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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헌 Aug 07.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2. 서울 이모집 지하실의 성인만화 1980


대개의 직종이 그렇겠지만

소년 소녀는 취미와 관심이

직업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만화에 몸을 담고 사는 나도

어릴 적 '만화소년'이었다.

자다가도 만화라면 벌떡 일어날 정도여서

중학교쯤 되었을 때 이미 마니아

수준 정도는 되었다.


중학교 때 연세대 근처 사는

연희동 이모집에 가끔 놀러 갔다.

가장  사는 , 서울 한복판이라는 

매력적인 코스여서

4남매 누구나 가고 싶어 했다.


여름방학 그해 중3 때, 나는 혼자 이모집에 갔다.

건설업 하는 이모부, 정육점 하는 이모,

바쁜 한 살 터울 고등학생 형은

늘 바빴다.

그래서 대낮, 그곳은 나의 왕국이었다.


처음 보는 침대에도 누워보고

(안방에서는 특이하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티브이에서나 보던 욕실의 욕조에도 들어가 봤다.

고기는 명절에나 맛보는데,

 집은 매일 아침 로스구이를 해서 

프라이팬  준다.

왼쪽 끝이 서울 이모님이다. 1977년 즈음

  


남의 집에 가면 으레 책꽂이를 섭렵하는  

당시 취미였는데,

형 방에는 참고서만 그득했다.


어느 날 이 고급빌라 지하실을 찾았다.

아... 거긴 신세계였다.

외국에 이사 간 사람들이 놔두고 간 책이며

잡동사니로 이세계로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


<시이튼 동물기> 같은 

명작 소년소녀 전집 같은  

닥치는 대로 갖다가 읽었다.

속독 능력이 있어서

하루에 대여섯 권은 해치운 것 같다.


어느 무더운 날 오후.

그날도 새로운 책을 뒤적거리며 

곰팡내 나는 지하를 탐색하다

문고 책 뒤편에 요상한 잡지 하나가 발견되었다.


아아...

초울트라 만화광인 내 손에

최신 일본 성인만화 잡지가 들어온 것이다.

유레카!!!


떨리고 흥분되는 가슴을 부여잡고

형 방에 들어왔다.

두근두근.


80년대 초 일본의 대중문화는

그야말로 막무가내 폭주하는 시대였다.

만화는 성, 섹스의 천지였고 표현이

거의 포르노 수준이었다.

중3병 환자와 조우한 성적 판타지 만화의 세계!


충격은 오래오래 갔는데

그때 "아 일본 만화는 이런 세계구나,

이런 표현이 가능하구나~"하고

느꼈다.


그로부터 18년 후,

나는 일본에 만화 때문에 늙다리

30대 중반에 유학을 가게 됐다.


1998년 가을비가 내리던 밤.

편의점에서 만화잡지를 뒤적거리며

중학생 때 서울 그 잡지가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왔나...

하고 잠시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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