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이의 콘텐트/미디어 생각 #4
오늘은 지난 주에 예고해 드렸던대로, 레드불이나 아마존, SKT 같은 非미디어 회사들이 미디어 사업에 뛰어들며 콘텐트를 만들고 있는 새로운 시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非미디어 회사들이 콘텐트를 만들기 시작한 목적과, 넷플릭스처럼 태생적으로 미디어 산업 구조 내에 편입돼 있는 회사들이 콘텐트를 만드는 목적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그 시작으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주최사는 현대카드입니다. 즉, 영상으로 치면 제작사가 현대카드인 셈입니다.
하지만 공연에서는 주최사와 주관사를 구분합니다. 보통 주최사는 돈을 내고 수익을 먹는 회사를 의미하고, 주관사는 예산으로 실제로 공연을 만들고 운영하는 회사를 말합니다.
그런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경우 현대카드가 모든 제작비를 부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메인스폰서에 가깝습니다. 현대카드는 공연 제작비의 일부를 부담하고, 주관사가 일부 비용을 감수하며 티켓을 팔아 수익을 남겨야 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익구조는 아닙니다. 수익구조는 그때그때 바뀔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대카드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를 제작함으로써 콘서트를 홍보하며 자연스럽게 현대카드를 광고하게 되고, 더 나아가, 콘서트의 주인공인 아티스트를 광고 개런티를 한푼도 주지 않고 광고 모델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아티스트의 입장에서는 개런티를 받고 본인의 공연을 하는 것이고, 공연의 내용 또한 광고성 콘텐트가 아닌 그저 그 아티스트의 콘서트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주최(한 척 하는) 현대카드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라는 이름을 붙인 그 공연을 통해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비용보다 훨씬 큰 광고 효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는 지금까지 샘스미스, 콜드플레이, 폴 매카트니, 스티비원더, 레이디 가가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키며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내한공연을 원하는 아티스트가 있는 사람들은 이제 ‘현대카드 뭐하냐’는 소리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이미 형성돼 있고, 거기에 현대카드를 사용하면 예매 시에 20%라는 적지 않은 할인율을 적용받을 수 있으니 카드 회원 유치하기에도 좋습니다.
따라서, 현대카드 입장에서는 수익이 남지 않는 공연이더라도, 아니 도리어 광고비를 쓰면서도 이 공연을 주최(하는 척)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아마존(amazon.com)은 세계적인 커머스 회사입니다. 아마존은 실생활에 필요한, 아니 필요 없는 것까지도, 정말 세상에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생활 안에 아마존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존은 자신들의 존재가 사람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는 수단으로, 콘텐트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만들고, 이 플랫폼에 올라오는 콘텐트들을 사람들이 즐기게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아마존 스튜디오를 만들어 아마존 오리지널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존 오리지널을 만들게 됨으로써 아마존은 두 가지 효과를 얻게 됩니다. 앞의 글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아마존 오리지널을 보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아마존에 들어오도록 할 수 있고, 또 위의 현대카드 사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출연 배우들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아마존의 광고로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명확하게 이야기 합니다. 아마존이 아마존 오리지널을 만드는 이유는, 신발을 더 팔기 위함이라고(정확하게는, 아마존 오리지널의 퀄리티에 집착하는 이유를 묻자, "스토리가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영상을 보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신발을 더 많이 팔지 못할 것이다" 라고 했었습니다). 다시 말해, 아마존은 아마존 오리지널 콘텐트 자체로 수익을 올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콘텐트를 통해 사람들이 아마존 세상에 더 들어오길 원하고, 그 속에 더 머물기를 원하고, 그래서 결국 사람들이 아마존 세상에서 더 많은 신발이나 옷을 사기를 원하는 것이죠. 마침 아마존의 이러한 전략을 잘 설명해주는 기사가 최근 게재되어 함께 공유합니다. (참고기사: 아마존 "판매 도움된다면 골든글로브급 콘텐츠도 만든다")
하지만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시청자들에게는 이런 아마존의 ‘상업적인’ 의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아마존 오리지널 작품들은 그저 재미있어서 보는 콘텐트일 뿐이니까요.
잘 아시다시피, 레드불은 에너지드링크 회사입니다.
그런데 레드불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에너지 드링크 회사보다는 미디어 회사에 가깝게 느껴지도록 레이아웃이 짜여져 있습니다. 레드불 상품의 이미지나 영상은 찾아보기 힘들고, 온갖 ‘익스트림 스포츠’에 관련된 영상과 이미지, 텍스트가 가득합니다.
레드불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익스트림 스포츠와 관련된 영상 콘텐트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어느새 "익스트림 스포츠" 업계에서 독보적인 미디어 회사가 되었습니다.
