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든 안 다니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 마음은 화(火)로 가득 차 있었다.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팀장의 면전에 날리고, 짐을 싸서 나가는 상상을 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제목을 <퇴사와 생존 사이>라고 지은 것도, 당장 퇴사를 못 하는 비루한 내 현실을 '생존'이라는 단어로라도 포장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9편의 글을 쓰는 동안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글을 쓰며 내 안의 독소를 배출해서일까? 아니면 포기하면 편하다는 진리를 깨달아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은 하나였다. 나는 이제 회사를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닌 '내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퇴사를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는 행위(Event)'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정의하는 진정한 퇴사(혹은 직장인 해방)는 물리적인 탈출이 아니다. 그것은 심리적인 독립이다.
회사에 몸은 묶여 있어도, 내 영혼과 자존감만큼은 회사의 평가 시스템에서 '퇴사'시키는 것. 상사의 막말에 상처받지 않고 "저 사람은 저게 한계구나"라고 넘길 수 있는 단단함. 연봉의 액수가 나의 가치라고 착각하지 않는 소신. 회사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음을 알기에, 스스로 내 삶을 책임지려는 태도.
이 마음가짐을 갖는 순간, 우리는 사직서를 내지 않고도 매일 퇴사한 것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찾은 '직장인 해방 일지'의 진짜 결말이다.
나는 여전히 오전 7시면 지옥철 2호선에 몸을 싣는다. 여전히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오후 3시면 식곤증과 싸우며, 월급날 스쳐 가는 사이버 머니에 허탈해한다. 겉모습은 1화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내 내면의 공기는 달라졌다. 예전의 나는 "회사 없으면 난 뭐 먹고살지?"를 걱정하는 쫄보 '김 대리'였지만, 지금의 나는 "회사는 내 꿈을 후원하는 스폰서일 뿐, 내 본캐는 따로 있어"라고 믿는 '인간 김OO'이다.
나는 회사라는 무대 위에서 맡은 배역(직장인)을 성실히 연기할 뿐이다. 무대 막이 내리고(퇴근), 분장을 지우면(사원증을 빼면), 나는 다시 나만의 우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나는 글을 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미래를 도모한다. 그 시간들이 모여 진짜 '나'를 만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오늘, 회사를 위해 살았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 살았는가?
혹시 지금 당장 떠나지 못하는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진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도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당신. 더러운 꼴을 보고도 가족을 위해, 나의 내일을 위해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돌아선 당신. 그 인내와 책임감은 비겁함이 아니라, 세상 그 무엇보다 위대한 용기다.
우리의 사직서는 아직 주머니 속에 있다. 그것을 꺼내는 날이 내일이 될지, 10년 뒤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 꺼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버텨낸 당신, 고생 많았다. 우리는 회사의 부품이 아니라, 각자 삶의 존엄한 주인이다. 회사를 다니든 안 다니든, 부디 당신이 온전히 '당신'으로 살아가기를.
나의 해방 일지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지만, 우리의 진짜 생존기는 내일 아침, 다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