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증후군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났다

by 이불킥

​: 열심히 산 죄, 그 형벌은 무기력 형이었다

​사건은 화요일 오후 2시, 탕비실에서 일어났다.

커피머신에서 갓 내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들고 돌아서던 찰나, 손이 미끄러졌다.

"아..."

바닥에 쏟아진 갈색 액체를 보며 휴지를 가지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눈에서 뜨거운 것이 툭 하고 떨어졌다.


​상사에게 혼난 것도 아니었다. 대형 사고를 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커피를 조금 쏟았을 뿐인데,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나 도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그것은 내 영혼이 보내는 가장 확실하고도 위험한 구조 신호, 번아웃(Burn-out)이었다.


하얗게 불태우고 재만 남은 사람들

​번아웃은 게으른 사람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연료로 태워가며 치열하게 달린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열정의 역설'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프로 일잘러'가 되고 싶었다.

메일은 10분 안에 답장해야 직성이 풀렸고, "제가 하겠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으며, 퇴근 후에도 업무 카톡을 확인해야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착취함으로써 나의 유능함을 증명하려 했다.


​그 결과, 내 마음의 배터리는 방전되다 못해 수명이 다해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천장이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횡단보도 앞에 서면 '그냥 가벼운 접촉 사고라도 나서 병원에 입원하고 싶다'는 위험한 상상을 했다.

감정은 메말라버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좀비 상태'가 되었다.


​나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세상은 나에게 '무기력'이라는 형벌을 내린 것만 같았다.


80%의 법칙: 대충 사는 연습

​상담센터를 찾아갈 용기는 없어서, 서점에 들러 심리학 책을 샀다. 책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라"고 했다.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고, 회사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나는 살기 위해 **'적당히 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이름하여 '80%의 법칙'.


​마감 기한의 재정의: 오늘 다 끝내도 되는 일은 내일로 미룬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

​거절의 연습: "저 바빠요"라고 말해도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다.

​퇴근 후 로그아웃: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회사원이 아니다. 업무 알림은 꺼둔다.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농땡이를 피우는 건 아닐까? 남들에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힘을 뺐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회사는 내가 120%를 하든 80%를 하든 잘 굴러갔다.

나 없으면 회사가 망할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그 사실이 묘하게 섭섭하면서도, 동시에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나를 돌보는 건 '나'밖에 없다

​우리는 종종 스마트폰 배터리가 20%만 남아도 불안해하며 충전기를 찾는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의 배터리가 빨간 불을 켜고 경고음을 울려도, "조금만 더 버텨"라며 자신을 채찍질한다.


​쏟아진 커피를 닦으며 나는 다짐했다.

이제부턴 커피를 쏟으면 울지 않고 그냥 닦아내기로.

대신, 커피 한 잔 마실 여유조차 없이 나를 몰아세우지는 않기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이 텅 빈 껍데기처럼 느껴진다면, 부디 멈춰야 한다.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너무 오래 달렸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쯤은 대충 살자.

업무는 실수만 안 할 정도로 적당히 하고, 칼퇴근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자.

우리는 회사의 부품으로 쓰이다 버려지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적어도 불행하지 않기 위해 일하는 것이니까.


​부디, 당신의 눈물이 탕비실 바닥이 아닌, 감동적인 영화를 볼 때만 흐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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