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지환 Dec 24. 2018

Digital Buskers

지환이의 콘텐트/미디어 생각 #5

앞선 글들에서 계속 살펴 보았듯이, 콘텐트는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콘텐트를 통해 모인 사람들이 곧바로 충분한 수익으로 치환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누차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콘텐트를 소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여전히 그 콘텐트의 가치를 대변하는 하나의 척도로 작용합니다.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무언가 다른 가치로도 치환이 가능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다른 가치’중 가장 의미있는 것은 다름 아닌 수익, 즉 돈으로의 치환일 것입니다. 

그럼 콘텐트로 인해 모인 사람들 모두가 콘텐트에게 수익을 안겨줄 ‘가치’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들 모두가 콘텐트를 보기 위해 모인 것은 맞지만, 콘텐트를 보고있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콘텐트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에겐 바로 그 ‘이유’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그들 중 누가 우리에게 수익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일까요? 어떤 이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가치를 줄 수 있을까요? 

엇. 저 앞에서 누가 버스킹을 하려 하네요. 잠시 즐겨볼까요? 


1. 버스킹을 시작한다 (feat. 구경꾼의 가치)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아티스트가 버스킹을 시작했네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실력이 나쁘지 않고,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기술도 좋아 보입니다.
버스킹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버스커는 신나게 몇 곡을 더 부르고 난 후, 본인의 공연을 마무리 합니다. 
공연을 즐기던 사람들도 각자 가던 길을 다시 가기 시작합니다. 

버스커는 공연을 하며 사람들의 일상에 잠시나마 즐거움을 주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런저런 이유로 이 공연을 잠시 혹은 오랫동안 즐겼습니다.

이 "버스킹 공연"은 분명 사람들에게 "일상속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제공했습니다.
몇몇 관객들은 공연을 관람한 대가로 약간의 현금을 지불하기도 했고요. 


2. 팬이 되었다. (feat. 구독자의 가치)

며칠이 지나고 길을 지나다보니, 얼마전 보았던 버스커가 또 버스킹을 하고 있네요.
지난번에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 버스킹을 감상합니다.

옆에 보니, 버스킹 일정과 장소를 안내하는 배너가 세워져 있습니다. 공연 일정 정보를 제공하고, 버스커의 연습 영상도 볼 수 있는 버스커의 SNS계정도 쓰여있고요. 
보아하니, 여기서만 버스킹을 하는 것은 아니네요. 아무튼 이 버스커의 버스킹은 나쁘지 않습니다. 또 보고 싶은 마음에, 버스커의 SNS 계정을 팔로우합니다. 

그 후에도 이 자리를 지나갈 때마다 한번씩 혹시 버스킹을 하고 있나 쳐다보게 되고, 버스킹이 예정되어 있는 날에는 기다려보기도 합니다. 버스킹을 계속 해서 그런지 점점 관객들도 늘어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몇몇 관객들은 약간의 현금을 대가로 지불하기도 하고요.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버스킹 할 때마다 옆에 기업들의 배너가 서 있네요. 기업들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나봅니다. 뭐 아티스트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3. 음반을 냈다고 한다. (feat. 작품 일부의 상품화)

어느날, 그 버스커가 음원 출시를 했다는 소식을 들려줍니다. 가만 보니, 버스킹 공연 현장 한 켠에서도 자신의 음반을 판매하고 있네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전 아직 이 버스커의 이름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잠깐씩 즐거움을 주고 있고, 그래서 고맙고 호감도 충만하지만, 굳이 내 돈을 내고 음원을 사서 듣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습니다.
전 버스킹 공연을 즐길 뿐이지, 사실 이들의 음악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꼭 이들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즐길 수 있는 버스킹 공연은 충분히 많고요.

저는 ‘버스킹 공연’을 좋아하는 것이지, ‘그들의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4. 버스킹과 콘텐트의 상관관계

버스킹 이야기는 이쯤하고, 콘텐트로 돌아가 봅시다. 

사람들은 온라인 혹은 SNS를 떠돌다 각종 알고리즘 및 우연에 의해 콘텐트를 발견하고, 각자의 이유로 잠시 혹은 오랫동안 그 콘텐트를 봅니다. 온라인이나 SNS에서 흔히 접하는 콘텐트들은 대부분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습니다. 가끔씩 시청자의 희망에 따라,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싶으면 돈을 지불 할 수 있는 영상들도 있습니다만, 디폴트는 ‘무료’입니다. 
여기저기 여러군데 콘텐트를 유통하는 제작사(혹은 제작자)도 있고, 고정된 플랫폼에만 콘텐트를 오픈하는 제작사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모이게 하는 콘텐트(=조회수가 높은 콘텐트)에는 기업들이 광고를 붙입니다. 간혹 정부의 지원 사업으로 생겨나는 콘텐트들도 있고요. 

