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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Hyuk Apr 15. 2019

Russian Wood

- 러브리스(안드리에 즈비아긴체프, 2017)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d flown.

- <norwegian wood>(The beatles)


사랑의 끝가족


  <러브리스>는 상실에 관한 영화다. 이혼을 앞둔 젊은 부부에게 어린 아들은 짐과 같았다. 보리스와 제냐가 사랑을 잃었을 때 집은 더 이상 안온한 가족의 공간이 아니었다. 실종된 아들을 찾으려는 부모의 이야기처럼 보였던 <러브리스>는 평범한 가족이 사랑을 상실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가족은 상실을 확인시켜주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집을 보러온 젊은 가족에게 알료사가 보인 무례한 행동은 이들의 존재가 가족의 붕괴를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증거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는 과정을 감독은 확인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냐와 보리스가 서로에게 증오를 쏟아낼 때 알료샤는 내색 한 번 하지 못하고 슬픔을 삼키는 유약한 소년이다. 많은 친구를 사귈 정도로 사교적이지도 않았고 별다른 취미생활 없이 책상에만 앉아있던 알로샤는 누구의 기억에도 선명하게 남아있지 않는데 그것은 알로샤가 이들이 그토록 원하던 행복의 조건인 ‘없음’에 대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실종 수색 중에 발견되는 여러 증거들, 가출소년과 신원불명의 시신, 점퍼 등을 카메라의 밖으로 이내 밀어버린 것은 알로샤의 존재는 이전부터 그랬듯 희미한 투명에 가까웠다.


  알료샤는 가출인지 납치인지에 대한 단서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알료샤를 찾는 어른들의 목소리를 영화는 무덤덤한 시선으로 끝까지 응시한다. 카메라는 동선을 최소화하고 좌우 움직임만으로 공간을 훑어내는가 하면 불안과 피곤이 교차하는 제냐와 보리스의 얼굴을 조용히 응시한다. 새로운 연인과 행복한 삶을 꿈꾸는 부부에게 알로샤의 실종은 축복이었을까 재난이었을까. <러브리스>는 알로샤가 사라진 도중에도 부부와 그 연인들의 일상을 차분하게 지켜본다. 알로샤의 생사는 분명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들의 삶은 여전히 굴러간다. <러브리스>는 사랑의 행방을 좇는 이들을 통해 이 지난한 삶의 궤적을 아주 천천히, 하지만 집요하게 보여준다. 알로샤의 없음은 적어도 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암시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가족이라는 괴물


  보리스와 제냐가 이혼을 결심한 것은 서로에게 없는 어떤 것을 다른 사람에게 찾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한 제냐는 종교의 이름으로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는 엄마를 피해 보리스와 충동적인 결혼을 했다고 진술한다. 유약하게 태어난 알로샤의 존재는 이들의 계획의 부차적인 산물이었을뿐 사랑의 결실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진술을 직접 들은 알로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흥미롭게도 <러브리스>는 아이의 시선을 철저히 배제한 채 어른들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알로샤의 실종이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부모의 복잡한 표정이 클로즈업되면서 가족은 치명적인 질병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부모는 알로샤의 실종을 기점으로 완벽한 이별에 이른다. 


  아이의 실종을 통해 부모가 화해에 이르거나 혹은 파국에 이르는 고전적 이야기 구조에서 한 발 벗어나 가족이 서로에게 질병이 되는 역설적인(혹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실은 러시아의 어두운 숲과 어우러진다. 이전부터 가족의 붕괴와 그 여진을 진지하게 파고들던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러브리스>에서도 변함없는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리바이어던>에서도 보였듯이 외부(종교와 정치)로부터 덮쳐오는 재난 앞에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가족이라는 세계는 연약하게 흔들린다. 알로샤 뿐만 아니라 제냐와 보리스가 맞이했던 가족들 역시 이 외부의 재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내 자폭하고 마는 미성숙한 어른일 뿐이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이 그려내는 가족은 나약한 어른들이 서로를 괴물로 만들어가는 황폐한 숲과 같다. 

  <러브리스>는 알로샤의 행방을 끝내 미답에 부친다. 알로샤가 지내던 집은 리모델링을 통해 그 흔적을 지워내고 각자의 가족을 새롭게 찾은 보리스와 제냐는 무표정한 얼굴로 일상을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이었던 가족의 기억은, 가족의 의미가 점차 변해가는 우리의 기억과는 얼마나 다른가. 아마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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