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을 한 것과 별개로 회사에 붙잡혀 있겠다~' 생각하면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그렇게 며칠간 야근을 하면 회사집 회사집... 이게 맞는가 회의감에 둘러싸인다.
내가 빠지면 업무가 올 스톱된다고? 택도 없다. 우리는 회사의 부품으로 내가 없어도 회사는 굴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으로 충분히 대체될 것이다. 그게 대기업의 시스템이고, 회사가 돌아가는 이치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의 모든 시간을 바칠 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이 맞는가?
내가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니.. 언제까지? 직장이 이런 의미인가??
포괄 임금제라는 것이 직장을 다닌다고 내 시간을 모두 통제하겠다는 것은 아닐 텐데...
사실 나는 야근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옆 팀들은 야근을 밥먹듯이 했지만... 나는 인복이 꽤 있는 편이어서 나처럼 야근을 싫어하는 칼퇴 팀장님을 만났고, 시간이 되면 후다닥 같이 회사를 튀어나갔다.
그럼에도 사무실에 앉아 '오늘은 칼퇴를 할 수 있을까?' 눈치 보는 일상이 매일같이 이어졌고, 팀장님은 그 윗 선인 본부장님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상사에 의해 달라지는 내 시간, 이것이 내 미래구나.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답답한 분위기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똑딱똑딱 6시, 그렇다고 집단주의 문화에서 뻔히 눈앞에 보이는 팀 동료들 사이에 막내인 나만 살겠다고 업무를 내팽개치고 갈 수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출퇴근 거리는 왕복 4시간으로 멀었다. 바글바글한 지옥철에 몸을 담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집에 돌아가면 녹초가 되었고, 시간은 무심하게도 빠르게 아침이 왔다. 몸을 비척이며 새벽행 직행버스를 탔고, 출근해서 긴장하며 정신없이 일을 쳐내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당시의 나는 신사업팀으로 경력이 되기엔 꽤 좋은 위치에 있었다. '회사 이름+내 이름'을 인터넷에 치면 개발한 상품이 나오는 신문 기사를 볼 수 있을 만큼 회사 생활은 자부심이 넘쳤다. 하지만 그만큼 열정을 가지면 그게 다 내 일이 되었다. 기존의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점차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항상 올곧게 내 힘으로 살아왔기에 융통성 있게 타인과 어우러지며 일처리를 부탁하는 방법도 서툴렀고, 틈틈이 들려오는 사내 정치 속에서 버림받는 것은 영악하지 못했던 착한 사람이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평생의 내 일상이 될 터였다. 주말에도 연락은 계속 왔고, 쉴 틈이 없었다. 내 삶이 내 통제를 벗어났고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미래엔 안 그럴까? 팀장님을 보니 여전히 같아 보였다. 벗어나야겠어. 빠르게 판단을 해야 했다.
삶의 기로에서 처음으로 세상이 원하는 가치관과 내가 원하는 가치관이 달라졌다. 내게 맞는 행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지긋지긋한 취업 준비를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누구나 아는 회사라는 프라이드와 복지, 쌓여가는 연차 등등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마침, 신입사원 OT 시절에 지점에서 재고 관리 및 서비스 업무를 경험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혹시 그곳에선 내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칼퇴 팀장님도 딱딱한 사무실 속 본부장님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이 맘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지점장으로 가고 싶어 했고, 나보다 먼저 내려가는 선택을 한 동기가 웃음을 찾아 자유로이 살고 있었기에 확신이 섰다.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지점행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본사에서 100개가 넘는 지점들을 관리하던 나다. 내려가면 그중 하나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내 역량을 발휘하기엔 충분히 남고도 쉬울 것이다. 일이 눈에 보일 거라는 왠지 모를 근자감이 생겼다. 물론 '본사에서 내려간다'라는 문구처럼 남들 눈에는 본사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자'라고 낙인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내가 포기할 것이 눈에 보였다.
은근한 자랑 속에 으스대며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던 사회적 명예, 그리고 쌓여가는 있어 보이는 경력.
내 일상을 지킬 수 있다면, 기꺼이 내려놓겠다.
임원, 아니 팀장까지의 자리도, 돈 천만 원씩 올라가는 승진도 욕심이 나지 않았다.
인생에 한 번뿐인 내 삶의 순간들, 웃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의 가치는 돈 천만 원 이상이었다.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가까스로 보내는 저녁 시간과 쏜살같이 지나가는 주말만이 내가 하루하루를 버티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 지점 가겠습니다. 보내주십시오." '(묵묵부답)'
"저 지점 가고 싶습니다. 업무도 맞지 않고 지점에서 더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메일에 지점으로 가야 하는 이유(야근 이야기 X)를 조목조목 쓰며) 지점 제발 보내주십시오." "(인사팀) 정말 가실 거예요? 다른 팀으로 보내드릴까요? 심사숙고한 것이 맞나요?"
다른 팀도 생각해 보았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사무실 안에서 눈치 보며 살아가는 답답한 분위기는 여전할 것이다. 나는 심혈을 다해 지점의 문을 두드렸다.
내가 삼국지의 제갈량도 아닌데 삼고초려 끝에 드디어 갈 수 있었다. (팀장님과 같이 내려갔다 ㅋㅋ)
드디어 하루종일 컴퓨터에 앉아 어깨를 툭툭 풀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
하루에 만 오천 걸음씩을 걸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현장 관리직'으로 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