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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피로에 대하여

자도 자도 졸리는 이유와 극복하기 위한 법

by 치기


상쾌한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하루종일 자라고 해도 잘 수 있을 정도다. 왜 이렇게 자도 자도 피곤한 걸까.


눈을 뜨고 있는 순간 속 정신이 제대로 깨어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계속해서 머리 한 구석에 졸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감생이 철창을 흔들어대며 자게 해 달라며 호소한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 같아 진단받아보려고 병원을 인터넷에 쳐봤는데 블로그에 보이는 글들은 홍보성이 짙은 한의원이나 수면센터뿐이다. 블로그에서 피로 관련 원인을 보니 간기능 저하가 왠지 찔리지만 정상이어도 충분히 있을 법한 말이 많아서 자가진단 하기는 무리가 있다. 영양제를 많이 챙겨 먹어도 문제, 한약을 오래 복용해도 문제, 잠을 많이 자도 문제 안 자도 문제. 뭔 놈의 문제 투성이다.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연례행사처럼 마시는 한약을 마시는 동안 술을 자제하다 이성의 끈을 놓고 폭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간 기능에 단단히 무리가 간 것 같다. 일상 밸런스를 잘 맞추고 살고 있다 싶다가도 한 번씩 이렇게 망나니 같은 모습이 튀어나올 때 스스로 실망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일정 컨디션을 유지한 상태에서 욕구들을 적당히 풀어낼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 글에선 만성피로를 겪는 이유와 회복해 나가는 법에 대한 4가지 주관적 생각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1. 쌓여온 스트레스가 표출되는 수단이 바로 잠인 것 같다.


외부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생각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어 그런지 스트레스가 날리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속도에 비해 해소되는 게 더디다. 점점 지속적으로 피로해지게 된다. 몸이 축 늘어지고 눈 떠있는 시간에도 자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이렇다 보니 집 정리 안 해, 운동 안 해, 글쓰기 안 해 등 안해병(내가 지은 병명)이 생긴다.


이런 자잘한 변화들에 낌새를 알아차리는 순간, 안타깝게도 이 피로 여정의 끝을 거쳐야만 나올 수 있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자기 관리 안되고 주변도 더러워져가는데 과연 내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을까? 아니다. 되려 신경이 곤두서게 되며 예민해진다. 그렇다고 뭘 할만한 체력도 되지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피로가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며칠, 몇 주째 아무리 자도 개운하지 않은 나를 돌아보니 악의 순환고리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쯤 되니까 문제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세게 강타했다.


그 후 피로한 것에 대해 스스로 나무라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하게 둘 수 있는 일명 내 몸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뜻에서 <다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글 쓰고 싶을 때 쓰고 멍 때리고 싶을 땐 멍 때리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랬다. 딱 하루 이틀 했을 뿐인데 눈에 띄게 피로도가 줄어든 걸 느꼈다. 스스로 주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몸과 마음을 편히 쉬어준다면 몸은 삐졌던 마음을 풀기라도 하듯 빠르게 회복한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몸이 많이 지친 상황이라면 돌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피로하다는 뜻은 확실하게 쉬어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풀가동한 몸이 알아서 괜찮아질 리 없다. 의식적으로 진정한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을 해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장거리 달리기를 위해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피부에 느끼는 요즘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체력과 긍정이 따라온다.




2. 나는 원래 잠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자.


상대적으로 잠이 많은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 잠이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 잠이 없는 사람이 있다. 나는 잠이 확실히 많고 피로를 빨리 느끼는 편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오래 걸렸다. 나름 운동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들은 날 건강한 사람으로 보기에 그런 이미지에 나 스스로도 부응하고 싶었나 보다. 억지로 잠을 안 자려고 노력한 적도 많은데 결과는 사고할 수 없는 좀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깨어있는 시간이 전혀 의미 있지 않았다.


운동을 잘하는 것과 잠이 많은 건 별게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이미지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피곤한 당사자인 내가 내 상태를 돌보지 않는 게 아이러니했다. 남들 깨있을 시간에 잔다고 스스로 나무랄 바에 푹 자고 일어나 하루를 밀도 있게 생활하는 게 나에게 맞는 것 같다. 깨어있는 시간에 인스타그램에 빠져 하루를 마무리한다거나 귀찮다고 가야 할 운동을 가지 않는 행동들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맞춘 적당한 루틴에 대해서는 최소한 지키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3. 몸에도 디톡스가 필요하다.


