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야 말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by 치기


1. 나의 손가락은 그간 눌러 왔던 나의 충동과 욕구를 드러내주었다.


2. 뭐에 홀린 듯 구태여 인스타에 그를 검색해서 찾아보았다.


3. 예상할 수 없이 빠르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전에 알고 있었던 터라 그런지 스킨십을 하고 있는 사진에서 격한 감정이 올라오진 않았다.


4. 감정의 변화는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놀라움과 배신감, 종말, 믿기지 않음, 진심 맞아?라는 생각들로 며칠을 신경 쓰였다면 지금은 이젠 남이잖아, 그렇구나, 얼마나 가나 보자, 나보다 잘해줘?라는 쿨하지는 못한 마음과 괘씸함이 남았다.


5. 홀로 미련이라는 감정에 기대고 있었구나 싶다가도 SNS에는 보통 잘 지내는 모습만 올리니까 표면적인 부분만 알 뿐 속사정까진 알 수 없기에 내 편할 대로 생각하기로 한다.


6. 피드 속 사진엔 나로 채워져 있던 순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뀐 인물과 맺어져 있는 모습이 퍽 기묘하다.


7. 덕분에 나는 별다른 장애물 없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머잖아 우리의 벌어진 거리를 느끼게 될 것이다.


8. 혹여 손가락이 또 폭주하여 보게 된다면 그땐 어떤 감정들이 떨어져 나가고 바뀌어 있을지 궁금하다.


9.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을 남기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럽지만 나는 나의 모든 감정을 최대한 잘 적어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10. 보통 이런 감정은 기쁨과 행복의 순간들에 찾아오지는 않으니까.


11. 미련과 고독 그리고 담담함 속에서 감정의 깊은 곳을 파헤쳐나갈 것이다.


12. 그 과정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멋진 작업물들로 건강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감정을 두고두고 곱씹어야한다.


13.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대로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련다. 트라우마로 남을만큼.


14. 그를 내 안에서 살리지도 죽이지도 않은 채로 지니고 나아갈 것이다. 그러다 가치가 다 닳아져버린 조각이 된걸 알게 되면 툭툭 털어내겠다.


15. 끝을 예견하고 만났던 터라 생각보다 마음의 흔적이 오래도록 남은 그를 생각하면 의외이긴하다. 나는 역시 정에 약한 사람인 것 같다. 미운정이 이렇게 지독한 것이구나.


16. 나의 리소스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 일당은 주지 않을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