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이의 콘텐트/미디어 생각 #1
이 시리즈는, 미디어/콘텐트 산업에 대한 대표이사의 생각을 칠십이초 사내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얼마 전부터 시작한 연재입니다. 내부에만 공유하려다, 혹시라도 콘텐트와 관련하여 사업을 시작할 생각을 하고 계시거나, 저처럼 업계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고 계실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외부에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노파심에 앞서 말씀드리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이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비 정기적으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앞으로 무수히 언급될 '미디어'라는 용어는 '콘텐트 + 플랫폼'을 통칭하는 뜻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콘텐트’는 주로 '엔터테인먼트성 영상 콘텐트'를 가리킵니다.
오늘은 첫번째로 "미디어 시장은 결국 광고 시장이다" 라는 주제로, 포문을 열어보려합니다.
전통적인 TV방송국의 역할은 영상프로그램의 제작과 유통을 모두 아울렀습니다. 다시 말해, TV방송국은 콘텐트 제작사이자 플랫폼이었습니다. TV방송국의 수익구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광고시간대 판매 수익 (프로그램 전/후 및 중간 광고)
(2) 콘텐트 자체 수익 - 협찬 유치, 프로그램 판매
(3) 기타
(이미지 출처 : "방송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방송 콘텐츠 유통구조 현황과 전망. 이선희. 2016")
그런데 콘텐트 자체 수익 중에서도 ‘프로그램 판매’ 항목의 경우, 결국 위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회사(또 다른 방송국)가, 자신들의 광고비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해줄 좋은 프로그램을 사 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한때 우리나라의 방송국들이 ‘섹스앤더시티’나 ‘그레이아나토미’ 같은 미국의 인기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사와서 방영했던 것은 이들을 편성함으로써 더 많은 광고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프로그램 판매’ 또한 광고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죠.
결론적으로 미디어 산업은, 광고가 전체 매출 규모의 최소 7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닙니다.
쉬운 예로 넷플릭스를 생각해봅시다. 넷플릭스의 기본 성질은 콘텐트를 유통하는 ‘플랫폼’입니다. 넷플릭스에 접속해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태그가 붙은 시리즈들이 있습니다. 시리즈마다 조금씩 상이하기는 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것은 흔히 ‘넷플릭스가 제작했고,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거나 넷플릭스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으로 통용됩니다. 유튜브 또한 ‘유튜브 오리지널’을 확충하겠다며 오리지널 콘텐트 제작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사실 기존의 TV콘텐트들은 모두 채널 오리지널이었습니다. 방송국에서 만들고, 방송국을 통해 유통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기에 굳이 "오리지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케이블 채널이 생겨나기 이전, 공중파 방송에서 만든 콘텐트는 그 방송사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제작한 콘텐트는 자신들이 소유한 채널에서 최초로 독점 방영되었고, 재방송 또한 본인들의 채널에서만 진행을 했습니다. 방송 시간에 맞춰 비디오 테이프로 녹화를 하지 않고서야, 시청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나마 케이블 채널들이 생겨난 이후에는 독점방영보다는 선공개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리지널 콘텐트’ 자체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다만 ‘디지털 플랫폼’이 오리지널 콘텐트 제작에 뛰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전과 달라졌을 뿐입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디지털 플랫폼의 역할은 TV방송국에서 제작한 상업 콘텐트들의 2차 유통 창구(ex. 다시보기 등), 혹은 UCC라고 불리우던 일반인들이 제작한 콘텐트를 쉽게 업로드할 수 있는 창구 정도의 기능을 하는데에 국한되었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온라인, 모바일”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면서, 디지털 플랫폼들은 TV방송국 위주의 미디어 시장을 재편해보고자 앞다투어 ‘오리지널 콘텐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오리지널 콘텐트’라는 말은, 콘텐트 수급의 역할만 해왔던 디지털 플랫폼들이 직접 콘텐트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우리 재방송만 하는 거 아니고 본방송도 만들어”를 어필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용어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플랫폼들은 왜 오리지널 콘텐트를 만들까요?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미디어 산업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수익은 광고영역의 판매에서 비롯됩니다. 광고를 할 수 있는 ‘시간대’을 판매하는 것이죠. 여기서 오리지널 콘텐트의 주된 역할은 그 콘텐트 앞, 뒤에 붙을 광고 시간대의 단가를 높이는 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트를 플랫폼이 직접 만들고 해당 플랫폼에서 가장 먼저 접할 수 있게 함으로써 플랫폼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만들어, 그 프로그램 전후에 붙는 광고 시간대에 대한 가치를 높인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기에 다른 시간대에 광고영역 상품까지 묶어 판매하면, 플랫폼 전체적으로 광고 단가를 높일 수 있습니다.
즉, 플랫폼을 ‘더 좋은 광고판’으로 만들 수 있는 수단으로서, 오리지널 콘텐트는 제작됩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결국 광고비를 제작비로 사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플랫폼 자신에게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광고 역할을 하는 것이 오리지널 콘텐트인 것입니다.
여기서 "넷플릭스는 광고판이 아니잖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듯합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들은 넷플릭스를 더 좋은 광고판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콘텐트는 아니긴 합니다. 왜냐하면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자체가 광고비로 수익을 충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지불하는 월 이용료를 통한 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으려는 목적’ 자체는 다른 광고 수익을 추구하는 플랫폼과 동일합니다. 다른 플랫폼들이 더 많은 시청자를 통해 더 많은 광고 수익 유치를 기대한다면, 넷플릭스는 더 많은 시청자를 통해 더 많은 시청료를 유치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즉, 플랫폼으로 더 많은 시청자를 유입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오리지널 콘텐트를 제작한다는 점은 넷플릭스를 포함한 모든 디지털 플랫폼들이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미디어 시장이 돌아가는 기본적인 구조와 원리에 입각하여 생각해보면, 미디어 시장을 채우고 있는 무수한 콘텐트들은 간단히 아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1) 플랫폼을 ‘좋은 광고판’으로 만드는 콘텐트 (ex. 프로그램 앞뒤 광고를 붙일 수 있는 콘텐트)
(2) 콘텐트 자체가 좋은 광고판인 콘텐트 (ex. PPL)
(3) 콘텐트 자체가 광고인 콘텐트 (광고 목적으로 제작된 콘텐트)
물론 광고 수익 이외에도, 시청자가 콘텐트를 시청하는 대가로서 직접 지불하는 비용도 미디어 시장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긴 합니다. 하지만 시청자가 직접적으로 지불하는 수익의 규모는 광고 수익에 비하면 아주 적고 미약합니다. 거의 무시해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미디어 시장에 있어 시청자는 직접 지불을 하는 주체이기 보다는, 더 많은 광고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게끔 하는 필요조건이라는 데에 존재의 의의가 더 큽니다.
미디어 산업의 영역이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되고, 디지털이 콘텐트 유통의 중심이 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한 것은 사실입니다. 기존에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의 영상 콘텐트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기존의 미디어 시장에서는 없었던 역할을 하게 되는 콘텐트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하기에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도 미디어 산업의 구조, 즉, 미디어 산업을 구성하고 있는 돈의 출처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즉, 미디어 시장은 이러나 저러나해도 결국 광고 시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인 겁니다.
"결국, 미디어 시장은 광고 시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