스트레스받으면 증상 중 하나가 많이 먹는 것이다. 먹는 중에는 행복할 수 있으나 적당히가 아니라면 소화도 안되고 더부룩해져 컨디션 저하의 원인이 된다. 고정 출퇴근 직장인 같은 경우 집에 오면 8시, 밥 먹으면 9시다. 저녁이 아니라 야식이 되어버린다. 결국 위염, 식도염을 달고 살며 컨디션을 회복하는 게 오래 걸린다. 직장인의 만성질환들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일하고 온 나에게 맛있는 보상을 주고 싶은데 먹고 나면 바로 잘 시간이니 잠 많은 내가 소화시키고 잘 시간과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하물며 회식이나 친구와의 평일 약속에 가면 종종 술자리를 갖고 바로 잠자리에 드는 것은 몸이 안 좋아질 법한 일이다.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게 있을까?

먼저 소주를 끊었다. 매번 생각으로만 줄여야지, 끊어야지 하면서 습관성 다짐이라 보통 쉽게 무너지고는 했다(마치 쓰러트리기 위해 세우는 도미노처럼 유혹에 호탕하게 쓰러지길 바라기라도 하듯). 만성피로가 터지게 된 계기로 확실히 술조절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어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하나 생각하다 이렇게 결론이 났다. 소주를 어쩔 수 없이 '못'마시는 사람이 아닌 원래 '안'마시는 사람으로. 소주를 마시는 선택권 자체를 없애니까 고민이라는 것도 쉽게 없어졌으며 주량 조절에 용이해졌다. 담배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끊었다.


20살 때부터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받으며 체크하는 편이다. 몸이 자주 아픈 것도 있지만 주변에 별 탈 없이 건강한 사람들을 보면 병원을 좀처럼 안 간다. 30살 넘도록 건강검진 한 번 안 해본 사람도 봤다. 본인은 아픈 적이 없다며 검진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낀다. 별 탈 없는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병은 조기발견이 중요하다는 걸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프고 나서 확인하면 늦는 경우도 있으니 건강검진은 꼭 챙겼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몸이 예민한 게 더 몸을 잘 챙기도록 설계되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4. 관계로부터 오는 부정적 기운을 멀리하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 대체로 어울리는 편이기도 하고 내 주위에 무리가 만들어질 때도 있었다. 상대와 사이좋게 지냈고 그런 생활도 즐거웠다. 그러다 문득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은 화제에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재미가 없다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충족되지 않는 느낌이라고 할까. 거기에서 오는 피로감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줄이고 개인 시간의 비중을 크게 늘리고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1-2번 친한 동료들과 회식을 했던 전 직장과는 달리 새로운 직장에서는 공식적 자리를 제외하고는 사석으로 만나지 않는다.


이렇게 마이웨이였던 적이 처음이라 내가 너무 겉도나 하고 신경 쓰이게 되었다. 이 생각은 한동안 마음속 한쪽 귀퉁이에서 내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상대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매너를 지킨다면야 동료들이 나를 나쁘게 볼 필요가 없는데도 왜 나는 제 발 저리듯 신경을 쓰는 걸까. 아무 이유 없이 맹목적으로 나를 싫어하는 동료가 있다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지금의 나는 처음 겪어보는 스스로의 모습에 낯선 나머지 내재된 불안이 이때다 싶어 혼자 시나리오를 쓰나 보다 하고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사실 이런 생각은 며칠만 지나면 다른 좋은 기억들에 덮여 나아지기도 한다.)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사적으로 말을 많이 해봐야만 친한 것이고 존중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선이 있는 게 좋을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회사의 한 무리에 끼겠다고 아득바득 노력하는 게 더 서로에게 해로울 수 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한결 편해지면서 나의 커피를 챙겨주는 동료를 다시 마주했을 때 고마움은 배가 된다. 나 또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귤 하나를 건네며 그렇게 우린 느슨한 연대를 이어간다. 상대방은 나의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잊지 말자.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시 피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피로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 내, 외부적으로 짚어나가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물론 잠이 많아도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못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잠이 애초에 별로 없어서 조금만 자도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타입이든 잠을 이기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럼에도 소박한 나의 마음을 말하자면 성인 평균 수면 권장시간을 지키는 날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상 피로에 대한 사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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