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미루는 삶을 벗어나기
나는 왜 원하는 일을 미루는 걸까.
이번 글에서 어떠한 일을 미룬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미루다를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니 ‘정한 시간이나기일을 나중으로 넘기거나 늘이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저 말은 데드라인을 정해 놓지 않으면 미룬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아 보인다. 마감 시간을 딱 정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만 미룬다고 하는 걸까? 나는 기한을 정해놓지 않고도 미룬다는 말을 쓰기에 혼란스러웠다. 사전적 의미로 보는 나만의 데드라인은 언제일까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그 순간부터 미룬다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어쨌거나 보통 부정적인 측면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미룬다는 건 과연 안 좋기만 한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미룸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긍정적 미룸과 부정적 미룸.
미루는 것에도 분명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2가지가 부정이고 1가지는 긍정이다.
먼저 부정에 대해 말해보겠다.
첫 번째로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나 갈망하던 서핑을 여태껏 미루다 2년 반 만에 하러 왔다. 그동안 혼자 별 핑계를 댔던 것 같다. 상황이 안돼서, 친구와 시간이 안 맞아서, 멀어서. 사실 가장 큰 이유는 혼자 서핑하러 갈 용기가 없었다. 혼자 여행도 해봤고, 서핑이 처음도 아니었지만 미숙한 내가 혼자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다 젖은 채로 혼자 끼니 때울 생각에도 외로웠다. 나는 남의 시선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불안도 많은 사람이다.
그렇게 흐지부지 시간만 흘려보내다 좋은 기회가 오게 되었다. 이번에 이직한 회사에서 양양 워크숍을 간다며 남아있을 사람은 숙소에 더 있어도 된다고 했다. 이때다 싶었다. 다만, 스스로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인적 없는 숙소에서 혼자 잘 수 있을까, 친구 연인들끼리 온 일행들을 보며 홀로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서핑하러 온 숙련자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을까' 등 여러 근심들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졌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두려움이라는 걸림돌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진지하게 되물었다. ‘다 필요 없고 정말 서핑을 하고 싶은 게 맞아?’. 돌아온 내면의 대답은 ‘서핑하고 싶어!’였다. 그렇게 내 안의 답변을 듣고 모든 잡념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정말이지 걱정들이 무색해질 만큼 양양에 머물며 서핑도 하고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워크숍이라는 기회가 왔기에 2년 반이지 솔직히 더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 기회를 내가 잡았다는 것에 감사하다. 물론 영영 기회가 오지 않거나 정말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가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당장 해외를 가고 싶다고 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다음날 비행기에 올라 탈 순 없는 것처럼 말이다. 막무가내로 가려면 갈 수는 있겠지만 미래의 내가 걱정되어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사항인 것 같다. 이런 케이스라면 미루는 것에 대해 단순히 감정적인 것을 넘어선 것으로 지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별수 없지 않은가. 다만 ‘어쩔 수 없지’하고 포기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빠른 시일 내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현실로부터 타협하면서 중장기적 우선순위를 정하고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잊히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하고자 했던 것들을 경험해야만이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원하는 게 있다면 계속해서 머릿속에 되뇌며 잊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실마리가 생기는 경우가 있고 그 목표에 닿기 위해 스스로 의도하지 않고도 직간접적으로 끌어당길 때도 있다. 분명히 올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강박이다.
나는 털털하면서도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강박이 있어 종종 시작조차 못 하고 상상 플랜만 짜다 만 것들이 있다. 미룬 일들은 끝까지 마음에 남았다. 그 후로부터 마음 한켠이 찝찝하고 시간이 흐르는 게 불안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만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기만과 양심의 가책에 짜증이 났다. ‘대체 얼마큼 완벽하게 하려고 미루는 거지?’, ‘감을 잡는 게 중요하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실패와 배움에서 오는 성장이 두려운 것인가?’, ’ 남이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한다는데 대체 왜 미루는 거지?’하는 의구심과 분노가 솟구쳤다. 이쯤 되니 미루는 것에 대한 찝찝함보다 미루는 것으로부터 오는 자신의 스트레스가 더 커져만 갔다.
