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에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소개팅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30대 중반의 소개팅은 이미 어느 정도 조건이 갖춰진 상태를 보기 때문에 소개해주는 입장에서도 꽤 매칭이 쉽지 않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간간이 들어오는 소개팅은 반가우면서도 겁이 난다.
세상의 때가 묻어 어느 정도 알 거 다 알게 된 상태로 만나는 30대의 소개팅. 20대의 확 빠져드는 설렘이 내 인생에 다시 생길 수 있을까 그립다. 전 남자친구와 하나씩 다져왔던 그 오랜 추억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람과 다시 새롭게 하나씩 쌓아갈 생각을 하면, 그 방대한 양을 어떻게 다 하지.. 그걸 이겨낼 만큼의 매력적인 누군가가 또 있을까 싶어 자신이 없다.
열심히 하루하루 채워온 나도 사회적으로 원하는 조건들은 갖추려고 노력을 열심히 했었다. 직장, 학벌, 취미, 외모, 몸매 등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있다. 집안환경, 가치관, 종교 등등 살면서 성격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름'의 조건들이 있다. 그리고 운명, 낭만이라고 하는 로맨스 한 숟갈이 들어가야 완성되겠지.
'어디서 조건만으로는 꿀리지 않아!'라고 생각하지만 자신 없는 게 있다면 나도 모르게 먹어버린 나이랄까.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그 한 가지 조건은 남자들에게 큰 조건으로 다가오는 것을 안다. 100세 시대에 사회적으로는 아직 창창한 나이지만, 적어도 소개팅 시장에서는 그리 환영받지는 못하는 나이일 거다. (그리고 우습게도 나도 30대 후반의 남자들이 어렵다. 자기 객관화가 덜 되었나 보다 ㅋㅋ) 과거의 당당했던 내가 언제 이렇게 초라해졌을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 한댔는데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걸까 싶어 속상하다.
여러 상념들이 가득한 가운데, '띵동' 어느 날 카카오톡이 도착한다.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000입니다." 그리고 몇 번 오가는 일상적인 대화의 패턴. "언제 시간 되세요?", "어디서 보는 게 편하세요?".. 이제부터 서로의 탐색전 시작이다!
상대가 카톡을 자주 하면 미리 더 많은 정보를 미리 알 수 있고, 띄엄띄엄 보내면 나도 띄엄띄엄 보내곤 한다. 카톡을 잘 안 하시는 분 같다. 음, 카톡쟁이인 나와 잘 맞을까? 하긴 나도 예전엔 카톡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할 말도 없고 귀찮을 때도 있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인데, 상대와 내가 잘 맞을지 보는 것도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지하철 역 출구에서 만난다. "안녕하세요." 처음 본 사람과의 어색한 인사. 첫인상으로 많은 것이 결정된다. 그리고 전혀 긴장 없이 처음 본 사람에게 질문을 하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내 특기! 많은 여행으로 다져진 친화력과 사람에게 호기심 많은 내 성향이 만들어낸 모습일 거다.
"어디 갈까요?" 나한테 선택권을 주는 듯한 느낌. 장소 선정이 명확하지 않다. 'MBTI의 P일 것 같아!' 내 맘대로 규정지어 보지만, 나중에 보면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간다. 소개팅의 국룰은 피자와 파스타 아닐까. 평상시 그런 장소를 잘 가지 않는 남자들에게도 가끔씩 맛보는 양식은 꽤 괜찮은 선택지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직장과 취미로 이루어진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현재를 알아가다 보면 그가 노력해 왔던 과거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미래까지 쭉 펼쳐진다. 소개팅은 결국 한 사람을 알아가는 장소라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의 역사가 내게 펼쳐지는 것이다.
"요새는 무슨 관심사가 있으세요?", "음, 저는 호기심이 많아서 1년마다 새로운 것에 관심 가지는 편인데요. 이번 연도에는 기회가 되어서 사주를 공부해 봤어요. 사주 공부한다고 하면 어떻게 느끼실지 조심스러운데 꽤 재밌어요.", "어 진짜요? 제 사주도 궁금한데요."
"아, 괜찮으시면 제가 봐드릴까요?" 두근두근, 사주를 공부하니 좋은 점은 사주로 짧은 시간 안에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MBTI의 확장판이랄까. 성격만 알 수 있는 MBTI 성격 테스트와 달리 사주는 나와의 궁합, 미래까지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 이러한 면은 양날의 검이라, 구조가 나쁜 사주이거나 나와의 궁합이 안 좋다면 호감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거다.
"생년월시만 알면 돼요." 어라, 나와 부딪힘 없는 나쁘지 않은 궁합이다. 사주도 깔끔해서 무난하게 살 것 같다. 짧은 시간 안에 대략적 파악이 끝났다. "초보라 정확하진 않지만, 보이는 대로 느낌만 볼게요. 우선 글자들이 크고 시원해서 활달하실 것 같은데 발휘할 환경이 좀 작았네요. 요맘때는 인성운이 들어와서 공부 확 하고, 그다음 년부터는 공부에 신경 잘 안 쓰셨을 거 같은데요 ㅋㅋ"
"오, 엄청난데요. 거의 80%는 비슷한 거 같아요. 신기한데요!" 처음 본 사람의 인생을 사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나도 아직까지 놀라운 부분이긴 하다. "00님은 대운이 X세에 크게 바뀌니 준비를 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내친김에 미래도 조금 알려줄까. 그러자 상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의 도전을 그 시기에 끼워 맞추며 내게 공유해 준다.
이제 난 사주로 나와 맞는 궁합을 안다. 사주로 맞는 궁합은 (정말 여러 방법으로 볼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내게 없는 기운을 주면서 가는 방향이 비슷한 거다. 식상과 목이 있어서 나와 다퉜을 때 먼저 말 걸어주는 남자. 행동력이 좋은 내게 톡톡 아이디어를 주며 이끄는 남자. 마음이 넉넉한 남자. 써놓고 나니 누구든 좋아할 장점이네. (ㅋㅋ) 하지만 사주는 마음이 가는 것과는 별개인 것 같다. 사실 처음 본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게 더 이상할 거다.
그렇게 상대와 재미난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처음 본 사람에게 무슨 욕심이 있으랴, 30년간 살며 인간관계에 대해 깨달은 게 있다. 인연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특히나 사람에게 온 맘 다해 노력했지만 허무하게 사그라져버린 내 과거는 나를 더 옥죄어온다. 더 이상 상처받기 싫은 자기 방어일 수도,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된 허무함일 수도 있다. 그래서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게 되었다.
아아- 나는 사람을 사귈 때, '사주'라는 '조건'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가뜩이나 (월지가 편재라) 조건 따지는 나인데 더 누군가를 만나기 쉽지 않을 듯한 두려움이 생긴다. 이래서 어른들이 말하는 "결혼은 멋모를 때 해야 돼."가 와닿는 요즈음이다. (요즘은 이혼도 너무 많아서 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멋모르고 해맑게 웃던, 함께 있을 때 그저 행복했던 순간들이 그리워질 때가 많다. 노력 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던 패기가 그립다.
우습게도, '이성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나면 일주일은 싱숭한 마음에 앓아눕는다. 복잡한 마음을 잘 다스리고 깊게 패어버린 생채기에 끊임없이 연고를 바르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일 거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거라며- 순 다 개뻥이다.ㅋ) 어떻게 살아야 더 웃을 수 있을까. 내가 만족하는 삶은 무엇일까. 고민에 잠 못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