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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Hyuk Jan 26. 2016

가장 특별한, 보통의 기억

2015 경기문화재단 별별예술프로젝트 <보통의 기억>

 기억은 국경을 넘어서도 공유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답을 들을 수 있겠지만, 특정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기억을 넘어 특정한 감정의 문제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동아시아라는 지정학적 명칭이 그렇다. 우리의 관념 속에서는 한중일이라는 삼국을 동아시아라고 칭하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과 같은 국가들 역시 동아시아에 속하고 있으며 제국주의의 침탈과 냉전구도의 파도 속에서 비극적인 현대사를 함께 보냈다.


 김지혜 작가가 기획한 <보통의 기억>이 베트남 작가들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베트남은 제국주의의 침탈뿐만 아니라 월남전을 통해 한국과 전쟁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트라우마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에 모두 영향을 끼쳤다.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이 고통의 연대를 전제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때문에 베트남 작가들과의 교류전은 서로의 고통을 새롭게 그려주는 역할을 한다.


오래된 미래의 흔적

  오카 마리는 <기억 서사>에서 기억을 공유하는 주체들에게 ‘망각’은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누군가는 상상하지 못할 고통의 경험이 시간이 흘러 잊혀지는 것은 폭력을 행사했던 가해자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집단학살과 같은 폭력 행위가 잊혀지는 것도 문제지만 폭력의 대상이었던 이들을 잊는다는 것도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스스로의 고통을 언어화하기 어려운 이들이 자신의 고통을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 자체도 어려울뿐더러 이 과정이 수행되었다 하더라도 가해자들의 망각은 이들을 2차적인 폭력으로 몰아넣는다.  


 베트남의 ‘프로펠러 그룹’은 영상작업을 통해 근대 초기 베트남에서 이루어진 전쟁의 체험과 이후 남겨진 자들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외부자적인 시선에서 보여준다. 프로펠러 그룹의 멤버들이 대부분 미국유학을 통해 근대적인 예술의 세례를 받았고 베트남 내부에서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직접 겪지 않았기에 객관적인 거

프로펠러그룹

리를 유지하면서도 서구인이 빠지기 쉬운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은 내부자적인 익숙한 관점을 제시하며빠져나온다. 이들에게 있어서 베트남은 삶의 터전인 동시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타인들의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판 끄엉 역시 베트남 학생들이 커다란 대나무 통 안에서 공부하는 장면, 베트남 청년들이 진흙으로 뒤덮여 귀환하는 장면을 감각적으로 구성했다. 다소 인위적인 설정을 가해 만들어진 판 끄엉의 작품은 검열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베트남 내부의 목소리를 외부자적인 시선으로 돌려 말함으로써 말해지지 않은 것 이상의 의미를 가시화 시켰다. 이들의 작업은 베트남의 청년 세대가 이전의 질서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들의 시선은 비엔날레 등을 통해 주목을 받고 있고 토속적이면서도 모더니티한 베트남의 양면을 적실하게 보여준다.


이수영 작  <연평도해병대와 물귀신>

한국의 작가들 역시 한국 내부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재현해냈다. 전시회 중앙에는 이보람 작가의 퍼포먼스를 위해 설치된 텔레비전이 있다. 이 공간은 마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실처럼 재현되어있는데 한국의 어두운 부분을 방송하는 뉴스, 그리고 그 앞에서 온 몸을 비트는 한 여성의 조합은 한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합성과 왜곡을 구사해 골프장과 산, 도로를 한 곳으로 모아놓은 <홍천경_백양치>와

 철거 전의 건물에 달린 창문을 모두 지워버린

<Babelstreet-북아현동>은 한국이 처한 현실을 시각적으로 재현했다. 개발과 성장의 이면에 지워지고 왜곡된 목소리가 한국에 어떻게 퍼져있는지를 직관적으로 각인시키는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것은 이수영 작가의 <연평도해병대와 물귀신>이었는데,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난 즈음에 직접 처녀귀신의 복장을 하고 귀신잡는 해병대를 따라다닌 이수영 작가의 기록이다. 군인들과 주민들, 그리고 관광객들을 두루 만나면서 그들의 일상의 침입한 귀신 역할을 수행한 이수영 작가는 남북대치 상황에 희생된 희생자들과 정치적인 이유로 배제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코믹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게 풀어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상대 국가의 대표적인 요리를 설명만으로 재현하는 과정은 전혀 이해할 수

당신의 요리는 어떻게 우리의 맛이 되는가

 없는 서로의 문화를 손과 맛을 통해 체험케 만든다. 결과물은 원래의 것과는 다르나 오히려 양 국의 기억이 혼합된 고유의 것에 가깝다. 하나의 벽을 사이에 두고 반복해서 방영되는 레시피는 내부와 외부의 시선이 절합된 면을 상징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작가들의 교류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이 어떠한 양태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들을 만나는 가능성을, <보통의 기억>은 단순한 콜라보레이션 이상의 의미를 낳는다.


고통의 연대, 기억의 집합

  최근 코피노(코리안+필리피노의 합성어로 한국남성이 필리핀에 거주하는 현지처에게서 낳은 자식세대의 속칭)가 필리핀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면서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주는 사이트가 생겨났다. 이 사이트의 게시물을 통해 많은 코피노들이 생물학적 아버지와 연결되었고 현재도 연결을 기다리고 있다. 동아시아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환기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망각이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때문에 코피노라는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삶의 기반 자체를 파괴하는 잔혹한 행위가 된다. 많은 한국 남성들이 버리고 간 코피노들은 현실적 조건의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계속해서 아버지 찾기를 수행해야만 할 것이다.

  필리핀의 경우와 같진 않겠지만, 한국과 베트남 역시 비슷한 감정선을 지니고 있다. 특히 월남전의 기억은 한국과 베트남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아픔을 공유하고 있으며 비슷한 상처를 서로에게 가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보통의 기억>은 이러한 고통의 기억이 평범한 것임을, 그리하여 누구나 기억해야만 하는 삶임을 환기시킨다. 이때의 아픔은 오롯이 혼자가 아닌, 공동체의 영역에서 감당되어야하며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건넬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국가와 정치라는 거대 영역에서 다루어졌던 고통의 이야기는 왜곡되고 축소되어 잊혀져가야만 했다. 같은 아픔과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서로 고립되어 미약한 목소리로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베트남의 신세대가 가진 문제의식과 한국의 신세대가 가진 문제의식이 거대 서사가 의도적으로 은폐시킨 개인의 목소리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교류는 은폐된 목소리들을 귀환시키고 그 사이의 틈을 메우는 작업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폭력과 혐오의 시대를 건너야만 하는 개인들에게 가장 보통의 삶이란 어쩌면 서사화되어 기억의 밖으로 던져져야만 가능한 삶인지도 모른다. 그제서야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 함께,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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