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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Hyuk Mar 22. 2019

욕망과 선택의 순간들

- 이수진 감독의 <우상>(2019)

  <우상>은 전혀 다른 세 인물이 구축해놓은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포착한 영화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인해 선택의 순간에 놓인 명회(한석규), 중식(설경구), 련화(천우희)의 궤도를 카메라는 차갑게 응시한다. 정치생명을 위해 아들을 자수시킨 명회와 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중식과 함께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련화는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갈림길로 스스로를 몰고 간다. 감독은 세 인물의 삶이 교차하는 사건으로서 부남의 죽음을 선택했다.               

                                                                


  부남의 죽음으로 강요된 선택은 인물들 각자가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영화는 극단으로 치닫는 선택의 결과에 집중한다. 이들은 정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교통사고를 조작하고 목격자를 처리하는 명회와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 폭력도 불사하는 중식,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련화까지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이들의 선택이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는 사건에서 <우상>은 끝까지 눈을 떼지 않는다.                           

                  


  전작 <한공주>에서 피해자들이 어떻게 세계로부터 고립되는지를 섬세하게 주시하던 이수진 감독은 <우상>에 서 가해자들이 고립에서 탈출하기 위해 세계와 어떻게 충돌해가는지에 집중한다. 영화의 제목인 우상(idol)은 인기 정치인 명회를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세 인물이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알레고리적 표현이기도 하다. 신적인 존재를 뜻하는 우상은 각자가 가진 세계를 구성하는 일상이다. 동시에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상징이란 점에서 영화는 우상을 이들의 세계가 충돌하는 특정한 공간으로 인식한 것처럼 보인다. 이 충돌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세계를 부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상>의 냉소적인 시선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가족, (비)정상으로서의 삶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이들은 애초부터 정상적인 가족의 범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위행위를 직접 해줄 정도로 부남을 끔찍하게 여기는 중식은 수차례 성매매 전과를 가진 인간이며 아들의 성욕을 풀어줄 수 있는 유사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련화를 며느리로 삼았다.진보 성향의 정치인 명회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돈 문제로 얽힌 어머니,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아내와 아들을 평범하게 생각하는 가장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비정상적인 가족구성원에 대한 설명은 영화의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비정상적인 가족은 지켜야할 가장 이상적인 공간처럼 그려진다는 점에서 기존의 가족영화와는 다른 결을 드러내보인다.

                             


  때문에 명회와 중식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인물이지만 같은 욕망을 가진 인물로 겹쳐진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형태)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들이 결국은 련화를 찾아나서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이다. 한 번도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는 조선족 련화는 이들의 기이한 욕망을 실현시켜줄 매개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련화의 실체가 드러날 때 영화는 단순히 정상가족에 대한 욕망을 성취하는 길로 인도하는 희생물이 아님을 비로소 영화는 증명해낸다.


  <우상>에서 련화를 둘러싼 명회와 중식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이 지켜낸 현실이 지극히 이상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영화는 명회와 중식의 운명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애써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중식의 지지 연설은 영화의 명회의 마지막 연설 장면과 만났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이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욕망의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스스로 생명을 연장시켜나간다. 현실이 언제나 영화보다 잔인하다는 이수진 감독의 꼼꼼한 통찰이 빛나는 순간이다.



<우상>, 현실의 알레고리


  섬세하게 한 사람의 내면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던 이수진 감독은 <우상>에 이르러 시선의 스펙트럼을 한층 넓히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명회와 중식이 지키려 했던 가족이라는 공고한 세계는 현실이 뒤틀린 욕망으로 이루어져있는지에 대한 알레고리와도 같다. 매순간 밀폐된 경계선을 사이에 두어야만 마주할 수 있는 인물들의 구도와 원활한 전달을 방해하는 말은 이들이 욕망하는 정상적인 삶이 온전하게 주어질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종국에 유창한 명회의 언어를 어눌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붕괴된 언어로 그릴 때 이 알레고리는 더욱 가속화된다. 그렇기에 <우상>이 가지는 힘은 현실의 경계를 스크린으로 가져와 영화만의 언어로 탈바꿈시킨데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하고 싶은 이야기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충돌하는 대중예술이라 생각한다. 좋은 영화는 애초의 의도를 넘어 또 다른 이야기를 창조해낼 가능성이 충돌 속에서 끊임없이 환기될 때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수진 감독이 의도적으로 구획한 <우상>의 경계들은 기꺼이 충돌을 감수하려는 용기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가진 힘을 가두는 인위적인 선택이 되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배치한 형식적 실험이 영화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방해할 때 그것은 과연 좋은 영화였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분명 감독 스스로가 감당해야할 추후의 난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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