간혹 팬이 많은 콘텐트 제작사들이 있는데, 그들의 콘텐트는 다른 콘텐트에 비해 조회수가 높습니다. 이런 이들에게는 더 많은 기업의 광고가 붙겠죠. 

마치 버스킹 공연과 비슷하지 않나요? 

유튜브 페이스북 및 각종 온라인에 유통되고 있는 콘텐트들은 결국 ‘온라인 상의 버스킹 공연’인 셈입니다. 


5. 관객의 가치

콘텐트가 버스킹 공연이라면, 콘텐트의 시청자는 버스킹 공연의 관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버스커가 버스킹을 하는 이유입니다.

버스커 중에는, 취미로 혹은 버스킹 자체를 업으로 삼아 버스킹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버스킹을 통해 자신을 알려 버스킹이 아닌 다른 일들을 통해 더 큰 수익을 올리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버스킹이 좋아서, 버스킹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저 같은, 그들의 팬은 아니지만 버스킹 공연을 좋아하고, 그들이 버스킹 공연을 한다면 기꺼이 함께 즐길 의향이 있는, 그런 관객이 많으면 좋습니다. 그 중 몇 몇은 약간의 현금도 지불할 것이고, 일단 관객이 늘어나는 것 만으로 기업의 후원을 받아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버스커는 그렇게 번 돈으로 버스킹 공연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버스커가 버스킹을 하는 목적이 버스킹 자체가 아니라, 버스킹을 활용해 큰 수익을 올리고 싶은 거라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집니다. 버스킹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에는 너무 명확하게 한계가 있으니까요. 

큰 돈을 벌고 싶은 버스커에게 필요한 이들은, 저처럼 버스커의 '버스킹'을 좋아하는 ‘행인’이 아니라 버스커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일 것이며, 더 나아가 버스커 자체를 좋아해주는 팬일 겁니다.

이러한 분류없이 "내 버스킹을 즐기는 팬이 많아. 그러니까 나는 이제 음원을 낼 수 있고 티비에 출연할 수 있으며 큰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며 큰 돈을 벌 수 있어" 라고 생각한다면, 그 희망대로 진행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을 겁니다. 나의 버스킹을 감상하는 사람과, 나의 버스킹을 좋아하는 팬과, 내가 만든 음악을 좋아하는 팬과,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팬은, 약간의 교집합은 있을 지언정, 본질은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도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BTS의 음악이 제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나오면 즐겨듣지만, 일부러 BTS의 음악을 찾아서 듣지도 않고, BTS의 공연을 보러 갈 생각도 없고, 그들의 이름과 사진이 달린 상품들을 살 생각도 없고, 그들의 일정이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BTS의 음악을 즐기는 사람 중 한명이지만, 관계자분들이 그닥 고려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죠.

‘사람을 모으는’ 콘텐트를 만드는 우리가 앞으로 더욱 고민해나가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무작정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 어떤 사람들을 모으는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6. 사족 (feat. 기존 방송 시스템도 버스킹에 비유할 수 있을까?)

사족을 덧붙이자면, 기존의 티비 방송 시스템 하의 콘텐트들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들도 버스킹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기존 방송 시스템 하에서도 사람들이 공짜로 콘텐트들을 볼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시간대가 정해져있었고, 장소가 정해져있었고, 장소가 많지 않았습니다. 기존 방송 시스템만 존재했을 당시, 주말드라마는 반드시 주말 8시에, TV가 있는 거실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방송국만이 그러한 콘텐트들을 만들 수 있었고, 그만큼 시청자들의 선택의 폭은 좁았습니다. 그냥 우연히 발견하는 수준이 아닌, 그 시간대에 무엇을 시청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소파에 앉아, 리모콘을 틀고,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는 등 일련의 선택들을 모두 완료하고나서야 콘텐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콘텐트의 다양성은 떨어졌지만, 희소성은 있었고, 한번 모인 시청자들의 충성도는 높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버스킹에 빗대 설명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것을 우리는 함께 보고있지요. 미디어 시장이 디지털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미디어 권력이 분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쉽게도 이제, 기존 방송 시스템 하에서 만들어지는 콘텐트들도, 아직은 유명한 장소(=인지도 높은 방송국, 레거시 미디어)에서 시작한다는 어드밴티지는 있을 지언정, 점점 수많은 버스킹 중 하나들로 인식되어가고 있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는, 미디어/콘텐트 산업에 대한 대표이사의 생각을 칠십이초 사내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얼마 전부터 시작한 연재입니다. 내부에만 공유하려다, 혹시라도 콘텐트와 관련하여 사업을 시작할 생각을 하고 계시거나, 저처럼 업계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고 계실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외부에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노파심에 앞서 말씀드리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이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비 정기적으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앞으로 무수히 언급될 '미디어'라는 용어는 '콘텐트 + 플랫폼'을 통칭하는 뜻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콘텐트’는 주로 '엔터테인먼트성 영상 콘텐트'를 가리킵니다.

작가의 이전글 다 같은 미디어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