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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Hyuk Feb 23. 2016

예술, 골목과 세계가 조우하는 방법

2015 경기문화재단 환류워크샵 

그 골목길 어귀에서


  최근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서울 쌍문동을 배경으로 이웃과 이웃이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삶을 그려냈다. ‘쌍팔년도’라는 수식어가 무색할만큼 <응팔>의 정서는 2015년의 모두가 잊고 있던 정서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80년대에 비해 풍족함을 누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때의 그 골목을 그리워하는 것은 정겹게 이웃과 나누던 따뜻함이 어느 순간부터 부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골목은 언제라도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며, 이웃은 교류하지 않는 편이 더 안전한 타인에 불과하다. ‘헬조선’과 같은 단어가 공감을 얻는 현실에는 골목 공동체의 붕괴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별별 예술 프로젝트를 참여한 지역 예술가들에게도 골목 공동체의 붕괴는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이 ‘마을’과 ‘동네’라는 공동체적 형태에 주목하여 이를 음악과 영상 등을 통해 풀어내려했던 것은, 예술이 발을 디디고 서있는 지반이 결국 사람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컨대 삶과 예술의 관계, 혹은 예술과 인간의 관계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를 별별 예술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별별 예술 프로젝트는 사람들을 따뜻했던 그 시대로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이웃에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그리하여 서로의 삶이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그려내는 일종의 청사진인 셈이다. 때문에 이웃 간의 마실을 생활예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루어낸 <마실 갤러리>와 마을 어딘가에 존재하는 정원의 역동적인 모습을 긴 호흡으로 포착해낸 <마당 백초>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어딘가에 잃어버린 ‘당신’의 존재에 대해 소박하지만 끈질기게 물음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 관계의 연쇄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우리’라는 또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콜라보레이션예술의 진화 혹은 세계의 소실


  별별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선정된 예술가들은 골목과 골목을 채우는 지역 예술은 나름의 고민을 형식적인 실험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관심이다. 콜라보레이션의 사전적 정의인 예술가 간의 ‘협업’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장르를 조합하는 ‘메타’적인 속성을 지닌 프로젝트도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 동네로 확장시킨 <물물교환>은 단순 각색 작업에 그치지 않고 소설가와 영화감독 간의 연결, 나아가 다세대 주택의 공사로 황폐화된 고양시의 문제까지 시야에 담아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OSMU가 정체되어가는 것과 달리 <물물교환>은 비교적 영리하게 프로젝트의 본질적인 의도를 네트워킹이라는 구조로 체계화 시킨 유의미한 시도였다. 


  <물물교환>뿐만 아니라 서지학의 성과를 영상으로 표현해낸 <뿌리와 꼭대기>, 서울의 이면을 다양한 음악과의 합주로 굴절시킨 <맑은 밤 혼자 걷는다>, 1인 미디어와 미술의 경계 넘기를 시도한 <동시전파>는 예술이 인접 장르 혹은 인접 학문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민이 경기도라는 특정한 지역과 조우했을 때 증폭되는 것은 결국 예술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또한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관심 역시 활발했다. 베트남과 한국의 작가들의 연결선을 찾아냈던 <보통의 기억>과 죽음이라는 의제로 섬(고향)과 도시(현대)를 연결시킨 <오길림>은 공간적인 한계를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극복해낸 유의미한 성과다. 각자의 공간을 서로의 공간에 배치시키는 이 시도는 지역적인 한계에 얽매이지 않은 ‘우리’를 발견하는 급진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레이션을 앞세운 경기도의 예술(가)들은 이제 새로운 시간 앞에 놓여있다. 골목과 골목, 마을과 마을 나아가 국내와 세계를 잇는 것은 비단 정치와 경제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거대 담론들이 놓치고 있는 ‘우리’의 목소리를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술이 건넬 수 있는 가장 집요한 물음일 것이다. 


여전히 무언가를 보고, 쓰고 있습니다. 

웹진 <문화다>에서 드라마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공저로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문화다북스, 2015)와 <야누스의 여신 이은주>(문화다북스, 2016)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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