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의 세계로 오라

by Jonx

90년대 초반, 정기적으로 나가는 모임 중 '우주회'라는 모임이 있었다. 말 그대로 비가 오면 만나서 술을 마시는, 다소 영양가 없고 비전도 없는 사조직이었다. 처음에는 월요일에 만나 술을 마시는 모임이었는데, 월요일에 만나고 나서도 비가 오면 또 만나서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지자 '월주회'에서 '우주회'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모임의 주축은 나와 같은 과 1년 선배였는데, 가끔은 다른 주당도 합석을 하곤 했고, 주당이 아니더라도 오는 사람은 막지 말고 가는 사람은 붙잡자는 주의였기에 사람을 가리지는 않았다.

모임 초반에는 종로, 대학로, 강남역, 방배동 등 안주와는 관계없이 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술을 마시곤 했는데, 선배의 집이 사당동이라 사당동 근처의 술집을 주로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가 경문고 옆에 있는 돼지 곱창집을 가게 됐는데, 이곳이 '우주회'의 아지트가 되고 말았다.

저렴한 가격, 크게 시끄럽지 않은 분위기, 왕십리에서나 맛볼 수 있던 왕십리식 돼지 곱창, 너무 깔끔하지 않고 대충 지저분한 인테리어, 그리고 친절한 여자 사장님까지. 그야말로 모자란 것 빼고는 갖출 건 모두 갖춘 최고의 술집이었다.

'우주회' 멤버들이 취업하고 결혼하고 바쁘게 사느라 한동안 뜸하다가 오랜만에 모이기로 하고, 이름이 그냥 '곱창집'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 그 집을 갔더니 곱창집은 없어져 있었다. 그 지역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한 마디 했다.

"아이, 사장님은 어디로 가면 간다고 연락을 했어야지..."

휴대폰도 SNS도 없던 시절, 그 어느 누구도 사장님과 곱창집의 행방을 아는 이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아마도 대한민국 어디에선가 곱창집을 하고 계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추억하고는 한다.

경문고 옆 곱창집을 기억하며 가끔 왕십리 곱창을 찾고는 했는데, 그곳도 개발 때문인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그 후 가본 곱창집 중 곱창이라고 간판이 붙은 곳은 대부분이 소곱창집이었으며 설령 돼지곱창을 팔더라도 내가 원하던 맛의 곱창은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맛을 내던 곱창집이 7~8년 전쯤 인덕원에 생겼었는데 경영난인지 얼마 전에 폐업을 하고 말았다.

곱창은 사람마다 취향이 각양각색이어서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음식이며, 먹을게 수두룩한데 왜 곱창까지 먹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 가끔 선배들과 만나면 가는 곱창집이 있는데, 그곳은 그저 안주 없이 맨 소주를 먹기는 뭐해서 가는 곳이지 그렇게 맛이 있는 집은 아니다. 그러다가 수년 전 아는 형님과 갔었던 곱창집을 몇 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그 당시에는 몰랐던 이 집의 곱창 맛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곱창집에서 고명같이 얹어주는 그 흔한 부추나 양파, 감자 없이 주문한 그대로의 곱창과 대창, 양만 주는 곳. 기본 안주로 나오는 싱싱한 간과 천엽. 간이 싱싱해 냉큼 한 그릇 비우고 더 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더 주는 서비스. 멀리서 여기까지 곱창 먹으러 왔다며 현금을 건네면 당당하게 술값을 깎아주는 호연지기. 도축을 하지 않는 주말과 공휴일이면 쉬는 객기. 오후 5시 30분에 오픈해서 대략 8시 30분에 문을 닫는데, 그 전이라도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영업을 종료하는 주인장 마음대로의 영업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술과 안주가 살짝 부족하다 싶을 때 눌러 만들어주는 볶음밥까지.

삼각지 로터리에 있는, 여럿이 가면 견적 좀 나오는 곱창 대창집도 맛있었지만, 문득 소곱창이 먹고 싶어 진다면, 더 맛있는 집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집을 찾을 것 같다.

그나저나, 경문고 옆에 있던 곱창집 사장님의 소식은 여전히 궁금하다. 속썩인다고 가끔 우리에게 하소연하며 형들이니까 우리 애 좀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가르쳐달라던 마음 좋던 사장님. 우리도 사장님 아들 같은 시기를 겪었으니 아드님도 잘 클 거라고 안심시켜 드리면, 고맙다고 서비스로 곱창을 더 얹어주시던 사장님.

지금도 비가 오면, 사당동에서 먹던 달콤 매콤하며 쫄깃하고 담백하던 곱창 맛과 만나던 날의 날씨처럼 흐릿하던 인생의 앞날을 걱정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우주회' 멤버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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