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nx Jul 12. 2022

수비 시프트와 2번 타자 전성시대

소소한 야구 이야기

메이저리그의 수비 시프트는 1940년대 클리브랜드 인디언스의 루 보르도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마지막 4할 타자인 보스턴 레드삭스 테드 윌리엄스의 당겨 치는 타격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왼손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의 타구가 주로 가는 방향인 1루와 2루 베이스 사이에 내야수 세 명을 세워두고 2루와 3루 베이스 사이에는 한 명의 야수를 두는 방법이다.

이러한 수비 시프트는 LA 에인절스의 마크 소시아 감독에 의해 2000년대 초반에 완성되어 메이저리그에서 선호하는 수비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LA 다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마크 소시아는 포수로 이름을 날렸는데, 2002년에는 감독으로 LA 에인절스를 창단 41만에 우승시키는 위업을 이룬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메이저리그는 수비 시프트를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수비 이동시 시간 지연 등의 문제가 거론됐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하향 곡선을 긋는 이유 중 하나가 긴 경기 시간인데, 시간을 정해 놓고 치러지는 축구나 농구에 비해 의도적 시간 지연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그러한 작전 아닌 작전으로 인해 경기 흐름을 망치거나 경기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면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도 종종 수비 시프트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수비 행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야수 사이를 뚫고 안타가 나오는 순간엔 내가 선수인 마냥 나름 희열에 빠지기도 한다. 뛰어난 타력을 갖춘 왼손 타자가 텅 빈 2, 3루간을 향해 번트를 대기만 해도 1루에 살아 나갈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야구라는 스포츠의 암묵적 합의 같은 신사협정이라고도 이야기한다. 또 다른 이는 번트를 대고 살아나가 봐야 1루 출루뿐이고 정상적인 타격으로 장타를 날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한다. 어차피 야구는 확률 싸움이니까 그 누구의 말에도 정답은 없다


과거의 야구에서 2번 타자는 1번 타자보다는 타격 지표가 낮고 주루가 느린 선수의 몫이었다. 1번 타자로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9번 타자로 배치하기에는 아깝고 1번 타자로 세우기에는 뭔가 부족한 선수들이 주로 맡는 타순이었다. 그래서 혹자들은 (좋게 말해서) 2번 타자를 가리켜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난 타자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 야구에 와서는 그 판도가 달라졌다. 한 팀에서 가장 정확한 타자를 3번에 배치하고 장타를 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를 4번에 놓지만, 그에 못지않게 타격의 정확도나 장타가 가능한 타자를 2번 타순에 배치하게 된 것이다.

이 역시 수비 시프트와 같이 우리나라 프로야구보다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먼저 시도된 것 같은데 누가 시초인지는 알 수가 없다. 과거 10여 년 전 고등학교 동문야구단에서 야구를 하던 시절, 우리 팀의 감독이었던 선배가 대학교 때까지 야구 선수였던 후배를 2번 타순에 놓은걸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후배는 늘 4번 타자를 도맡았기 때문이었다. 십수 년 동안 공을 던지고 받고 치던 애를 2번에 배치하다니 코치로서 감독을 보좌하던 내게는 다소 충격이었다. 선배는 내 어깨 위에 팔꿈치를 올리더니, 나의 궁금증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말했다.

"쟤는 뭔가 좀 애매해. 우리 팀에서 가장 잘 치기는 하는데 4번 타자로 놓기엔 뭔가 아쉽단 말이야. 한 번이라도 더 치게 하고 싶은데, 1번 타자로 놓기도 그렇고."

그렇게 해서 그 후배는 2번 타자에 서게 된 것이었다.

감독이었던 그 선배는 야구 실력은 별로였는데, 지도자로서의 감은 탁월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 프로야구에도 뛰어난 2번 타자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타고투저 현상을 배척하기 위해 공인구의 반발력을 없애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 내고 있는데, 이런 현대 야구에서 2번 타자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1번 타자의 뒤를 받치고 클린업 트리오인 3, 4, 5번에게 연결시켜주고, 때로는 장타를 날려 상태팀의 기선을 제압하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앞으로 야구의 흐름이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2번 타자의 중요성은 지속될 전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퍼펙트게임과 알만도 갈라라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