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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Mar 23. 2023

'신성한, 이혼'

꾸밈없이 진심으로

나의 20대를 바쳐 술을 마시던 술집 '일미호프' 옆에는 '슈만과 클라라'라는 카페가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커피를 파는 가게인데,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동네 구멍가게 옆 별채에서조차 두부에 막걸리를 흠모하던 내가 돈을 주고 커피를 마실 일은 없기에 지나다니며 보기만 했지 카페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그때는 그저 '슈만과 클라라'라는 상호를 보며 저 둘은 사르트르와 보봐르처럼 사랑은 하되 외도도 인정하는 계약 결혼 커플은 아니겠지는 생각이었다. '신성한, 이혼'의 신성한에 의하면 슈만과 클라라는 서로가 엄청나게 사랑하는 커플이었고 슈만이 그의 뮤즈인 클라라를 위해 '꾸밈없이 진심으로'라는 3개의 로망스를 바칠 정도로 열렬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혼전문 변호사 신성한의 사무실에는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라는 표어가 책상 위 시계에 붙어있다. 15살에 독일로 피아노 유학을 떠난 신성한은 알지 못하는 이유로 피아니스트 생활을 접고 남들은 평균 4년 걸린다는 사법고시를 2년 만에 패스하는 데 성공한다.

그의 부모는 돌아가셨고,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마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남은 가족이라고는 여동생이 남긴 조카 하나. 그마저도 조카의 새엄마가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를 포함한 친구 얼간이 삼총사가 있으며, 자주 애용하는 사무실 근처 단골 라면집이 있다. 또한, 재벌은 아니지만 그래도 강남 바닥에 건물을 소유한 건물주다. 여기에 유명 DJ 출신 이혼녀가 그의 사무실에 합류한다.


유능한 아니 신성한 변호사는 이혼 전문이기에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는 이혼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아는 변호사에 의하면 이혼은 가진 사람일수록 그 싸움이 진흙탕 싸움이 된다고 한다. 잃을 것 없는 자가 무섭듯이 가진 게 많을수록 소유한 것은 계속 소유해야 하고 가진 건 뺏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결혼과 이혼에 대해 생각해 본다. 비혼주의자였던 나도 절절한 사랑은 한번 해보고 싶었고, 그 사랑의 연속선상으로 아름다운 결혼생활도 하고 싶었다. 이혼? 그건 그저 문제적 인간들만의 비겁한 도피처라고 생각했었다. 혹자는 위정자들의 손쉬운 통치방법 중 하나가 일부일처제 결혼이라고 역설하지만, 어느 누구도 결혼에 대해 쉬운 판결을 내리기란 무리라고 본다.

이젠 이혼이라는 단어도 금기시되거나 선뜻 놀라는 축에 끼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은 90이 넘은 나이에 60대 여성과 여섯 번째 결혼을 한다니 결혼과 이혼에 대한 그의 고견을 들어보고 싶을 정도다.


클라라는 슈만보다 음악적으로 더 뛰어난 소질을 가졌지만, 슈만을 위해 조력자 역할에 만족했다. 나중에 슈만이 후학으로 가르친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사랑을 고백지만, 클라라는 정중히 거절한다. 슈만이 정신병에 걸린 후 사망하고 클라라는 슈만의 사후 정리에 매진한다. 그녀를 존중한 브람스도 독신으로 살다가 클라라 사후 몇 년 뒤 세상을 떠나고 만다. 신성한 이혼이건 유능한 이혼이건, 그 전제는 사랑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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