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아도 허전한 이유
나는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공허함을 느끼는 걸까.
마음은 허한데 머릿속에 형체 없는 잡념의 안개가 자욱해서 사유를 하는 게 쉽지 않다. 이 공허함은 어디로부터 생성되는 걸까.
이유 없이 찾아오는 공허가 반갑지 않다. 정말 이유가 없는 걸까. 아님 내가 원인을 못 찾은 걸까. 공허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공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 책도 읽고, 집 청소도 잘하고, 운동도 하며 건강한 일상 루틴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주변에서 열심히 산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 분명 나아가고 있는데 순간순간 왜인지 모를 허함이 찾아와 사고회로가 지연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쯤이면 내 상태에 소홀했다고 볼 수 있기도 하다.
나를 달래기 위해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정리하며 공허에 대해 4가지 이유를 나열해 봤다.
첫 번째로 공허의 빈자리를 남에게서 채우려 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계속해서 만들면 공허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당장에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인다면 일시적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놀다 보면 집에 가기 싫어 친구랑 더 술을 마시고 취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누우면 그 공허는 배로 밀려온다. 알면서도 쉬운 자극을 선택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그 유혹은 나를 약해지게 만들고 부패시킨다.
그렇게 끝없이 약속을 잡고 놀고 무언가 하고 있는데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즐거움만을 좇으려는 욕망은 애초에 자신의 어떠한 고통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걸 거부하는 자세인 거다. 순간적 즐거움에 집착하고 더더욱 고통을 마주 하는 게 어렵고 나는 혼란을 겪는다. 몇 차례 반복하다 보면 일상에 속해있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이 불편해지고 억울해지며 오랜 시간 연체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난 공허를 맛보게 된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을 가득 채워진 채로 채우려 했으니 깨끗한 물이 담아진다 하더라도 기존에 남은 고인 물과 섞이는데 그게 맑을 리가 있을까. 비워져 있는 상태를 평온한 상태로 생각하고 둘 필요가 있다. 괜히 디톡스가 있는 게 아니다. 항상 사고하는 뇌에게도 디톡스가 필요하다. 어떻게 디톡스를 할지는 여러 방면으로 모색하고 있는데 일단 나는 글을 쓰며 형체 없는 감정들을 글로 마주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 말 대잔치를 상당히 많이 하는데 이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기분을 알기 위해 그림도 그리기도 한다.
작년에 추상적인 마음을 표현하고자 1일 1드로잉을 432일 동안 한 적이 있다. 처음엔 감정의 해소였으나 나중엔 습관이자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 되었었다. 예술로써 감정을 승화시킨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그걸 계기로 다른 걸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으니 말이다.
두 번째로 공허라는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허라는 감정을 마치 겪어서는 안 되는 것인 것처럼 금기사항으로 두었다.
공허가 온 나를 마주하는 것에 대해 제 3자 입장으로 보는 것이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 회피하려 했다. 내 안에 깊은 내면을 덮어두고 더 닿기 쉬운 욕망들을 해결해 준다면 해소될 줄 알았다. 그렇게 도전하고 경험한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는데도 자꾸만 뭘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도파민 중독인 건가 싶기도 하다. 배부른데 자꾸만 뭐가 먹고 싶고 그렇게 소화가 안된 채로 먹고 또 먹고 먹으면 체하는 그런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공허한 느낌이 싫어 자꾸만 채워 넣고는 채워진 공간을 비우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집어넣어 한 껏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이 온 거지.
사실은 정말 공허한 게 아니라 비워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게 두렵고 낯설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새롭고 더 나은 것을 채우기 위해서 들어올 공간이 충분히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불편하지 않다. 내가 성장할수록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오고 나가는 것들이 점점 더 좋은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져보자. 주변의 잡음을 들으며 미디어 소리로부터 멀어져 보자. 그리고 일기를 써보자.
공허라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공허라는 단어가 왜 있겠어? 있으니까 있는 거다. 복합적으로 감정을 느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나 자아가 형성되고 난 사람이라면 공허함을 단 한 번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회피하려만 한 것 자체가 모순이다. 너무 당연한 걸 말하는 것 같지만 그 당연함을 겪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는 게 반증일 수도 있겠다. 다른데 시선을 두는 것보다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관심을 가져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세 번째로 에너지가 남아돌아서일 수도 있다.
