변 사람들은 드물지 않게 다양한 가격대 중에 입시 컨설팅 서비스를 이용하는 듯해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이 지역의 한 학생은 중학생 때 자신이 설립자가 되어서 지역 수학 경시대회를 만들었고 어려서부터 수학 천재로 이름을 날렸고 시카고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오랜동안 음악활동을 하는 등 누가 보아도 대단한 스펙의 소유자인데 그 학생의 어머니가 컨설팅 서비스를 받자고 했지만 아이가 거절했어요. 이 Varsity Blues 사건 때 뉴욕타임스가 몇몇 학생들을 직접 인터뷰했답니다. 이 인터뷰에 뽑힐 정도의 학생이니 여러 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이지요. 여하튼 그 학생의 말에 따르면 컨설팅이 보편적이라고 해요.


일생을 자녀의 대입을 바라보고 달려온 일부 부모들이 마지막에 그러한 서비스를 받고 싶은 마음을 떨치기는 어렵겠죠. 제 아무리 잘하는 아이라도, 마이클 샌델이 지적했듯 대입 결과는 운빨이며 제비뽑기를 해서 누가 뽑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잘 뽑히게 전문가의 손을 거치고 싶을 것 같아요.




다큐와 나의 시각 차이

다큐에서는 이들의 범죄 동기가 학벌에 대한 집착과 대를 이은 사회적 지위의 세습이 목표였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들의 그 욕망을 펌프질 한 첫걸음 자체는 돈을 내면 한 자리를 받을 수 있다는 거래의 개념, 그 자체예요. 갑자기 마이클 샌델의 이전 책 제목이 생각나네요. What Money Can’t Buy. 어쩌면 이 질문을 우리는 다시 해 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큐에서는 요즘 부모들이 지각이 없어서 명문대에 가면 뭔가 다 잘 풀릴 것처럼 환상을 가지고 있고 엄청나게 좋은 교육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는데 어느 대학이나 모두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훈계가 나와요. 그러나 현실 중산층 엄마인 제가 보았을 때 그 말은 틀렸어요.


제가 보기에 대입 경쟁 특히 명문대를 향한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사정없이 치솟는 대학 등록금 때문이에요. 보통 주립대나 집 근처 평범한 대학에 진학하면 장학금 등 재정 혜택을 받을 기회가 많이 줄어들고 그 금액도 적지만, 이름 있는 좋은 사립대에 가면 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아주 많죠. 제가 아는 사람만 해도 아이비리그를 다닐 때 주위에 자기 돈 내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거든요.


문제의 원인을 사람의 욕망 때문으로 보느냐, 아니면 학비가 치솟으며 미국 가정의 연평균 소득으로 감당하지 못할 현 상황을 문제로 보느냐는 해법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여담

이 사건의 핵심인물 윌리엄 릭 싱어(William Rick Singer)는 명문대에 옆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전략의 설계자이며 배후조정자예요.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농구팀 코치로 일했어요. 이러한 경력이 왜 그가 대학교 스포츠 팀을 타깃으로 설정했는지 그 배경이 돼요. 그의 경험과 지식은 그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농구 코치로 일하면서 보고 느낀 것에서 나왔죠. 윌리엄 싱어는 무려 761 가족의 부정 입학을 도왔어요.


한데 이 사람은 일리노이 시카고 서버브 출신이에요. 시카고 오헤어 공항과 노스웨스턴 대학교와 가까운 Lincolnwood 가 그의 고향이며 이 곳에서 성장했어요.


빨간 점이 찍힌 곳이 Lincolnwood


다큐에 잠시 다룬 그의 성장기를 보면 어려서부터 돈을 벌면서 법을 어기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던 캐릭터로 비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한 사람이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도덕관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금 느꼈어요.  




다큐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았을 때 완성도와 예술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취재를 아주 깊이 있게 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나 이 시대에 잊지 않고 다시 봐야 할 문제점을 짚었다는 그 점에서 의미 있는 다큐였어요. 마침 미국 고등학교의 고3 학생들 (high school seniors)의 입시결과가 발표나는 시즌에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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