혼자만의 답변 없는 물음들이 쌓이는 만큼 자존감은 낮아지고 무력감에 휩싸인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급하기만 해서 발만 동동 구르는 내가 보였다. 스스로에게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 여전히 아이러니했다. ‘나 좋자고 하는 건데 왜 이렇게까지 나는 나를 힘들게 하지?’ 릴렉스 할 필요가 있었다. 그 물음들에 대해 나에게 차분히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이 진정될 때까지 조급한 마음은 내려놓고 온전히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1주, 2주 한 달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얻을 수 있었던 내 안의 답변은 단순했다. 완벽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모든 일을 배워감에 있어 실패의 과정 속 성장을 겪는 건 불가피한 것을 처음부터 무결의 것을 만들고자 했으니 욕심이었다. 완벽이라는 말도 결국 실패가 두려워하지 시도도 못하는 일종의 회피라고 생각이 들었다. 시작조차 안 하는 게 실패보다 더 어리석은 것 같다. 특히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보이는 것에 대한 것보다 도전한 것에 초점을 두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설령 그 일이 내게 아무런 이득이 없었을지라도 해보지 않는 이상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 나는 보통 해보지 않아서 후회한 적이 있어도 해서 후회했던 적은 없었다. 경험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에 비해 삶은 짧다. 그러기에 할 수 있을 때 미친 듯이 해보자는 게 내 생각이다. 하기 전과 후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지는 것 같다. 나는 얕고 넓은 지식의 소유자로 어떤 토픽이 나와도 나의 소신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미룸은
소중해서이다.
어떤 경험은 끝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시작도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경험하기 전부터 오는 단어가 가진 설렘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아직 하지 않은 일이 있다. 일단 하고 보는 기본적인 나의 마인드셋과 양극을 갖기도 한다. 예전에 위스키를 좋아하는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내가 아직 아드벡을 마셔보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 친구가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본인이 아드벡을 처음 접한 순간의 그 강렬함과 좋은 충격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서. 너는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어서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 당시에 이게 무슨 소리야 싶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아드벡이지만 나에게 글렌드로낙 18년 산이 그렇고 서핑이 그렇다. 본인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경험을 하고 나면 그 매력에 강하게 사로잡혀 여운이 상당히 길다. 그 자체로써 강렬할 때도 있지만 날씨와 분위기, 그날의 감정까지 복합적으로 자리매김할 때도 있다. 그 순간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때가 있다. 강렬함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기도 해서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아껴두기도 한다. 때가 되면 언제든 손에 닿을 수 있는 자리에 놓고 모셔놔야지. 아껴두었다 실망할 수도 있을지언정 그 또한 나의 선택이니 별 수 있나. 기다린 보람이 있는 숙성된 명품 위스키 맛이 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무쪼록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쯤 돼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부정적 미룸과 긍정적인 미룸이 있는지
있다면 왜 미루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본 적이 있는지
이 글을 보고 자문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사실 툭 까놓고 말해서 불안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안한 일을 당장 하는 것이었다. 글로만 적으면 이렇게 단순할 수가 없는데도 실행하는 게 쉽지 않다.
다만 수많은 핑계와 합리화를 늘어놓을수록 불안해져 가는 자신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묻고 싶다.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에겐 스스로가 정말로 그것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묻고 싶고 선뜻 대답하지 못하거나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겐 하려던 일을 빠른 시일 내에 시작함으로써 불안비용을 없앤다면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물며 ‘이게 뭐 어렵다고 이렇게 미뤄왔지?’라는 허탈함마저 드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어떠한 것을 제안하거나 강요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언제나 선택은 당신의 몫이며 그저 보통의 사람이 겪고 있는, 겪은, 겪을 생각을 공유하고 누군가의 위로와 공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응원과 용기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