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 입사 시험 - 실무진 면접 - 인성 검사 - 임원진 면접 - 건강 검진.
몇 달에 걸쳐 이 많은 단계를 통과하며 나는 한 회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길로 취업 준비생을 졸업했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NCS, 인적성 등 시험 서적들을 버렸고, 짧은 여행을 위한 비행기표를 바로 끊었다.
동남아 휴양지에서 친구와 일주일 간의 휴가를 즐긴 후 이제 정말 회사원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신입 사원들을 위한 회사 OT.
지금에야 '공채'라는 제도가 유명무실해졌으나, 10년 전 당시에는 일괄적으로 입사하곤 했다.
각 계열사의 이름을 달고 몇 백명의 인원이 인재 개발원 숙소에 한 번에 모였다.
한 달간 회사의 색으로 물드는 교육이 시작될 것이다.
'나 잘났소~' 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아직 입사도 안 했는데 각자의 계열사에 소속감을 가지며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기 바빴다.
몇 백명의 인원들 사이에 리더십에 욕심이 있는 몇 사람들이 자신 있게 '리더'로 나섰고, 그중 우리 회사 소속일 때는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같은 학교 출신을 만나도 반가웠다. 무언가 공통점이 있으면 친근감이 생기며 다가갈 수 있었다. 그간 쌓아온 스펙들이 후광처럼 서로를 빛내 주었다.
6시 반부터 밤 9시까지 하루종일 꽉 짜인 시간표 속에서 정신이 없었다.
일괄적으로 나눠준 체육복을 입으니 모두가 같아졌다. 신입 사원 소양 교육으로 기업 이념을 외우고, 명함 나눠주는 법 등의 업무 기본 태도와 팀워크를 만들기 위한 소소하지만 경쟁적인 게임들을 했다. 강사들을 초청한 외부 교육을 받았다. 틈틈이 주어지는 쪽지 시험으로 야밤에 복도에 나와 외우고 다음날 일어나서 시험을 보곤 했다.
하루하루가 떨리고 설레고 걱정되었지만, 어찌어찌 지나가고 있었다. 외향과 내성적 성격이 반반인 나는 때에 따라 골고루 성향을 드러내며 적응을 하고 있었다. 신입사원 교육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체조 경연대회 '였다. 아침마다 노래에 맞춰 몸을 풀며 체조하는 시간을 보내며 기본 동작을 배웠고, 응용해서 각 팀마다 각자의 색을 드러내며 춤을 춰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일정한 리듬에 맞춰 절도 있게 하는 군무. 춤이랑은 어울리지 않았던 나인데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마치 야구장의 치어리더가 된 기분에 신명이 났다.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고, 수많은 인원이 있는 강연장은 곧 클럽 마냥 후끈해졌다. 사람의 열기가 이렇게 뜨거운 것이었다.
9명으로 이뤄진 우리 팀도 공연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였다. 인간 도미노처럼 탑을 쌓기로 했다. 아래에서 남자 셋이 튼튼한 장딴지로 굳건히 섰다. 나를 포함한 가벼운 여자 둘이서 순간적으로 허벅지로 올라가 반짝 서는 동작을 만드니 화려한 조명 아래서 빛이 날 것 같았다. 역시나 수많은 동작 중 눈길을 사로잡았고, 토너먼트처럼 올라가서 종래에는 몇 백명의 인원 앞에서 공연을 하였던 팀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 뒤에도 뮤지컬, 합창 등 다양한 행위 활동들이 있었고 정신없이 지나갔다.
무난히 평가를 받고 무사히 퇴소를 하며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모습이 다져졌다. 애사심을 만드는 것이 회사의 주목적이었을 것이고, 나는 쉽게 얻지 못할 단체 생활인 '공채 신입사원 교육'이라는 경험을 밑바탕으로 그 피를 수혈받으며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취업 준비생의 고통 끝 선물인 듯 다시 세상은 다채로운 빛을 띠었다.
ps1. 현재는 공채 제도가 많이 사라지고 수시 채용으로 바뀌어서, 이런 문화가 있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많았던 8090 세대인 집단주의의 흐름이었겠지만 나름 인생에 한 번쯤은 겪어도 좋을 감사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글 덕분에 그때의 사진도 찾아보며 회상에 젖어보았네요.
ps2. 다음 글부터는 처음으로 세상이 원하는 길이 아닌 저만의 길을 가게 된 스토리를 풀 예정입니다. 제가 원했던 행복을 찾는 과정을 잘 정리하여 다음주에 돌아오겠습니당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