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의 세계로 오라

by Jonx

어릴 적, 휴일 아침에 아버지와 목욕탕을 다녀오며 들렀던 곳은 고깃집이었다. 가끔씩 집안 행사나 외식을 할 때면 소갈비를 먹던 곳인데, 목욕을 다녀온 후에 아버지는 나와 함께 꼭 국밥을 드셨다. 나는 '소갈비 먹고 싶은데'라는 생각이었지만, 돈도 내지 않는 주제에 감히 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국밥을 먹으며 '어른들은 이런 걸 왜 먹지?' 하는 생각이었다. 종류도 무슨 무슨 국밥, 혹은 따로국밥. 국밥은 국밥인데 따로라. 지금에야 국 따로 밥 따로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때는 형언할 수 없는 의문에 휩싸인 채, 목욕 후의 나른함을 국밥으로 달래야 했다. 오늘 점심은 짜장면일 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어머니까지 여의고 나서, 꼬맹이던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함께 가게 된 국밥집. 그것도 이야기는 무수히 들어봤지만, 처음 먹어보는 돼지국밥. 그것은 신세계였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소고기를 즐겨드셨고, 때문에 돼지고기는 제육볶음이나 돼지김치찌개에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처음 맛본 돼지국밥은 스무 살이 되던 해, 선배들을 따라가 처음 먹었던 삼겹살의 충격에 버금가는 맛이었다. 어떤 소설가는 삼겹살을 처음 먹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맛있는걸 여태까지 지들끼리 먹었단 말인가!"


하여튼, 처음 먹어본 돼지국밥의 맛은 지금까지 숱하게 먹어왔던 설렁탕, 갈비탕, 도가니탕, 곰탕, 순댓국, 뼈해장국 등 모든 국밥 중의 단연 으뜸이었다. 물론, 각종 국밥이나 탕도 나름대로 맛있는 곳이 있긴 하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돼지국밥을 먹는 곳은 1987년에 장사를 시작한 곳으로 동네에서도 유명한 집이었다. 어머니가 하던 가게를 아들이 물려받아하는 곳인데, 주인장의 아내가 아파 지금은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영업을 하고 월요일은 정기 휴무다. 때문에 타지로 출근하거나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주말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주말이면 이른 아침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집의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수저통 뚜껑에 친절하게 쓰여있다. 새우젓을 두 숟가락 넣고 소금을 조금 넣은 후, 다대기를 넣고 부추를 넣은 후 먹기만 하면 된다. 전에는 수육백반이라고 해서 수육과 돼지국밥 국물이 나오는 메뉴를 즐겨먹곤 했는데, 요즘은 무조건 돼지국밥을 먹는다. 나는 처음 가는 식당의 경우, 메뉴 중 가장 위에 있는 메뉴를 시키곤 하는데, 그 이유는 주인이 가장 자신 있어하는 메뉴가 메뉴판의 가장 윗자리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다. 이 집의 메뉴판 가장 위에 있는 것이 바로 돼지국밥이다.


아이들과 목욕을 하고 나서 개운한 상태로 돼지국밥에 소주를 한 잔 들이켜면 그야말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임금님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순간이기도 하다. 큰 아이가 첫 휴가를 나오면 꼭 시간을 내서 가봐야겠다.

새로운 맛의 세계를 영접하게 해 준 돈족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