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일
만화, 애니메이션, 아이돌을 돌아온 우노 츠네히로의 강의는 ' 내가 좋아하는 것이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었는지'에 대한 자기고백적 서사에 가깝다. 오타쿠 비평 현장에서 활동했던 이력답게 저자는 동시대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수용자와 콘텐츠 사이의 공기를 파악하는데 탁월하다. 예컨대 그는 소년만화에서 나타나는 성장을 (미)성숙의 문제로 치환하여 아버지-되기의 서사를 결여한 상태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한편 아이돌같은 리얼충의 문화까지 어떤 영향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한국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영화, 텔레비전의 올드 미디어화와 새롭게 부상하는 서브컬처적 상상력이 눈 앞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에서 역시 우노 츠네히로의 주장은 유효하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노 츠네히로가 아즈마 히로키 등의 분석에서 얼마만큼 거리를 두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에반게리온> 이후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소비되는 (모에)오타쿠물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있어 결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이 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주요 작품으로 등장한 <나데시코>의 경우 오타쿠가 스스로를 메타적으로 분석하여 해체하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야마토>적인 것과 <우루세이 야츠라>적인 것의 보수적 지속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와 같은 결여가 이어지기 때문에 <에반게리온> 이후 오타쿠물의 역사를 단순히 정치와 코미디가 습합하고 있다 라는 서술만으로 전부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우노 츠네히로는 오타쿠물의 서사를 위주로 지엽적인 부분을 확대 해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후 서브컬처, 특히 만화에 대해서는 신선한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1990년대에 이르면 상당부분 저자의 직관만으로 논지를 전개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윈도우 95를 인터넷으로 즉각 등치시키거나 옴진리교 테러 사건 이후의 서브컬처를 자기계발로 인한 쇠퇴로 읽어내는 것은 자칫 저자의 자의적인 주장에 머물 위험을 크게 내포하고 있다. 전후 애니메이션, 특히 건담 계열의 작품들을 의미를 부여하여 후대의 작품에 덮어쓰기하는 방식으로 읽어내는 것을 보자면 저자가 특정한 상을 정해두고 이에 맞추어 현재의 흐름을 규정하려는 시도로까지 보인다. 아즈마 히로키가 작은 이야기를 통해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의 세계관 재구축을 데리다와 가라타니 고진의 영향력 하에서 시도했다면 우노 츠네히로는 리얼한 것과 가상적인 것의 충돌을 체험과 직관에 의존하여 해석하는데 주력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두 비평가의 주장에 위화감이 든다면, 아마도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결정적인 차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