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의 기술

회사가 모르는 나만의 사이드 프로젝트 도전기

by 이불킥

:엑셀 창 뒤에 숨겨진 CEO의 꿈

​오후 3시, 식곤증이 몰려오고 업무 집중력은 바닥을 치는 마의 시간.
나는 모니터 화면 가득 엑셀 파일을 띄워놓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간을 찌푸린 채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모습은 영락없이 '분기 실적 보고서'와 씨름하는 열혈 대리다.


​하지만 내 모니터 하단 작업표시줄에는 비밀스러운 크롬 창 하나가 숨겨져 있다.
상사가 뒤를 지나가는 낌새가 느껴지면 Alt + Tab을 누르는 반사 신경은 이제 국가대표급이다.


​내가 엑셀 속에 숨겨둔 것은 실적 데이터가 아니다.
'스마트스토어 상세페이지 기획안'이다.


위대한 개츠비? 아니, 위대한 딴짓러
​직장인에게 '딴짓'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 이 거대한 조직의 부속품이 아닌, 온전한 '나'로 서기 위한 생존 훈련이다.


​입사 3년 차, 나는 깨달았다. 회사 명함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회사가 모르는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목표는 월급 외 수익 100만 원. 소박하지만 위대한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나의 화려한(이라고 쓰고 처참하다고 읽는) 실패담을 공개한다.


​도전 1. 스마트스토어 사장님
​"자면서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드세요."
유튜브 썸네일에 홀려 시작했다. 위탁 판매? 재고 없이 돈을 번다고? 이거다 싶었다.
퇴근 후 새벽 2시까지 상품을 등록하고, 틈틈이 CS를 공부했다.
[결과]
첫 달 순수익 3,400원.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한 잔도 못 사 마시는 돈이다.
게다가 진상 고객의 "반품해 주세요" 전화 한 통에 내 멘탈은 회사에서보다 더 바사삭 부서졌다. 사장님 소리 듣는 게 이렇게 힘든 건줄 몰랐다. 결국 폐업 신고를 하던 날, 나는 3,400원으로 편의점 맥주를 사 마시며 씁쓸함을 달랬다.


​도전 2. 브이로그 유튜버
​"나도 회사 생활 브이로그나 찍어볼까?"
얼굴 없는 유튜버를 꿈꾸며 장비부터 질렀다. 주말마다 감성 카페를 찾아다니며 영상을 찍고, 밤새 편집했다. 자막 센스가 장난 아니라고(스스로) 생각했다. 실버 버튼을 받을 자리를 미리 봐두기도 했다.
[결과]
구독자 32명. 그중 10명은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내 부계정들이다.
알고리즘의 간택은커녕, 조회수 '0'의 행진. 내 일상은 생각보다 남들에게 재미가 없다는 뼈아픈 진실만 마주했다.


​도전 3. 블로그 체험단
​"공짜 밥 먹고 글만 쓰면 된다고?"
맛집 블로거에 도전했다. 선정됐다는 메일을 받고 환호했다. 3만 원짜리 파스타를 공짜로 먹을 수 있다니!
[결과]
식당은 왕복 2시간 거리였다. 지하철비와 내 시간을 시급으로 환산하니 사 먹는 게 더 쌌다. 게다가 "사장님, 여기 사진 좀 찍을게요"라고 말할 때의 그 민망함이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을 뼈져리게 체험했다.


실패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수익으로만 따지면 내 사이드 프로젝트는 완벽한 '마이너스'다. 시간 쓰고, 돈 쓰고, 체력 썼으니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일이나 똑바로 하지"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실패들을 통해 회사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얻었다.


​첫째, '야생의 감각'이다.
회사라는 온실 속에 있을 땐 월급이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밖으로 나와보니 100원을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객의 지갑을 여는 게 얼마나 치열한 전쟁인지 온몸으로 깨달았다.


​둘째, '주도권의 맛'이다.
회사에서는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태'의 삶이었지만, 딴짓을 할 때만큼은 내가 기획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는 '능동태'의 삶이었다. 비록 망했을지언정, "내가 내 일의 주인이다"라는 그 감각은 짜릿했다.

​Alt + Tab은 계속된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게 해서 언제 퇴사하려고?"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퇴사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살려고 하는 거야."


​회사 안에서의 나는 무력하지만, 회사 밖에서의(혹은 엑셀 창 뒤에서의) 나는 꿈꾸는 CEO이자 크리에이터다. 이 작은 **'효능감'**들이 모여 나를 버티게 한다.


​오늘도 나는 상사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Alt + Tab을 누른다.
비록 지금은 미미한 3,400원짜리 사장님일지라도, 이 딴짓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 나를 진짜 자유의 세계로 데려다줄 것을 믿기에.


​그러니 전국의 모든 김 대리, 이 대리님들.
들키지 마십시오. 그리고 멈추지 마십시오.
우리의 딴짓은 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R&D(연구개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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