‘에너지가 남아도니까 잡생각 할 겨를도 있는 거 아닐까’라는 스스로에게 상당히 이성적이고도 매정한 사유를 해본다.
다른 것도 이성적이긴 한데 왜 이건 뭔가 조금 더 상처받는 느낌이다. 체내 있는 에너지를 탈탈 털어서 외부로 꺼내면 괜찮지 않을까. 잡생각 들다가도 몇 시간이고 힘들게 운동하면 바로 기절할 것 같다. 요즘 크로스핏과 필라테스를 주 2회씩 하고 있는데 누우면 바로 잔다. 자기 전에 낮에 잡생각이 들어서 문제인데 그건 또 어떡하지… 사실 회사에서 잡생각 들 때는 잠깐 시간 내서 글을 끄적이다가 일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때론 정말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고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구태여 무얼 하려고 하지 말고 힘들면 힘든 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 하고 싶지 않은 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해볼 만한 방법인 것 같다. 근데 솔직히 그 시간은 정말 불안정하고 고통스럽긴 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을 잘하지 못해서이다.
이것저것 벌리기만 하고는 성과가 없어서 그런 건지. 한 번 할 때 너무 몰두해서 진이 빠져버려서 그런 건지. 몇 년 전부터 도전해보고 싶던 유튜브를 해보자 싶어 업로드했는데 그 후로 공허감이 며칠간 지속되었다.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인생 조언이나 방법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자아성찰을 하며 무의식에 있던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들 속에서 나열된 것들을 공유하며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공감이나 위로가 되었음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유튜브라는 매체에 맞게 풀어낸 거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니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아웃풋이 나와서 적잖이 불만족스러웠다. 처음부터 잘 나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의도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기왕 하는 거 잘해보자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분석하고 글 쓰고 말하는 구조도 짜봤는데 결과물에 대한 뿌듯함보단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결과물에 대한 내용물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괴리가 컸다. 그래서 그랬을까 원래 적고 싶은 대로 적어 내려 갔던 글과는 다르게 스크립트를 짜는 것 자체가 압박이 되었다. 의도한 바와는 다르다 보니 영상을 올리고 나서 친구들에게 공유해야지 했던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부끄러운 영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허탈했던 것 같다. 뭔가 한 건 많은데 돌아보니 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빈 수레가 요란했던 걸까. 과정을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다 신경 쓰며 하는 건 내가 추구했던 게 아니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주절거림이 아무에게 닿지 않는 것도 원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첫 영상을 업로드하고 나서 며칠간 계속 생각해 보았다. 자꾸 쳇바퀴가 돌아 주변에 조언을 구했을 때 마음에 남았던 하나의 답변이 있다. 유튜브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것 같다. 수단이 목적이 되고 목적이 수단이 될 수도 있다만 내가 공허감이 밀려오는 이유는 나는 유튜브라는 매체를 하고 싶었던 목적만 해소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추구하는 이상향에 대해서는 내 식대로 풀어내지 못했기에 찝찝했던 거다..
사람들에게 많이 닿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알고리즘 잘 탄다는 나름의 이론과 폼에 나를 많이 맞추려 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현 상황에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나의 본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속에 기승전결이 있든 없든 흘러나오는 말들을 꺼내고 싶다. 아직은 과정 중에 있지만 적어도 내가 만족감을 얻으며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 포인트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 계속해서 시도해 봐야지.
나는 공허라는 감정을 이렇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두렵고 회피하고 싶은 것이 아닌 더 좋은 걸 채우기 위해 소화시키는 것 평화를 가져다주는 상태라고. 그 상태를 평화라고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나를 마주함에 있는 자세부터 이해의 폭이 달라지지 않을까. 텅 빈 마음 상태의 고요를 즐기고 그 안을 더 따뜻한 것으로 채울 나를 생각해 보자.
아직까지 공허를 평화로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으나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빨리 컨트롤할 수 있는 감정이라면 그것도 그것대로 자신의 무력함을 탓할 수 있겠지. 이러나저러나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불안하고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불안하다.
그저 감정을 1인칭이자 3인칭으로 느끼고 그것을 글을 쓰다 보면 이 헛헛함에 잡아 먹히기보다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