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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Oct 01. 2024

이력서만 107개, 떨어지고 또 떨어지다

그녀의 대학생 생활



학우들이 점차 학원,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CPA(회계사), 행정고시, 취업을 위한 준비...

자유로웠던 시간들은 잠깐의 일탈이었을까- 이젠 현실의 본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내 엉덩이가 본능적으로 10대의 오래 앉아있던 시간을 거부하고 있었다.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오랫동안 달리는 것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붙을 자신도, 후회 없이 공부할 자신도 없었다.

20대의 젊은 날에 공부를 하느라 스쳐 지나가는 날들에 대한 기회비용은 분명 있을 것이다.

고민을 할 여지도 없이, 나는 장기간의 수험 생활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자연스럽게 취직 쪽으로 생각이 굳혀졌다. 교사 공무원을 생각했던 어린 날과 경영학과에서 배운 사원의 관점이 합쳐졌기에 내겐 공기업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공기업에 맞춰 스펙을 쌓아야겠다.



다만, 이론적인 스펙만 쌓으며 대학 생활을 보내긴 아쉬우니 여러 실무적 경험을 많이 해봐야겠다. 특히, 내가 정말 공기업에 맞는 사람인지 미리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그렇게 자격증과 실무 경험을 동시에 준비했다.



난 다양한 경험을 하겠어!
언제 쓸지 모르니 자격증은 다다익선,
뭐든 배워보는 거야.
그래서 어디든 갈 수 있는 인재가 되는 거야.




방학 때마다 미친 듯이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은 관련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고, 따고 나면 '나 이만큼 노력했어!'라는 증거가 남는다. 기분 좋고 확실한 대비책이었다. 그래서 문과가 딸 수 있는, 입사 시에 가점이 되는 자격증을 저격수처럼 찾아다녔다.



어디든지 취업에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은 토익! 사무직에서 원하는 점수인 900점을 넘어야 했기에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 내겐 힘들고 답답한 벽이었다.

그리고 한국사, 한국어, 오픽, 정보처리기사, 한자, 컴퓨터 자격증... 공기업 입사에 필수.






'스펙'이라고 하는 자기소개서를 치열하게 하나씩 채워나갔다.


봉사 활동 80시간,

국제 행사 진행 참가 기록,

공기업에 필요한 자격증 10개 정도...


학기가 지날수록, 내 이력서는 조금씩 완성이 되어갔다. 더 뭐해야 하지?

적극성을 보여주자, 나만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스쿠버다이빙, 패러글라이딩과 같은 자격증도 땄다.

(사실 배우는 게 재밌어서 겸사겸사도 있었다.)


4학년이 되면서 학기를 잠깐 멈추고 인턴을 하게 되었다.

학교 행정실에서 일을 배우며 사회생활을 처음 맞이하였고, 그게 발단이 되 운이 좋게 공기업 인턴 하게 되었다. 인턴을 해보니 해외에서도 일을 해보고 싶었고, 치열한 경쟁 끝에 독일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인턴을 총 4회 했다.)





나는 스펙 무기를 든든하게 가지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어디든 괜찮지 않을까? 이제 취업 뽀개기다!



3월에 시작되는 무한 자소서 러시에 이어 4월에는 인적성이 매주마다 있었다.

시험은 끝이 없었다. 토익이든 기업 인적성이든 쉬지 않고 봤다.

공기업은 전공 시험이 따로 있기에, 인터넷 강의를 신청하여 오랜 시간 공부를 했다.



스펙만 갖췄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엄청난 경쟁률로 번번이 떨어지곤 했다.

'이 정도 스펙이면 어디쯤은 가지 않겠어?'라는 오만했던 생각. 정말 너무 안일했던 것이다.

좌절하기엔 아직 함께 취직 못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 나만 힘든 게 아니야.'



다시 9월이 되어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다시 시작되는 자소서 기간. 도르마무 도돌이표~

이 치열한 경쟁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평생? 우리나라라서 더 그런 걸까?



취업 준비생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7시 반 기상 스터디를 하며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기상 스터디뿐인가, 인적성 스터디, 면접 스터디 등 경쟁 속에서 늘 실전처럼 준비하였다.

지치고, 또 지치고, 무기력해지고, 다시 힘내서 강의 듣고, 시험 보고, 탈진하고, 면접 준비하고, 울고...

새롭게 만나게 된 취업 친구들과 고충을 나누고 응원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앞을 나아갔다.



'불합격'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참 지치게 만들었다.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정성스럽게 쓴 자소서들이 떨어질 때의 그 충격. 아픔. 답답함... 멈춰버린 인생 같았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씩 붙기 시작했다. 인적성 잘 통과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뭐가 문제지.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마치 돌로 누르는 듯한 압박감으로 답답했다.

내 길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이젠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어디라도 붙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거다. 느덧 나는 삼성, 현대, LG, 롯데, 금호, SK, 두산 등등 공고가 뜨는 대기업에도 보이는 대로 족족 원서를 넣고 있었다.





최종 면접에서 붙었으면 삼성맨이 되었을 수도 있고, 3의 시도 중 한 번이라도 붙었으면 한전맨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1년 반이 넘게 매 학기마다 30개가 넘는 기업의 공채에 도전했고, 쭉 나열해 보니 107개로 끝이 났다.


하하하, 108 번뇌를 하기 전에 가까스로 붙었다.



무수히 많은 시도 끝에 결국은 끝이 났다.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었다.

공기업을 생각했던 나였는데, 자본주의의 끝판왕 사기업에 들어갔다.

마치 교사를 생각하던 내가 경영학과에 들어간 것처럼- 역시 인생은 모르겠다 싶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내 스펙과 열정은 사기업과 더 맞았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너무도 다른 인생 경로가 펼쳐졌기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그 지겹고 힘들던 취직 시장에서 드디어 탈출한 것만으로도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다니고 싶어졌다.



10대의 입시 전쟁처럼, 20대의 취업 전쟁도 '다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고개를 도리도리 할 거다. 너무 고생이 많았다. 쉽지 않았던- 초조한 기다림, 인고시간이었다.

이제 어떤 인생이 기다릴까?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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