레드불 미디어의 경우 미디어 사업 만으로도 수익을 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레드불이 처음부터 수익을 내기 위해 콘텐트, 미디어 사업을 시작했을까요? 아닙니다.
레드불은 1990년대 유럽 내 에너지 음료 시장의 급성장과 맞물려 성장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클럽에서 보드카 폭탄주를 만들어 먹는 것이 유행을 타면서 매출이 비약적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페인과 타우린이 다량 함유된 음료에 대한 각국의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레드불은 난관에 봉착합니다. (TMI. 레드불은 2008년까지 프랑스에서는 판매가 금지 됐었고, 여전히 인도에서는 판매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레드불에게는 ‘보드카 폭탄주’와 카페인, 타우린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주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레드불은 아주 밝고, 건강하고, 짜릿하기까지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레드불과 엮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실제로 레드불은 절벽 다이빙, 비행기 레이스, 스카이 다이빙 등 익스트림 스포츠의 대회를 개최하고 선수들을 후원하는 데에 어마어마한 마케팅 예산을 쏟았습니다.
레드불은 수많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후원 하면서, 그것을 콘텐트로 만들어 냈습니다. 레드불의 로고가 노출된 수많은 익스트림 스포츠 콘텐트들을 확보하고, ‘익스트림 스포츠 전문 미디어’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여태까지 익스트림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전담하는 미디어가 없다보니, 미디어 자체가 하나의 사업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조금 다른 결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얻어야할 시사점이 충분히 있는 케이스이기에 짚고 넘어가보려고 합니다.
통신사들은 왜 미디어를 만들고 콘텐트를 만들고 있을까요? SKT는 왜 옥수수를 만들고 옥수수 오리지널을 만들고 있을까요?
여기에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영상을 모바일로 보는 데에는 많은 통신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청자가 통신 데이터를 사용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어찌보면 간단한 원리입니다. 통신사에게 영상 미디어는, 마케팅적인 효과 이전에, 본인들의 본업(통신 데이터 망)의 수익을 올려주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미디어 회사 자체는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그 미디어 '서비스'가 그들의 통신 상품의 매출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려주는 것입니다. 미디어 회사가 돈까지 벌어주면야 아주 좋겠죠.
유튜브가 기존에는 수익구조가 없던 형태의 콘텐트들(ex. 대다수의 1인 크리에이터 콘텐트)로 디지털 미디어 시장을 이끌어냈다면, 넷플릭스는 미디어 시장의 메인스트림을 디지털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넷플릭스는 기존 미디어 비즈니스의 디지털 확장판이라고 보면 됩니다. 케이블 회사나 IPTV회사들이 월정액을 받고 서비스를 하던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다시말해, 넷플릭스는 '순수' 미디어 회사입니다. 사람들이 월정액을 지불하고 그 대가로 콘텐트를 시청합니다. 그 외의 수익원, 가령 아마존의 커머스라던가, 레드불의 에너지 드링크라던가 하는 ‘본업’은 따로 없습니다. 최근 들어 시청자들의 월정액료 이외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트들을 외부 채널에 판매하며 매출을 올리고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콘텐트를 판매하는 것일 뿐, 그 이외의 무언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넷플릭스는 무조건 미디어 비즈니스로 돈을 벌어 살아남아야 하는 ‘순수 미디어 회사’인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미디어 회사들은 사실, 저마다 운영의 목적이 다릅니다. 그 안에는, 미디어 비즈니스 자체로 돈을 벌어야 하는 회사들이 있고, 아닌 회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미디어 비즈니스 자체로는 돈을 벌 필요가 없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 변화해가면서, 플랫폼과 콘텐트를 만들기가 쉬워지며 미디어 권력이 분산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콘텐트 마케팅이 떠오르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수 많은 변화의 와중에 바뀌지 않는 것은, 시청자들은 그저 본인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사실입니다. 시청자들에게는 미디어 회사들이 어떤 목적으로 콘텐트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지는 전혀 상관 없습니다. 사람들은 스팅의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지, 현대카드의 공연을 보러 가는게 아니니까요.
이 시리즈는, 미디어/콘텐트 산업에 대한 대표이사의 생각을 칠십이초 사내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얼마 전부터 시작한 연재입니다. 내부에만 공유하려다, 혹시라도 콘텐트와 관련하여 사업을 시작할 생각을 하고 계시거나, 저처럼 업계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고 계실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외부에도 공유하기로 하였습니다. 노파심에 앞서 말씀드리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이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비 정기적으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앞으로 무수히 언급될 '미디어'라는 용어는 '콘텐트 + 플랫폼'을 통칭하는 뜻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콘텐트’는 주로 '엔터테인먼트성 영상 콘텐트'를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